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공유와 창작의 경계에서
2024년 2월, 한 통의 전화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글 내려주세요. 저작권 침해입니다.”
“오일 레시피 함부로 올리면 안 돼요.”
에센셜 오일을 사용하며 알게 된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자의 말이었다.
2023년, 불규칙했던 생리 주기를 궁테라피로 잡은 후, 나는 다양한 오일의 효능과 블렌딩 방법을 블로그에 올렸다.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저작권 침해’라는 말에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아로마테라피 자격증을 막 취득한 나는 위협을 느꼈다. 겁이 났다.
즉시 글을 내렸다. 당시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문이 생겼다.
과연 오일 조합에도 소유권이 있을까?
에센셜 오일은 향기로운 자연의 선물이다.
라벤더는 ‘오일의 어머니’, 프랑킨센스는 ‘오일의 왕’이라 불릴 만큼 치유력이 강력하다. 페퍼민트는 두통해결사로 통한다. 자몽은 해독 반장, 레몬은 탁월한 독소 배출로 유명하다. 클로브는 항산화 지수가 최고이고, 티트리는 항균·항염·항바이러스 작용이 끝내준다.
이처럼 각각의 오일은 고유한 효능을 지니면서, 블렌딩을 통해 단순히 섞는 것 이상의 시너지를 낸다. 예를 들어, 자몽과 로즈마리는 활력과 집중력 향상에, 프랑킨센스와 미르는 면역과 구강 건강에 특히 좋다.
그렇다면 이런 조합에도 법적인 소유권, 즉 ‘저작권’이 적용될까?
현행 저작권법은 ‘사실’이나 ‘정보’가 아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을 보호한다.
우리가 요리할 때 ‘설탕 2스푼’은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하지만, 재료를 곁들인 창의적인 설명이나 자기만의 스토리텔링 조리법은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열날 때 라벤더 3방울, 로만 캐모마일 2방울, 프랑킨센스 2방울로 마사지를 해주는데, 이 블렌딩 자체는 보호받지 못한다.
다만 이 조합이 저작권 보호를 받으려면 아래 세 가지 조건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비율과 조합이 충분히 창의적일 것. 둘째, 효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있을 것. 셋째, 사용법이나 안내 방식이 독창적일 것.
즉, “라벤더는 진정 효과가 있다” 혹은 “이 조합은 열을 내린다” 같은 정보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보호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그것을 풀어내는 ‘표현’ 방식이다.
그러나 AI의 등장은 이러한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건강을 위한 자연 방법 중 하나로 나는 아침마다 오일 풀링을 한다. 어느덧 8년째. 회원에게만 알려주는 잇몸 건강 블렌딩 레시피를 최근 알게 되어 오일 풀링할 때 적용하고 있다. 그러던 중, 문득 궁금해졌다. ‘전문가가 알려준 방법을 AI도 알려줄까?’
그래서 ChatGPT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전문가 뺨치는 대답을 해줬다.
잇몸 염증 완화 블렌딩(10ml 드롭병 기준):
✔클로브 6방울+프랑킨센스 6방울+온가드 6방울+레몬 4방울+미르 8방울
✔효과: 염증 완화, 입안 세균 억제, 면역력 강화, 입냄새 개선 등
놀라웠다. 자극이 강한 클로브 오일에 주의를 주고, 더 순한 레시피까지 제안해 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형태의 레시피도 세세하게 제안해 주었다.
전문가 지식은 ‘저작권 침해’라며 통제를 받는데, AI는 그보다 더 구체적인 정보까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알려주지 않는가.
과연 정보 독점은 가능할까? 그리고 그 독점은 정당한가?
실제로 현행 저작권법은 ‘사실’, ‘레시피’, ‘숫자 정보’ 자체를 보호하진 않는다.
특히, AI가 자동 생성한 콘텐츠는 일반적으로 저작권 보호를 받기 어렵다. 그렇지만 인간이 개입해 창의적으로 편집하거나 선택한 경우는 예외를 두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잇몸 건강을 위한 블렌딩’ 자체는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위기감은 충분히 이해한다.
수년간 갈고닦은 노하우가 하루아침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되는 현실은 위협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저작권보다 전문성의 새 정의에 관한 문제다.
진정한 전문성은 정보의 소유가 아니라, 경험의 해석과 돌봄의 기술에 있다.
최근 라디오에서 들은 것도 요즘 흐름이 ‘소유’보다 ‘공유’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내가 만난 전문가들도 정보로 경험을 나누는 데 더 집중한다. 왜냐하면 진짜 가치는 정보 자체가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고 적용하며 케어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혈압 환자는 로즈마리 오일을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로즈마리 버베논 케모타입은 훨씬 순하게 작용하며, 간 해독과 피부 재생에 도움을 줘 고혈압 환자도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오일의 세부 특성과 사용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조율하고 피드백을 주는 것이 진정한 전문성이다.
AI는 정보를 주지만, 전문가는 케어(care)를 한다.
정보를 독점하려다 전문성은 오히려 더 협소해진다.
앞으로의 방향은 분명하다. 에센셜 오일의 효능이나 블렌딩 레시피를 알려주는 건 이제 누구나 할 수 있다.
정보를 감추려 해선 안 된다. 진짜 전문가는 정보를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를 이해시키고 안전하게 활용하도록 안내하는 사람이다.
작년, 저작권 침해로 내 글을 내리게 만든 전화 후, 나는 더 당당해졌다. 다시 블로그를 포스팅한다. 더 정성껏. 그리고 이제는 한 권의 책도 기획하고 있다.
직접 써보고, 실패해 보며, 내 삶에 깊이 스며든 블렌딩 레시피들. 그 안에 담긴 내 감정과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이제는 안다. 진짜 가치는 정보의 ‘소유’가 아니라, 경험의 ‘공유’에 있다는 것을.
나는 아로마테라피스트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오일의 혜택을 누리길 바란다.
직접 블렌딩 해보고, 시행착오도 겪으며, 자신만의 향기로운 여정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물론 안전성은 반드시 강조되어야 한다. 임신 중 금지 오일, 광독성 오일의 주의, 적절한 희석 비율 등은 가장 먼저 알려야 할 정보다.
향기는 자연이 준 선물이다.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다만, 그 향을 어떻게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그리고 어떻게 ‘개인에게 맞게’ 사용하는지는 전문가의 몫이다.
AI 시대의 저작권은 정보 독점이 아닌, 창의성과 경험의 표현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진짜 전문가라면, 지식을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AI가 글을 쓸 수는 있어도 삶을 써 내려갈 수는 없다.
저작권은 그런 인간 삶의 무늬를 보호하는 장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한 방울의 향을 귀하게 여기며 조심스레 글을 쓴다.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어, 작지만 깊은 울림이 되기를 바라며.
“진정한 전문가는 지식을 감추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이다.”
*참고도서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정지우·정유경 지음
이 글은 브런치(Brunch)에 처음 발행된 원작입니다.
ⓒ 2025 by [홍성화]. 글의 무단 복제, 편집 및 타 플랫폼 게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