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사파리 재킷과 전쟁의 미학

by 소재수집가

오늘날 우리가 편하게 입는 옷들 가운데에는, 그 옷이 대중화되어 클래식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기까지 특정 인물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던 경우가 적지 않다.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역시 그런 인물 중 한 명이다. 헤밍웨이(1899-1961)는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전쟁을 글로만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며 글과 함께 문학을 만들어간 인물이다.


image.png 켄야에 있는 캠프 사이트에서 글을 쓰는 헤밍웨이, 1953년


그는 글을 쓰기 위해 전장 가까이로 들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당시 구급차 운전병으로 참전한 헤밍웨이는 포격으로 중상을 입었고, 이 경험은 그의 세계관과 문체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짧고 단정한 문장,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 태도, 고통을 묵묵히 견디는 인물들, 이른바 '하드보일드'라 불리는 그의 문체는 전쟁 속에서 체득한 감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공포와 고통을 정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최소한의 언어로 버텨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후에도 그는 그리스-터키 전쟁(1919-1922)과 스페인 내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거치며 종군기자이자 관찰자로 전장을 오갔다. 이렇게 전쟁을 통해 수많은 감각을 형성한 그는 난민의 행렬, 패전국의 혼란, 무너진 제국, 남성적 연대, 전우애 같은 주제를 그의 글 속에서 반복적으로 써내려갔다. 그에게 전쟁은 감각의 원천이었었다.


Ernest and Mary Hemingway on safari, 1953-54.jpg 켄야 사파리에서 매리와 함께, 1953-1954
Hemingway,1953-1954 safari.png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사냥을 한 후 포즈를 취하는 헤밍웨이, 1953-1954


이 과정에서 그는 밀리터리 재킷, 실용적인 셔츠와 팬츠 같은 전선에서 비롯된 '남성적' 스타일을 선택했다. 특히 쿠바에서 생활하며 사냥, 낚시, 탐험 같은 활동을 즐겼던 그는 사파리 재킷을 자주 착용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이 옷은 자연을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여가복이 아니라 식민지를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해 낯선 환경에 장기 주둔해야 했던 군인들의 생존을 위해 고안된 옷이었다. 즉 헤밍웨이의 사파리 재킷은 단순한 취향이 아닌 전쟁을 통과한 몸이 선택한 옷이었다.


사파리 재킷은 본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국 제국의 식민지 전쟁 속에서 등장한 옷이다. 유럽 제국들은 인도,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로 진입하며 정글, 사막, 초원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직면했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더위, 습한 밀림,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사막에서 기존의 유럽식 군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더위를 식히고, 움직이기 쉽고, 장기 주둔에 적합한 옷이 필요했고, 그 요구 속에서 만들어진 옷이 바로 사파리 재킷이다.


이처럼 사파리 재킷은 전쟁과 식민지 주둔이라는 조건 속에서 태어난 군사적 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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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바로 이 경로를 통해 사파리 재킷을 입었다. 정확하게 '사파리 재킷'이라는 이름은 이후 대중화 과정에서 정착된 명칭으로 본래는 미개척지(bush)에 원정을 떠날 때 입는 기능적인 옷이라는 의미에서 '부시 재킷'이라 불렸다. 헤밍웨이는 1933년 12월, 아프리카 사냥 여행을 마친 뒤 영국군의 부시 재킷에서 영감을 받아 오지 여행에 적합한 옷을 직접 구상했다. 그는 자신의 필요를 아웃도어브랜드 윌리스&가이거(Willis & Geiger)에 전달해 제작을 의뢰했고, 이 재킷은 헤밍웨이의 명성과 함께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19세기 말 뉴욕에서 출발한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는 헤밍웨이의 이미지와 유사한 탐험가, 사냥꾼의 이미지를 '도시 남성용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아베크롬비는 정식 군복을 제작하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식민지에 파견된 장교, 탐험가, 사냥꾼, 전쟁 특파원들에게 옷과 장비를 공급하며 전쟁과 탐험의 경험을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번역해낸 브랜드였다. 1930년대 후반, 아베크롬비는 부시 재킷을 개량해 '사파리 재킷'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며, 이 옷이 전장을 벗어나 일상의 스타일로 옮겨오는 데 중요한 매개 역할을 했다.


헤밍웨이 외에도 미국 제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와 세계 최초 글로벌 파일럿 찰스 린드버그(Charles Lindbergh) 같은 인물들이 아베크롬비의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알려져 있다. 아베크롬비는 이들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며, 카탈로그 속에서 사파리 재킷을 '헤밍웨이 같은 남자를 위한 옷'으로 적극 홍보했다. 실제로 1940년대 헤밍웨이가 여행, 수렵 중 촬영한 여러 사진에서는 아베크롬비 제품으로 추정되는 사파리 재킷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전쟁을 통과한 몸으로 전쟁의 감각을 글로 쓰고, 다시 그 전쟁을 통과해 탄생한 옷을 입었던 헤밍웨이.

오늘날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일상에서 가볍게 걸치는 사파리 재킷은 헤밍웨이가 몸으로 통과한 전쟁과 식민지의 기억이 옷이라는 형태로 일상에 남은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