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이 살아나고 매일매일이 행복하다
지난 3월 26일, 차가 멈췄다.
전날 까지도 잘 굴러간 차였다. 퇴근하고 앞마당에 딱 대려고 하는 순간 핸들이 묵직해지더니 그대로 멈췄다.
수리할 생각에 견적도 내 봤지만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다들 폐차하는 게 낫단다. 그래서 결국 13년을 함께 한 차와 헤어졌다.
편하게 출근하다가 하루아침에 버스를 타거나 걸어갈 생각에 순간 깜깜했다.
짜증도 났었다. 그러나 생각을 금방 바꿨다. 결국 자기 합리화 ㅋㅋ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다.
아침엔 버스로 출근하고 저녁엔 걸어서 다닌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걷는 것도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안 걷다 걸어서 처음엔 집까지 50분 정도 걸렸다. 벌써 한 달 반이 지났다. 걷는 것도 점점 익숙해지더니 시간도 점점 짧아지더라. 그러면서 두 다리도 더 튼튼해졌다.
아침에 등교하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파릇파릇했던 내 유년 시절도 생각나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교문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 인사 나누는 풍경도 인상적이었다. 시골에 학생들이 갈수록 줄다 보니 학생 한 명 한 명이 귀해서 그런가 선생님들이 교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과 허그도 하고 코로나 때처럼 주먹을 맞대는 인사도 하더라.
걸어서 힘든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너무 편해서 일부러라도 걸어야 하는데 걸어서 퇴근했더니 사람들이 난리다.
처음 걸어서 퇴근한 날, 날 본 사람들이 남편한테 그랬단다.
"왜 걸어서 가냐?"
"무슨 일이 있냐?"
"태워 주고 싶었는데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해서 못 태워줬다." 등등
처음에 이 말을 듣고 의아했다.
'걸을 수도 있지'
'걸어서 난 좋았는데...'
'걷고 싶어도 맘 놓고 못 걷나?'
이렇게 생각하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관심을 가져줬다는 사실에..
'관심을 받고 있었구나'
다들 바쁜 일상 속에서 남에게 별 관심이 없는 세상인데 시골이라 그런가?
도시에서는 그냥 파묻힐 별것 아닌 일도 시골에서는 다 드러나버린다.
결혼 후 나는
「◯◯이 각시」 또는 「떡방앗간 며느리」
라고 불렸다.
시부모님 얼굴 생각해서 조용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칭찬, 비난, 좋은 말, 흠이 되는 말 구분 없이 시골에서는 막 돌아다니기에..
그게 처음엔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쥐 죽은 듯이 바깥 활동을 안 하려고 했다. 그저 묵묵히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싶었다.
그랬는데 아이들도 커가고 일도 하면서 활동 반경이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아는 사람도 많아졌고.
지금은 그냥 소신껏 산다. ㅎㅎ
나는 남보다 나를 더 의식한다. ㅋ
걸어가겠다고, 운동 삼아 일부러 걷는 거라고 해도 빨리 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계속 거절할 수 없어 탔다. 동네 입구에서 내려 달라고 하면 또 끝까지 태워다 주신다. 사람 마음이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나도 태워주는 입장이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암튼 차는 멈췄지만 주위의 온정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잘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 급 관심 덕분에 또 감사함을 알았다.
오늘 아침엔 남편이 태워줘서 아이들과 학교 앞에서 같이 내렸다.
근무지까지는 3~4분 정도 더 걸으면 된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지도 하시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둘째 아이와 같은 반 아이도 만나 서로 인사했다. 그 아이의 엄마와 안부를 나누고 짧은 대화도 했다.
세탁소를 지나면 세탁소 냄새가 났고, 다방을 지나니 다방 향이 났다.
어느 식당 앞에 "콩국수 개시"라고 씌어있는 현수막을 보면서 ‘벌써 여름이구나' 싶었다.
오늘 낮 기온도 28℃까지 올라간다고 들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였다 갑자기 더워지니 건강 잘 챙겨야겠다.
올 12월 완공 예정인 행정복지센터 신청사 공사현장도 지났다.
우체국, 파출소를 지나 드디어 근무지에 도착했다.
30분 정도 여유 시간이 있었다. 햇살과 바람, 여유로운 시간까지 모두 느낀 오늘 아침도 너무너무 좋았다.
차로 출근했다면 못 느꼈을 것들을
차가 멈추고 나서
걸었더니 보였고, 걸었더니 느껴졌다.
오늘도 역시 행복할 수밖에.
행복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고
그걸 꺼낼 수 있는 사람도 오직 나다.
그러니 오늘도 즐겁게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