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우리 자신의 이야기
사랑하는 왕자의 곁에 있고 싶어서 목소리를 다리와 바꾸고 왕자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는 것을 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칼을 찌를 수가 없어서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 이 순애보(純愛譜)를 보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설마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심지어 자신이 그의 곁에 있을 수 없다고 해도 이겨내야 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 버릴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사랑이다는 식의 교훈을 줄 수 있을것 같지는 않다. 이동전화라는 요상한 매체가 세상에 나타나기 전까지 유효했던 옛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을 위한 안데르센 동어른들을 위한 안데르센 동화
작가와 우리 자신의 이야기
디즈니에서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를 만들기 이전에는 안데르센 원작(原作)의 이 단편동화는 적어도 애잔함이 있었고 섬뜩한 상상을 할 수 있는 무서운 장면(마녀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도 등장한다. 필자가 '이번에 어른들을 위한 안데르센 동화' 이 책을 통해 안데르센의 원전에 매우 가깝게 번역이 된 내용을 보고는 이미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도 섬뜩했던 부분이다
그림형제가 그들의 연구(형은 언어학자, 동생은 외교관이자 문학가)을 통해 수집한 민중설화를 재구성하여 집대성(集大成)한 '그림동화' 역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내용과는 다르게 잔혹한 내용이 있고 아이들이 읽기에는 부적절한 성적묘사가 많다. 동화라는 문학장르가 태동하던 시기에는 동화의 구독 층은 아이들이 아닌 성인들이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습관을 들이기 위해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했고 동화는 그 목적에 걸맞게 아이들이 공포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들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근친상간(近親相姦), 난장이들과의 집단성교가 그것이고 백설공주 시어머니의 식인(食人, cannibalism) 또한 그렇다. 또 빨간두건에 등장하는 늑대 역시 진짜 육식동물인 늑대가 아니라 연쇄 살인 [serial murder] 대한 이야기라는 주장(主張)들을 살펴보면 초기 동화는 권선징악이라는 동화라는 장르 [genre]의 본래 목적에 극도로 집착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회는 굉장히 복잡해지고 외부환경과 물리적 여건들이 안정되고 정신적으로는 잔열(熾烈)해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묘사 대신 복잡한 은유와 비유가 사용된다. 대신 아이들의 감정적 자극을 통해 치리를 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전래동화가 민간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단순히 아이들의 치리와 교육 이상의 무엇인가를 담고 있었고 이후에 순화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아는 동화의 모습을 거쳤다면 원저작자가 명확한 작품들이 있다. 바로 안데르센의 동화가 그렇다.
안데르센은 소재로 민간설화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스토리 라인이나 담고자 했던 내용은 순수하게 자신의 창작이었다. 심지어 아이들을 위한 동화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문제를 표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따라서 안데르센의 동화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데르센이라는 작가가 평생 지병처럼 앉고 살았던 마음의 병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안데르센의 가정환경은 경제적으로 가난했다는 것은 물론이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는 것 게다가 정신병을 알다가 죽은 아버지(의붓아버지 였다는 설도 있음)와 아버지가 다른 누이가 있었지만 이를 평생 숨기고 살았다. 안데르센은 평생 이 불우하고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배경에 늘 영향을 받았고 이런 자신의 환경을 벗아나고 싶어했다. 어린시절부터 신분상승을 꿈꾸었고 약간의 리플리 증후군 증세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매우 불안정한 정서를 가진 어머니 슬하에서 늘 외롭게 자랗고 평생 애정결핍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평생 상류사회 부자나 귀족 가문의 아가씨들을 동경했고 가수나 작가들 같은 재능있는 여자들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장애를 가진 두 여성과의 평생에 걸친 우정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연애 경험도 없었다.
이런 그의 모습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기게 되는데 인어공주의 비극적이며 절절한 사랑이야기에서는 인어공주에게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고 미운오리새끼에서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모르는 아기 백조에 자신을 투영했다. 한편 엄지공주에서는 엄지공주를 사랑하지만 요정왕자 앞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던 제비로 그의 마음이 등장한다.
중년의 안데르센은 동화작가로 서유럽에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다소 과장된 자기자랑과 무례함에도 그의 능력을 알아본 몇몇 귀족들이 작가로 명성을 쌓기 이전부터 그를 후원했기에 의식주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첫 동화들이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독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얹게 된다. 철저하게 문어체로 씌어진 그의 글은 모국에서는 외면를 딩했지만 번역작가가 독일어 동화 구연용으로 번역을 하면서 그의 문체 역시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당시에는 아직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작품의 출판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은 없었지만 귀족과 유력인사들의 후원으로 안데르센 자신은 남은 여생을 안정적으로 살게되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어머니를 부양할 능력은 되지 못했다. 성냥팔이 소냐는 결국 가난하게 살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오마쥬를 담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