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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Jul 10. 2023

엄마의 건강이 먼저다.

가족 중에 엄마가 첫 번째로 건강해야 될 이유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위지안 지음/이현아 옮김 /2011.12.16 발행

307쪽


2022년 4월 7일,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완독하고 블로그에 후기를 올렸는데 첫 번째로 댓글을 달아주신 이웃님이 계셨다. 과거에 이 책을 조금 읽다 말았다고... (이야기가 슬퍼) 읽는 동안 너무 힘들어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슬퍼도 읽을 수는 있는데 처음부터 이 책이 확 와닿은 건 아니었다. 그러다 지인의 곁에서 몇 줄 읽다가 아예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은, 그녀를 한 방에 무너뜨린 운명조차 그녀에게서 끝끝내 빼앗아가지 못한 ‘영혼의 기록’이며, 우리에게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가르쳐주는 인생교본이다.



위 사진과 글은

에필로그가 끝나고 바로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이 책의 한마디’에 있다.



저자인 위지안은 1979년 생으로,

그녀가 인생의 정점에 올라 있었을 바로 그 순간(2009년 10월)에 갑작스럽게 말기 암 선고를 받는다. 당시 서른 하나였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에서 유학을 했고 환경과 경제학을 접목한 새로운 시도를 가지고 귀국해 중국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서른이 안 된 나이에 푸단대학교 강단에 섰다.
북유럽의 바이오매스 에너지 시스템을 중국에 도입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물론 노르웨이에 거대한 프로젝트를 제안해 성사 단계에 있었다.

그 프로젝트는 <에너지 숲 프로젝트>라는 것이었는데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정부와 함께 에너지 숲이 녹화 및 온실가스 흡수, 재생에너지, 산간 지역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의의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였다.


황련목이란 나무를 ‘에너지 수목’으로 심어 다양하게 활용하자는 계획의 프로젝트!


황련목은 어릴 때 그늘이나 메마르고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토질을 잘 따지지도 않으며 뿌리가 깊어서 바람에도 강하고 수명 또한 긴(300년 이상) 나무이다.

이 황련목 나무와 열매에 함유된 지방 성분을 바이오 디젤 등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황련 열매 2.5톤에서 바이오 디젤 1톤을 생산할 수 있단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황련목 열매의 성분을 휘발유에 첨가하면 이산화황 배출을 70퍼센트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하니 친환경성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요즘 기후변화•기후위기다 해서 각 나라마다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실천해야만 하는 이때에 그보다 앞서 이런 프로젝트를 제안한 위지안 씨, 정말 존경스럽다. 이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순간에 별안간 암에 걸려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2011년 4월 19일 새벽 3시, 그녀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처음에 유방암으로 시작한 암이 병원에 갔을 땐 이미 척추와 뼈에 전이가 된 상태였다.

그녀는 자기 앞에 남겨진 삶이 길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직감했다.

온몸으로 전이된 암세포 때문에 뼈는 벌레 먹은 나무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작은 충격에도 목숨이 위태로웠는데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희망을 떠올렸다. 한 걸음 떼는 것조차 힘겨웠던 그때에 오히려 낙천적인 태도로 인생의 참다운 가치와 소박한 행복을 이야기로 풀어가면서 나날이 새로워졌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소중한 가치들을 돌아보았고, ‘삶의 끝에 와서야 알게 된 것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겼다.

그녀의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고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지혜를 배웠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된 사람도 많았다. 삶의 끝에 이른 그녀가, 살아갈 날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준 셈이다.




막내가 집중항암치료를 한참 받고 있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더 건강해야지!
내가(엄마가) 건강하면 아이도 살릴 수 있고 가정도 지킬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위지안씨와

내 블로그에 첫 댓글을 달아주신 이웃님 덕분에 다시 한번 건강에 대한 내 생각을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좋은 책도 읽는 시기에 따라 의미부여에는 차이가 큰 것 같다.
책의 발간 시기를 보니 2011년이었다. 그때 나는 결혼  전이어서, 만약 결혼 전과 아이를 낳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그냥 슬픈 기록으로만 여겼을 것 같다. 다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늦게 안 것이 오히려 나에겐 참 다행히 아닌가! 고맙고 감사하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읽는 내내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 있다.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인 건 분명하고, 내가 느낀 또 하나, 절실한 것은

‘어떤 일이 생겨도 절대로 절대로 나는 아프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내 건강을 먼저 챙기자! 비록 이기적인 엄마로 비칠지라도...’이다.


막내가 백혈병이었고 치료가 완전히 끝난 것도 블로그 찐이웃님들께서는 잘 알고 계신다. 나의 블로그는 투병생활을 기록하는 블로그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막내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코로나까지 겹쳐 평범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다 보니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져 막내의 이야기도 담게 되었다. 조심스럽게 꺼냈는데 정말 많은 분들께서 위로와  힘을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투병을 지켜보고 간호를 하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건 엄마인 내가 아프면 다 끝이라는 사실이었다.


2018년 9월 18일 백혈병 진단을 받고 정말 하늘이 무너질 만큼 암담했다. 백혈병에 대한 상식조차 없던 남편과 나는 머지않아 막내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움과 극심한 공포에 달달 떨면서 울었다. 골수(조혈모세포) 이식을 대비해서 형제 관계를 물어보시는 주치의 선생님의 질문도 얼마나 무섭게 들렸는지 모른다. 위에 형들도 말이 형이지 여섯 살, 다섯 살이었다. 백혈병 치료는 사실 끝나야 끝나는 것이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제삼자들은 모르기 때문에 자꾸 물어본다. "많이 좋아졌냐고?", "어떠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뭐라고 해줄 말이 정말 없어서 그냥 "많이 괜찮아졌어요."라고 얼버무리곤 했었다.


치료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치료가 매우 잘 되어가고 있어서 모든 이의 부러움을 샀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나라에 가있고, 방사선 치료까지 병행해 가면서 겨우겨우 목숨만 붙어 있던 아이였는데 건강하게 살아서 제 발로 걸어서 병원을 나가는 아이도 있었으니까. 우리 막내도 위험천만한 두세 번의 큰 고비를 넘겼음에도 건강하게 살아있고 완치 판정도 받았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가벼운 게 흠이라면 흠. 고비를 넘겼다 생각하니까 전보다 마음이 한결 안정되어 한편으로는 나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아이가 아파서 참 다행이라는 조금은 이상하게도 들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아플 거였다면 엄마인 내가 아니라 내 아이가 아픈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아프면 나를 간호하고 삼 형제를 돌보느라 남편이 가장으로서 일에 집중할 수도, 육아에 전념하기도 어려울 테니까. 엄마의 손길이 끊긴 아이들은 늘 풀이 죽은 채로 다른 사람들 눈에 측은지심을 유발하고 다니겠지. 반대로 남편이 아프면 가정 경제를 책임지던 남편의 자리를 대신해 돈도 벌어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아직 어리니 다 챙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엄마가 병을 얻는다. 주위를 보면 보통 이렇더라.


아이가 아프면 한동안은 집안이 발칵 뒤집히겠지만 곧 자리를 잡게 된다. 집안의 기둥이 뽑히지 않았기에 가능하고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강한 '엄마'라는 이름 두 글자를 걸고 엄마들은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켜낸다.


순간순간 엄청 힘들었지만 입원해 있을 때나 외래로 다닐 때에도 난 늘 나 혼자서 막내를 책임졌고 그때그때마다 잘 견뎠다. 이대로만 가면 낫겠다 싶은 확신이 있었고 희망이 보였다. 이것은 경험에서 나오는 직감이다.


천안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고관절염으로 잘못 알고 수술을 한 탓에 잘 걷던 아이가 한동안 걷지 못해서 계속 안고 다녔고 눈을 떴는데도 앞이 깜깜해서 쓰러질 지경이었는데 정신력으로 다 버텨냈다. 남편 또한 회사를 다니며 내가 하던 살림을 온전히 도맡아 했고 두 아이를 책임져야 했으니 우리 둘 다 초반부터 많이 지치고 힘들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다 과거가 되어 있다.


다른 집들은 병원 올 때마다 엄마와 아빠가 같이 와서 조금은 수월하게(?) 볼일을 봤는데 그 모습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난 늘 혼자라서 입원수속 밟을 때나 진료 볼 때, 새벽에 나가서 깜깜할 때까지 종일 항암을 받는 날도 모두 다 내가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숨이 턱턱 막힌 적 많았다. 당시엔 막내가 너무 어렸고 믿을만한 사람이 엄마밖에 없었기에 잠시라도 막내를 혼자 두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암에 걸린 중증환자를 돌보는 일은 정말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바닥까지 간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힘겨운 나날이다.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보이지 않고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고통의 터널을 아주 천천히 걸어가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견뎌낸 만큼 단단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견뎌야 하고 버티려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이 똘똘 뭉쳐졌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이참에 이 공간을 빌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참 병원과 집을 오가며 막내의 백혈병 치료를 하고 있을 때 막내의 투병 소식을 듣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똑같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관리가 잘 안 되는 얼굴로 애써 위로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솔직히 말해 정말 괜찮다. 진짜 괜찮다. 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하루하루가 낙이 없고 힘들고 우울하고 슬플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처음에만 그렇지 다 적응해서 살기 마련이다. 막내가 아프기 전과 똑같이 우리 식구는 정말 활발하고 씩씩하게 지냈다. 아프다고 해서 모든 것을 막내에게 맞추며 지내지도 않았다. 막내도 학교 가듯 병원을 드나든 것 말고는 안 아팠을 때처럼 자기 또래의 아이로 평범하게 지냈다.




막내의 집중항암치료가 끝나고 유지항암으로 넘어가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때인 2020년 3월 초, 1년 5개월 만에 그토록 오고 싶었던 우리 집으로 완전히 내려왔다. 외래진료 간격이 2주로 늘어나 우리 집에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려왔을 당시 남아있던 두 아이들의 모습과 집안 꼴은 정말 엉망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 어느 것 하나 성에 차지 않았으나 이렇게 지내온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천만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남은 두 아이가 마음에 꾹꾹 눌러두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상처가 되어 회복해 가는 시간도 무척 힘겨웠다.


엄마가 잠시라도 부재중이거나 아프면 집안 꼴이 정말 말이 아니겠구나 그때 생각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절대로 아프지 않겠다고!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비슷한 치료시기에 같은 병동에서 간 모세포종에 걸린 아이를 간호하다 엄마가 급성 골수성백혈병을 얻어서 아이와 엄마가 헤어져 각각 다른 병동에서 투병을 하게 되었다. 아이의 아빠가 아이를 간호하고 엄마는 가족들이 교대로 간호를 해 준 것 같다. 시간이 꽤 걸려 아이는 건강을 되찾았지만 엄마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았음에도 결국 하늘나라로 갔다. 이 엄마의 블로그를 보고 소식을 접한 당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이도 불쌍하고 아빠도 불쌍한데 하늘나라로 간 엄마는 더 불쌍하고 가여웠다.

우리보다 먼저 치료가 끝난 한 엄마는 당뇨에 걸려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직 젊은데 당뇨에 걸린 것도 창피하고 약을 먹는 게 너무너무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먹고 있다고도 했다.

부모로서 아픈 자녀에게 헌신적으로 간호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엄마인 내 건강도 챙겨가면서, 지키면서 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게 쉬우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해보았기 때문에 감히 말씀을 드린다. 얼마든지 가능하고 아픈 자녀와 내가 모두 똑같이 건강해지는 비결이기도 하다.


아빠는 가정의 기둥이고 엄마는 삶의 근간인 뿌리라고 생각한다. 뿌리가 흔들리거나 뽑히면 정말 끝이다. 기둥이 뽑히면 다시 세우면 된다. 이런 걸 이 책이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래야 하지만 특히 엄마는 자기 몸을 정말 잘 돌보는 게 첫째다. 그러면 엄마도 뭐든 다 할 수 있다. 육아로 시간의 제약은 있을지라도 그것도 어느 정도가 지나면 극복할 수 있는 일이다. 일 보다는 엄마의 건강이 그 무엇보다 먼저다. 엄마가 살아야 가정도 산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회복해 돌아오는 시간도 짧다. 엄마가 건강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아픈 아이를 간호하더라도 아이에게만 올인하지 말고 엄마인 내 몸도 잘 챙기자.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


내가 막내를 출산한 해인 2016년에 우리 동네로 이사 오신 분들이 계신다. 인천에서 오셨는데 두 분 모두 암 환자였다. 치료를 끝내고 요양하러 오셨다고 했다. 아저씨는 비인강 후두암이었고 아주머니는 유방암이었다. 내가 이분들의 얘기를 꺼내는 이유도 이 아주머니의 방법이 참 지혜로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아저씨를 살린 건 이 아주머니의 역할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똑같이 암 환자인데도 아저씨는 여전히 환자이고 아주머니는 암에서 자유로워지셨다. 아저씨가 비인강후두암에 걸려 다 죽게 생겼었는데 아주머니께서 기가 막히게 간호를 잘하신 것 같다. 아저씨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린 건 물론이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하면 음식을 정말 잘 먹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든 해서 잘 먹을 수 있게  조치를 취했다는 것, 그래서 치료 스케줄대로 치료를 잘 받을 수 있게 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암에 좋다는 각종 효소를 담으셔서 그 효소를 물처럼 상시 복용하게 했고 아저씨가 뭐가 먹고 싶다 하면 즉시 대령했다고… 아주머니도 보호받아야 할 암환자인데 정말 정신력으로 그렇게 버티신 것 같다. 아주머니는 항암과 방사선 치료로 속이 울렁거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는데 고추장으로 밥을 비비면 괜찮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치료하는 동안 장독대 고추장을 다 퍼 드셨다고도 했다. 아저씨는 방사선 30번에 피부가 까맣게 변했고 청력도 거의 다 잃으신 데다 치아가 모두 소실되어서 바깥음식을 전혀 못 드신다. 그런 아저씨가 모든 음식을 골고루 드실 수 있게 아저씨한테 맞춰 요리를 해 주신다. 아저씨를 살린 건 진짜 아주머니 몫이 90% 이상이라 생각한다. 아저씨에겐 비인강후두암 이후로도 대장암도 왔었는데 아주머니 덕분에 또 위기에서 벗어나셨다. 약해진 체력 탓에 그냥저냥 잘 지내시는 편이고 아주머니는 얼마 전에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으셨다. 사람은, 특히 엄마(아내)는 어떻게든 살아야지! 어떻게든 살려야지 하는 강한 의지, 그 누구도 꺾지 못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것 같다. 아랫집 아저씨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적어 보인다. 본인 스스로 환자라고 생각하고 받으려고만 하신다. 자신의 병을 자신이 알아보거나 이겨내려고 하지 않으셨다. 아주머니가 다하셨다. 아주머니는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계셨다. 밤에도 낮에도. 아저씨 케어하시는 것 보면 정말 지극정성이다. TV에 나올 법도 한데… 알면 알수록 놀랍고 신기하다.


아랫집 아주머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엄마(아내)가 건강해야 집안이 살고 가정이 순조롭게 잘 돌아간다는 걸 알 수 있다. 아프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렇기 때문에 평소 엄마 건강은 누가 챙기나? 엄마인 내가 챙겨야지! 아무리 생활이 편리해지고 좋아졌다고 해도 엄마가 감수하고 희생해야 할 부분은 여전히 많은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는 아파도 견뎌내게 되어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해도 아내의 건강을 책임져주지 못한다. 간혹 텔레비전 다큐나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아픈 아내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남편들을 본 적은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흔하지 않은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님 세대의 남편은 아직도 아내가 엄마처럼 보살펴주고 (떠) 받들어 주기를 은연중에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아프면 더하겠지.

아이들은 어려서 케어를 해줘야 할 상대니까 엄마의 건강을 마음 써 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엄마의 건강을 챙겨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엄마 본인이 알아서 잘 챙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난, 내 건강먼저 챙긴다. 좋은 건 내가 먼저 먹는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엄마는 뿌리다. 한 가정의 뿌리. 뿌리는 한번 뽑히면 끝이다. 뿌리가 흔들리면 끝이다. 그렇기에 미리미리 챙기자. 엄마의 건강이 먼저인 이유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일이  생긴다. 건강하다고 느끼면 건강해지고, 부자라고 느끼면 실제로 부자가 된다. 평소의 생각과 느낌이 나를 만든다. -조셉 머피의 ‘잠재의식의 힘’-


#엄마

#건강

#먼저

#우선

#엄마건강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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