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동훈 Jul 21. 2018

분노하라-앤디네뷰

똘레랑스와 살자니즘 사이에서 방황하는 프랑스

프랑스가 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그 주역인 이민 2세대 출신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크다. 현재 프랑스는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반 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세력과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차에 이번 프랑스 월드컵 우승이 새로운 장을 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크다. 하지만 월드컵 전사들을 환영하는 인파로 가득한 파리의 풍경과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머물던 깔레 수용소 자리의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현재 프랑스의 헌법은 세계2차대전 직후에 만들어졌다. 친일, 친미 또는 애매한 중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의 초기 헌법과 달리 그것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있다. 나찌에 대항해 싸운 레지스탕스들이 초안 작업에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단어 '똘레랑스'는 우리말로 관용이라고 해석된다. 개인의 자유는 존중되지만 그것은 반드시 박애와 평등의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된다. 이것은 프랑스 삼색기(Le drapeau tricolore)에 명확하게 정의되있다. 블루=자유, 화이트=평등, 레드=박애 말이다. 


이런 프랑스가 21세기 들어 변하기 시작했는데 한 레지스탕스가 이에 대해 일갈(一喝)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분노하라-앤디네뷰 


앤디네뷰, 앙가주망, 레지스탕스 이것은 프랑스 말로 저항, 분노를 뜻한다. 잘 알리진대로 레지스탕스는 독재 즉 파쇼(파시스트)의 가장 극명한 예인 나찌의 프랑스 점령에 대항했던 세력을 말한다. '분노하라!'라는 선동적인 구호가 제목인 이 책은 레지스탕스로 외교관으로 살아온 노 투사(老 鬪士)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호소의 글이다. 


저자 스테판 에셀은 특별한(작가와 예술가) 부모와 그들이 만든 독특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아울러 지금까지도 유명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다양하고 개방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철학적으로는 헤겔과 학교 선배인 폴 샤르트르에게 영향을 받았고 젊은 시절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고 그 기간 중에 나찌 치하에서 수감생활도 했다. 그후 UN의 설립 과정에 참여 함으로서 누구보다도 역동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그는 현재 프랑스를 비롯한 소위 자유주의 국가들이 그 선배들이 만들어온 자유와 박애의 역사를 뒤집는 것에 대해 분노를 감추기 않고있다. 특히 젋은 세대에 대해서는 이를 인용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좀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하려고 한다. 소위 반정부 학생운동에 연관되 추방된 홍세화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프랑스에 살면서 책을 하나 쓰는데 그게 꽤 유명했다. 바로 '파리의 택시 드라이버'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똘레랑스'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포용력-관용 또는 자유(특별한 상황에서라는 제한이 붙은)정도로 말할 수 있는 단어인데 작가가 프랑스에서 유색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낀 프랑스인들의 개방성, 따스함 등을 말한 것이다. 사실 프랑스는 어떤 서방국가보다 외국인들에 대해 개방적인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의 프랑스는 어떤가? 세계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財政危機)의 영향으로 거의 모든 국가가 비슷한 길을 걷고 있지만 특히 프랑스의 변심에 더욱 화가 나고 특별히 위기 의식까지 느껴진다. 



레지스탕스가 만든 사회보장 제도?  


프랑스 사회제도의 핵심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생존권의 보장이다. 인종과 성별, 나이 그리고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거주자에게 적용되는 인권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서비스인 셈이다. 이것은 2차대전 종전 후 레지스탕스의 정신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나는 잘 만들어진 사회보장 제도와 레지스탕스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궁금해진다. 


레지스탕스는 잘 알려진 대로 나찌 점령치하의 프랑스에서 벌어진 저항운동이다. 협의로는 나찌 치하의 프랑스 반군을 말하기 때문에 레지스탕스 정신에 입각한 사회제도라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저자(著者) 스테판 에셀의 설명에 따르면 레지스탕스 정신에 담긴 철학은 그 범위가 넓다.


나찌주의는 독재(獨裁)라는 가장 사악한 권력체제(權力體制)하에서 국가지상주의(國家至上主義), 인종주의(人種主義)로 군중을 선동했다. 레지스탕스가 봉기(蜂起)한 이유는 표면적(表面積)으로는 독일군에 점령된 프랑스의 탈환에 있지만 그 정신은 권력의 부적할 사용, 폭력과 착취에 대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레지스탕스 운동 내부에 사회주의 요소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정부는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다. 이에는 힘 없는 자들이 개인 또는 조직(정부 또는 회사, 기타 이익 집단)으로부터 불이익이나 유/무형의 폭력을 당할 경우 국가 조직이 그를 보호할 책임도 포함됐다. 그들은 국가을 비롯한 정치 권력뿐 아니라 기업도 노동자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노동법도 신경써 만들었다. 60여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한 이들이 존재했고 실천에 옮겼다는 것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앞으로 인류가 겪게 될 기업관료체제(企業官僚體制)의 위험성을 정확히 파악한 조치다.   



무관심의 문제 


시간이 지날수록 개개인은 세포화(細胞化)되어 간다. 어떤 집단에 소속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고 소속감은 희박하다. 그나마도 대부분 그 관계를 움직이는 힘은 돈이다. 보이지 않는 권력이 그걸 조장하기 때문이다. 또 과소비와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한 경쟁’을 조장하는 미디어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심지어 개인의 가치관과 개성을 존중한다는 이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는 개인의 특성마저 말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미디어를 통해 소비를 조장하는 기업논리에 쉽게 넘어간다. 실제로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개인은 소비라는 행위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귀찮아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사람들의 익숙한 무관심 속에서 개인의 권리나 생존권은 무시되기 십상인데 권력자들은 이전보다 더욱 쉽게 군중을 제어할 수 있게 됐다.


만일 사람들이 지금처럼 계속 소비하고 즐기는 것에 만 관심을 갖고 산다면. 그들 중에 마지막 하나가 남을 때까지 가장 약한 사람부터 하나씩 착취 당할지도 모른다. 무관심과 무기력은 지금 이시대 최악의 전염병인 셈이다.지금 벌어지는 사소해 보이지만 심각한 죄악들 뒤에는 인류의 파멸이라는 무서운 진실이 숨어있다. 지금 폭압을 가하는 이들도 미래에는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들 자신도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인류가 그렇다.


따라서 표출된 분노가 필요하다. 여기서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많은 사람들은 분노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하곤 한다는 것이다. 폭력으로 표출된 분노는 결과적으로는 그들을 분노케 한 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분노에 대한 행동에는 어떤 형태이던 폭력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특히 물리적인 폭력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젊은이들이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날지 모르겠다. 지금의 분위기로는 '밝은 미래 운운'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암울한 미래를 생각하기에 우리의 갈길이 아직 멀다. 생각해 보면 역사는 인간이 바꾸기에는 너무 크고 그 움직임은 너무나 곧다. 따라서 지구상의 어떤 국가의 정권이 바뀐다거나 어떤 제도가 어떤 지역의 상황을 바뀐다고 해도 전 인류가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진다고 단언해 말하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내 주변에 관해서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가던 높은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자원이든 아끼고 골고루 분배해야 한다. 인간의 특성상 자신의 소유가 늘어나면 자원을 낭비하는 경향을 보이며 거기에 더해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자원의 편중은 고갈(苦渴)을 촉진시킨다. 돈은 가진 만큼 소유자를 두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진 것을 나누고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인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변화를 싫어한다. 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뭔가 바뀌면 두렵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늙은 레지스탕스가 젊은이들에게 분노하고 행동하라고 외치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테드 창, 지옥은 신의 부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