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유성이 너에게 편지를 꼭 쓰고 싶었어.
유성아, 잘 지내니?
벌써 6년이 지났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땐 지범이가 세 살이었는데 지금은 벌써 아홉 살이야. 유성이 넌 여전히 고3 소년인데..
함께 한 시간이 2주도 안되는데 나는 너를 평생 기억하게 될 거야. 너무 고맙고 또 너무너무 미안해서 가끔 눈물도 나.
1인실에 격리되어 있다가 2인실로 갔을 때 많이 궁금했었어.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혹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을 만나면, 어린 지범이와 나는 병실에서 숨 죽이고 지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울 것 같아 걱정도 한가득 했었지. 그런데 웬걸. 유성이 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도 우리에게 한없이 배려해 줬어.
항상 커튼에 가려져 있어서 널 볼 수가 없었고 목소리로만 간간이 소통을 했었지. 딱 한 번 너를 봤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1인실로 가게 되었던 그날 언니가 서류 절차를 밟을 게 있다고 유성이 너를 잠깐만 봐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나는 너를 처음 본 찰나 기함했어. 넌 입꼬리를 겨우 올려 최선을 다해 미소 짓고 있었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어른답지 못했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말랐고 창백한 너의 모습을 처음 본 난, 소스라쳤어. 당황한 탓에 수습도 티 났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실망하기엔 너무도 충분한 시간이었어.
심지어 당시엔 미안해할 줄도 몰랐어. 아무리 초보였어도 그렇지 그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깨달았을 땐 넌 이미 하늘에 있었어. 우리가 1차 항암을 끝내고 퇴원했을 때, 마지막으로 가고 있는 너를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어. 지범이처럼 유성이 너도 당연히 살 거라고만 생각했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무조건 살 거라고 근거 없는 희망을 가졌어. 언니가 왜 그렇게 남몰래 슬피 울었는지도 나중에야 깨달았어. 우리는 146병동도, 백혈병도 처음이었고 치료도 처음인 때라 모르는 게 너무 많았어. 그래서 유성이 네 몸에서 매일매일 보여주는 신호가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걸 생각조차 못했어. 물을 빼내도 금방 또 배에 복수가 차서 힘들어하는 걸 공감하지 못했어. 순간순간을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줄도 모르고 좋아질 거라고 믿었어. 그냥 지금 많이 아픈 때인가 보다 했어. 시기만 잘 넘기면 다시 완쾌될 거라고 믿었어. 너무너무 몰랐어. 그게 제일 미안해. 꼭 사과하고 싶었어. 나의 무지함이 너에게 큰 상처를 준 것 같아 지금까지도 죄책감이 들어. 문득문득 네가 생각날 때마다 고맙고 눈물 나게 슬퍼. 극심한 통증으로 웃는 게 정말 힘들었을 텐데 나와 지범이에게는 항상 미소 지어 주었다는 것을 알아. 한 병실에서 같이 있던 시간이 열흘이 조금 넘었을 거야. 정말 짧은 시간이었는데 언니와 유성이 넌 몇십 년을 알고 지낸 사람 같았어. 2주가 안 되는 짧은 그 시간, 그 병실의 우리가 생각나.
유성아,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 중에 추석연휴가 끼어 있었잖아. 그때만 해도 유성이 네 컨디션이 좀 괜찮았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난 그때가 병실 생활 중에서 가장 따뜻했고 행복했어. 명절이라고 시부모님께서 대하를 보내주셔서 우리 나누어 먹었었잖아.
언니 말이 “우리 유성이 대하 엄청 좋아하는데, 이렇게 크고 맛있고 싱싱한 대하는 처음 먹어 본다. “ 그랬어. 그리고 유성이 네가 청국장 좋아한다고 먹고 싶다고 해서 친정 엄마에게 부탁해 바로 청국장도 대령했어. 울 엄마 청국장 정말 끝내주거든. 요즘 아이 답지 않게 토속적인 청국장을 좋아한다고 해서 너한테 정이 느껴졌어. 나도 병실에 묶인 몸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불가능은 없더라고. 수도권에 친정이 있었고 마침 친정엄마는 청국장을 하실 때였어. 병원 밥이 맛이 없다고 엄마 청국장 먹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날로 엄마가 정성스럽게 청국장을 팔팔 끓여서 급냉동한 걸 보내주셨지. 오자마자 유성이 네가 먹을 수 있게 언니에게 전달했어. 언니는 청국장이 진국이라며 너무 고맙고 잘 먹었다고 몇 번을 말했어. 나와 지범이를 만나서 병실 생활도 편안하고 생각도 못한 대하와 청국장까지 먹게 되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내 손을 꼭 잡고 얘기했었어. 언니 눈가에 맺힌 눈물에 나도 뭉클하고 감사했어.
1년 넘게 꼼짝없이 침대에만 있었고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연락 또는 찾아와 주는 친척이나 식구들도 없이 외롭게 지냈다는 얘기를 들었어. 사람의 온기와 정 없이 보낸 시간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지쳐 보이는 언니의 표정과 어깨, 몸짓을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퇴원할 무렵이었어. 그 며칠 전에 1인실로 옮겨 간 언니와 너를 보기가 어려웠어. 언니가 복도 구석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우는 걸 봤을 때 그냥 무조건 꼭 안아주었어. 어깨를 쓸어 주고 토닥토닥해 주었어.
마약성 진통제로 버티고 있는 유성이 네가 정신이 혼미해져서 엄마도 못 알아본다며 온몸을 떨면서 울고 있는 언니를 진정시켜주어야만 했어.
유성이를 위해 신부님을 알아보고 있다고 들었어. 우리가 퇴원하던 10월 11일, 146 병동을 나오면서 신부님 복장을 한 분을 뵈었어.
외래로 다니며 언니가 궁금해서 146 병동을 계속 기웃거렸는데 언니가 없어서 설마 하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대구로 내려갔다고 들었어. 우리가 퇴원한 다음 날 유성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사실을 한 달 만에야 알았어. 함께 한 시간이 있었기에 충격이 컸어. 지범이 건강해지고 학교 다닐 때 유성이 형아랑 꼭 다시 만나자고 했던 언니 말이 지금도 생생한데… 언니는 유성이가 곧 떠날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희망을 갖고 백혈병을 이겨내길 바랐던 거였어. 언니가 갖고 있던 에너지를 끝까지 우리에게 나눠준 거였어. 그때 그 신부님께서 유성이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해 주시려고 다녀가신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 그 당시 나는 나대로 지범이를 케어하고 지범이만 챙기느라 유성이를 생각하지 못했어. 미안해. 너무 미안해.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한 마디라도 더 따뜻하게 건네고 손도 잡아주었을 텐데… 퇴원하면서 어떻게든 인사를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외롭게 떠나게 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유성아
퇴원하기 직전까지 같은 병실에 있었다면 유성이와 우리는 제대로 작별할 수 있었을까?
1인실로 격리되어 가던 날 유성이를 바라보며 꼭 또 만나자고 했었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였다는 게 지금도 아리다.
병실생활 왕초보였던 나는 모든 게 다 어설퍼 보였을 테고, 신경에도 거슬렸을 텐데 유성이 넌, 짜증한 번 내지 않고 신사답게 끝까지 매너 있고 의젓했어.
치킨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먹고 싶어서 시킨 것을 지범이에게도 나눠주고, 식사 때마다 고기만 찾는 지범이를 위해 전자레인지용 고기 굽는 용기도 우리에게 주었지. 지금도 갖고 있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지범이를 친동생처럼 예뻐해 주었고 친형처럼 따뜻하게 대해줘서 너무 고마웠어. 지범이가 약물 부작용으로 신경질도 부리고 나한테 떼썼을 때 바로 옆에서 유성이 넌 훨씬 더 힘들었을 거야. 몸이 조금만 아프고 힘들어도 짜증이 나기 마련인데 유성이 넌 어떻게 견뎠는지 지금도 놀라워. 많은 기계를 주렁주렁 달고서 힘들게 버티면서도 커튼 너머로 지범이에게 따뜻한 말과 미소로 대해 주었던 너를 영원이 기억할게. 고맙고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많이…
유성아,
내 기억 속의 넌 언제나 영원히 멋진 소년이야.
하늘나라에서는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 엄마 꿈에도 나타나주고 말이야. 언니가 많이 기다리더라고. 잘 지내 유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