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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훈 Oct 06. 2018

한국인의 가치관 · 역사관 · 교육에 관해...

미스터 션사인, 매국노 이완용 이야기는 蛇足

어떤 청소년이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완용이오? 열사인가요' 외워야 할 인물의 이름이 너무 많았던 탓일까. 아니면 조금 어려운 한자 이름에 의열단원 중 하나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단어 자체를 헛갈려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는 사례도 있다. 남침과 북침의 의미를 몰라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미스터 션사인에도 이완용 등장해


이런 이야기가 회자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있다. '역사교육 강화'라는 주제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오래되어 긴장감이라곤 일도 없다. 심지어 왠지 해결할 의지나 능력은 없으면서 습관적으로 내뱉는 누런 가래 같은 느낌이다.


많이 배워서, 가진 게 많아서 탈?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는 제도나 내용보다는 시대정신 즉 가치관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지금까지 바뀐 입시제도의 횟수나 규모 또 그 긴급성을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의 공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아이들이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하고 부모들이 보내고 싶어 하는 국내 최고 대학의 수준을 보면 알만하다.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인류의 표준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맨날 그 타령이다. 


고구려, 백제, 가야는 중국과 일본까지 진출했다. 안시성*은 고구려의 군사 요충지였고 백제도 요동지역에 요새를 보유한 적이 있다. 역시 요동지역에 있었던 백제관과 신라방은 두 나라 사람들의 집단 거주 지역이다. 일본 왕실은 자신들의 본류가 가야임을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가 원래 가락국 것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이것은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과 연관되어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가설이다.

심지어 발해는 지금의 중국과 러시아 영토에 나라를 세웠다. 한민족의 영토가 한반도로 좁아진 원인은 다름 아닌 이기심 때문이다. 김춘추가 당나라를 한반도 권력 투쟁에 끌어들인 이유는 신라의 생존을 위해서 라지만 후대에 좋게 평가되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당시에 백제와 고구려의 국내 사정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당나라 입장에서 신라의 구원 요청이 좋은 명분이 된 셈이다. 김춘추가 당 나라의 야심을 몰랐을 리 없다. 그는 그저 백제와 고구려가 없애는 목적에 집중한 것뿐이고 그것은 또한 왕위 계승에 중요한 발판이기도 했다.


작은 한반도 안에서 나만 잘나게 살면 그만 아닌가? 그게 목표라면 세계 속에서 우리의 수준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며 인류 보편의 가치 같은 것을 잡소리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좁은 땅 안에서 살아도 이 안에서 우리끼리 잘해먹고 살 수만은 없다. 100년 전 우리 조상들 그런 생각으로 살다가 치욕을 당했다. 이사실은 한 동안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을 통해 다시금 확인했다. * 안시성의 현재 위치는 중국 요령성 동부, 해성(海城)의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으로 추정됨

안시성 성벽 세트 @속초 씨네라마

우리만 잘났고 중국을 제외한 타민족은 오랑캐라고 낮추어 봤다. 심지어 종교적 이타심이나 열린 생각으로 서구 문물을 들여와 도와주려던 사람들까지 배척하던 우리다. 민족적 자긍심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이게 수구로 변질되고 지배세력의 권력 유지에 악용된 것이 문제다.

청계천은 돌아왔지만 이젠 개천에서 용 나기 글렀다.

지금이라고 많이 다른가? 세계 몇 위를 자랑했지만 정작 그중에 자랑할만한 게 몇이나 있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허울만 좋은 것이 많다. 인터넷 보급률 1위가 가능한 것은 좁은 땅덩어리 때문이다. 


이런저런 1위를 무색하게 하는 자살률 1위는 명예로운가. 우리가 대놓고 무시하는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 1위에서 3위를 오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정작 돈만 많이 벌게 해주면 영혼이라 팔 기세 아니던가. 


이 나라의 부모들은 자식 교육에 지나치다. 무조건 남들보다 잘나야 한다. 그러니 빨리 많은 지식을 아이들 머리 구겨 박으려고 재촉한다. 우리 현실의 삶 자체가 경쟁이니 아이들을 들볶는 모습은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물론 많이 배우고 아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많이 배운 만큼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인생이 많으니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참 안쓰럽다. 왜 이렇게 급하고 극성스러울까 오랫동안 고민해봤다. 그리고 역사에서 답을 얹었다. 


못나서 그렇다. 늘 약소국으로 살았고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짓밟혀서 그렇다. 그러다 군사정권 시절을 지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친일파 후손과 친미파가 득세하던 시절에 그런 배경 없이도 윗사람에게 잘 보이면 졸지에 신분상승에 대박까지 났다. 실제로 악착(?) 같이 공부해서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 이야기다. 그렇게 용된 분들이 개천을 막아 도로를 만들고 작은 피라미까지 씨를 말렸으니 그들이 구한말 매국노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대표적인 인물이 붉은색 옷 좋아하는 그분이다.


잘 달리기만 하면 그만인가. 그 끝에 무엇이 있는데?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의 조급증은 읽고 이해하는데 올래 걸리는 문자보다는 영상을 선호하게 만든다. 실제로 영상 정보는 어떤 매체보다 대뇌에 빨리 전달된다. 대신 쉽게 잊힌다는 맹점도 있다. 따라서 정작 머릿속에 남는 것은 몇 가지 사실들뿐이다. 그마저도 엄격히 말하면 엉뚱하게 해석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아이들이 딱 그렇다. 시대가 이렇다 보니 영상이 돈벌이 수단이 되고 극소수 영상 콘텐츠 창작자들이 돈방석이 올라앉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는 쓰레기를 쏟아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식을 쉽게 얹기 위해서 만든 매체로 인해 본말(本末)이 전도된 상황이다. 그들이 전하는 팩트는 대부분 사라지고 내뱉은 원색적인 표현, 선동적인 구호로 인해 보는 이는 의식화된다. 말이 거칠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기초가 부족하고 명확한 가치관이 없으니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나침을 선택하는 것이다. 실제 그것이 먹혀 들어가는 세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인기 도서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독서도 인맥을 쌓기 위한 도구?

이 사회에는 그렇게 만들어진 시각이 굳어진 아이들, 어른 들로 넘쳐난다. 사건의 본질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능력도 없다. 정보는 그저 필요할 때 엮어낼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다. 얇고 넓은 사교용 수준 말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최고 대학 도서관의 대출 순위에 '넓고 얕은 지식'을 논하는 책이 올라가 있을까.

어떤 사람의 말에 진정성이 있는가 또는 정확히 알고 있는가는 문장의 맥락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요즘 척추 빠진 말들이 흔하게 유통된다. 더 큰 문제는 남의 말이나 글의 뜻을 이해 못 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것이다. 어떤 매체가 감사하게도 여기에 적절한 용어를 붙였다. 바로 '신문맹률'이다. 몇 해 전 외국 조사기관이 이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1퍼센트도 안되는 나라이면서 동시에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나라로 평가됐다. 잘 생각해보면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SNS가 딱 그렇다.



 

현생 인류가 학문을 발전시킨 근원은 삶의 목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고생하며 살다가 죽어야 하는 진짜 이유를 알기 위해서였다. 현대인은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해석해야 한다. 특히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얹어야 하고 빨리 해석하고 익숙해져야 남들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삶이 전쟁터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의 기초인 철학이 추구하던 목표가 말해주듯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없다면 그 위에 덮인 수많은 브릭을 조립해 당장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기초가 흔들리면 그것은 다시 무너진다. 

우리 세대가 요즘 아이들을 그렇게 키운 셈이다. '요즘 아이들 문제야'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키워졌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에게 면벌부를 주고 싶다. 그들에게 먹고사는 문제가 각박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핑계를 대기 어렵다. 80년대와 90년대 소위 경제성장기를 겪으면서 문화적 풍요까지 누렸다. 지금은 흉내도 못내는 아날로그 감성 말이다. 심지어 밀레니움 교체기에는 진짜 경제적 풍요까지 누렸다. 그래서 지금이 더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우리마저 아이들에게는 각박함을 가르치고 있다.


기준이 달라져야 해

드라마 하나를 보더라도 형식이나 겉으로 보이는 화면 하나 즉 컨테이너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철학, 가치관 즉 컨텍스트를 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요즘 화제의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은 구한말을 그려내고 있다. 매국노와 의병이 등장한다. 글 초입에 언급한 이완용도 등장한다. 그는 구한말에 살던 매국노가 분명하다. 하지만 매국노는 1900년대 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현실에 우리 안에 있다. 남보다 내 안위가 중요하고 세상의 아이들보다 내 새끼가 더 중요한 보통 사람들 안에 말이다.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보다 지금 내가 사는 하루가 더 중요하다면 내가 바로 이완용이다.

드라마 미스터션사인

드라마에서 대놓고 사악함을 드러내는 일본 귀족 출신 모리 타카시가 이렇게 말한다.

으르미년 으병의 자시그드른 지금 무어르하고 이슬까요?

나는 말한다. 임진년 의병의 자식들이 임오년에 의병이 되고 임오년 의병의 자식들이 광복군이 되는 과정 속에서 나라의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또 대다수 백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아마도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너처럼 또 우리들처럼 말이다. 무엇을 하던 다 자기 가치관에 따라서 말이다. 그것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 그래서 개개인의 가치관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누군가에 묻는다. 

2016년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보통 사람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설마 그 난리를 일으킨 어떤 이들에게 거금을 기부한 어떤 회사의 최신 핸드폰으로 이걸 보고 있는 것은 아니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이는 화를 낸다. 또 다른 이는 그렇게까지 살 필요 있냐고 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묻는다. '매그노의 자시그드른 지금 어디서 모하고 이슬까요? '자르 머꼬 덩덩거리며 사르고 이슬거료'


확고한 가치관이 바로 서지 않으면 역사의 악몽은 계속된다. 잘못한 것은 잘라내고 잘한 것은 이어가야 한다. 나는 윤회를 믿지 않지만 역사와 삶에는 어떤 흐름이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간혹 예전에 일어난 것과 흡사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설사 완전히 다른 일이라도 사람들은 이미 배운 역사에서 비슷한 경우를 찾아낸다. 그런 의식과 가치관을 지난 사람은 적어도 반복되는 큰 실수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점점 횟수와 규모가 줄어든다.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다.


당시는 지금 무어르 하고 이슬까요? tvN 드라마 화면

바른 가치관은 뭘 많이 배우고 가진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려놓으면서 쌓인다. 보통 사람들은 삶에서 내 먹고사는 문제에 집착한다면서 열심히 살려고 할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그들을 소시민, 부띠 부르주아(Petit bourgeois)라고 부르며 혁명의 적으로 지목했다. 반면 세상을 바꾸려 했던 이들은 자신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혼란으로 몰아갔다. 




이 세상의 구조는 내가 남보다 더 잘 살려면 작고 약한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도록 만들어졌고 그것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내 하루의 성실한 발걸음 중에 누군가를 찰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지나친 비약으로 들릴 것이다. 그걸 안다고 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알고 모르고는 다른 문제다. 아는 사람은 더 많이 알게 될 것이고 알면 아는 만큼 행동할 것이다. 또 내가 그 진리를 이해했는데 아이들에게 그걸 전하지 않을 리 없다.

tvN 드라마 화면 캡처


이완용이 의병이 아닌 역적이었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아야 할 이유는 그것이 팩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대학 입시에 일 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의 선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해하고 그걸 내 삶에서 어떻게 겪어낼지 배우고 결국에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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