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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훈 Sep 27. 2018

동성애 문제 · 욜로 · 종교 이기심 = 방종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웬 참견?

지난여름 인천공항은 늘 그랬듯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제 곧 다가올 추석 연휴에는 더 할 것이다. 국제공항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이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곳의 용도를 생각해보면 이런 짐작은 대부분 맞는다. 사람들이 "어렵다. 어렵다". "죽겠다. 죽겠다" 해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늘 부정적인 메시지를 생산하는 사람도 실상은 죽을 정도로 어렵지 않다. 진짜 어려운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 떠들 힘도 시간도 없다. 또 이런저런 이유로 현재 자신의 처지와 지금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안분지족(安分知足)에는 습관적인 불만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잘 살아갈 뿐이고 혹시 세상의 어려움을 보더라도 안타까울 뿐이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뭐가 문제야?


아내에게 물었다. 정글탐험, 빙하 트래킹 같은 특별한 체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비슷 비슷한 리조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지내다 오면서 꼭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 아내의 말인즉 "동남아시아 여행 가는 거나 제주도 가는 거나 그게 그것이니 같은 값이면 해외 가는 거겠지", "진짜, 그게 이유라고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 나의 질문이다. 사람들의 선택이 그 여행지가 좋아서 또는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어서 보다 가성비 때문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또 다른 생각도 든다. 흔한 해양스포츠만 즐기고 오던 티베트 트래킹을 하던 그건 자기 마음대로 아닌가? 그럴 자유가 있는 세상이 아닌가? 아! 자유 대한민국


요즘 부동산 시장이 들썩인다. 국내 경제상황은 부동산 거품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취약한데 갑자기 웬 버블(Bubble) 인가? 전문가들 말인즉 곧 강도 높은 부동산 억제 정책이 시작되니 그전에 뭐라도 잡아야 한다는 심리를 때문이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소위 말하는 상투 잡기와 막차 타기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뭔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여기서 또 놀란 건 한국에는 여전히 현금 부자가 많았다는 거다. 진짜 많은 것인지 아니면 허울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거품에 파리떼가 득실거린다는 것이다. 분양권을 받는 즉시 사고파는 야시장이 생길 정도고 심지어 분양권을 받기 위해 위장결혼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남 이사 내 돈으로 똥을 닦던 부동산에 투자하던 무슨 상관이냐? 그럴 자유가 있는 세상이 아닌가? 아! 자유 대한민국

오늘 이야기는 중구난방(衆口難防)이지만 주제는 하나로 흐른다. 들을 귀 있는 이는 들을 것이다. 다시 여행이야기로 돌아가겠다.


최근 어떤 젊은 여행 전문기자가 쓴 칼럼을 봤다. 내용인즉 어떤 여행을 가던 남의 경험과 즐거움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말라는 거다. 그건 순전히 꼰대 짓거리라는 것이다. 여행에서 반드시 뭔가를 배워야 하고 그것은 고생을 통해 나를 다시 찾는 기회라는 주장 즉 또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류의 여행이 진정한 여행이라는 어느 선배 칼럼니스트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하지만 이 세련된 사설은 근대 이후 팽배한 다원주의가 이 사회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안다면 또 글쓴이가 참견의 진짜 의미를 알았다면 조금 부드러워야 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그 선배 칼럼니스트의 주장도 일부 존중돼야 한다. 자기 맘대로라며?


다원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 신사적이며 세련된 이 단어의 본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걸 요즘 사회적 문제의 중심에 선 동성애 문제로 가져가보겠다. 미리 경고했다. 이 글은 중구난방이라고…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이다. 하지만 대놓고 반대나 찬성을 할 수 없다. 결코 자연스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동성애 반대 주장을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로 취급된다. 진리나 기준이 사라진 시대에 소위 세련된 사람들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 '지 좋을 대로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삶'이라 말한다. 이걸 애써 휴머니즘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해 동성애 문제에 대해 쓴 짧은 글에서 나는 미국인 소수가 주장하는 일부다처제를 언급했다. 소아 성애자나 동물 성애자 등도 우리의 성적 취향을 인정해 달라 주장한다. 어찌 보면 그들도 다원주의 사회의 한 구성인이니 '합법적이다'라고 인정해 줘야 하나? 또는 개인의 취향 은 반드시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관용하는 사람이 휴머니스트니까 말이다.


요즘 '탕진'을 의미하는 #YOLO 가 인생을 잘 즐기는 것의 의미로 사칭(詐稱) 되는 걸 보면서 이 세상의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알고 보면 이것은 마케팅의 산출물. '욜로욜로'는 지름신을 부르는 주문이다.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에 뭔가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다.


동성애 문제를 더 이야기해보겠다. 최근 국내 모 정당에서 동성애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소식이다. 정치인들은 잘 알려진 대로 보수 성향을 가진다. 하지만 그들이 지지한다는 동성애는 진보를 넘어서는 사안이다. 뭔가 이상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표가 문제다. 진보적인 여론이 동성애에 호의적인 마당에서 애써 반대할 이유도 없고 지지 선언만 하면 표를 더 얹을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중에 문제 되면 일부 몰지각한 의원들의 생각이 반영된 거라 얼버무리면 된다. 이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키워드만 남는다. 또 사람은 사라지고 욕심만 남을 가능성 말이다.


반대하는 쪽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동성애 반대에 가장 열심인 것은 소위 보수 기독교 단체다. 그들의 신념에 반하고 성경에도 금지하기 때문에 당연한 행동이지만 뭔가 이상하다. 반대 집회에 등장한 공연에 동성애자로 알려진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쓰이고 성조기가 등장했다. 급조된 느낌이 든다. 아니면 일종의 블랙 코미디인가? 그럴 리 없다. 있는 자원, 없는 품위까지 끌어모아 거기에 그들의 뇌에 심어진 애국 코드까지 죄다 섞어 끓인 짬뽕이다. 결론은 하나다 본질에서 벗어났다. 이걸 히브리어로 '하마르티아'라한다. 우상숭배와도 동의로 쓰인다. 한편 퀴어 축제에 참가한 임보라 목사의 이단 검증을 시작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이 분도 과함이 지나치다. 이 논쟁의 모습은 심하게 본질에서 벗어나있다.


성경이 동성애를 금지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것이 가나안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을 예배하는 종교의식에 하나고 그 근원에 자기들의 배를 채우고자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행동을 보라. 율법도 아니고 성경도 아니다. 더더욱 인간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다. 온통 자기 생각뿐이다. 이건 흡사 2000년 전 바리새인의 모습이다. 예수는 그들을 ‘뱀 새끼’라 불렀다. 요즘으로 치면 ‘개XX’와 같은 말이다. 사랑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것에 대한 질책이었다. 


동성애 문제도 자기 맘대로 하는 게 뭐가 문제냐라는 의식이 담겨있다. 내 몸인데 내가 여자랑 자던 남자랑 자던 무슨 상관이라는 것. 또 지지자들은 자기 것을 어떻게 쓰던 자기 자유인데 내가 뭐라고 그의 취향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나이스(Nice)해 보인다. 하지만 휴머니즘 차원에서 소수를 지원하는 것에 앞서 동성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인지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본질을 알기 전까지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자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상황은 반대던 찬성이던 유행에 끌려 다니는 모습이다. 이 문제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확장되고 변신할 것이다. 떡 하나 먹고 또 달라는 호랑이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또 다시 여행 이야기를 돌아간다. 미리 경고했다. 이 이야기는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들을 이는 다 들었을 것이라 믿는다. 어떤 여행을 하던 알아서 해라. 다만 이 사회에 주는 영향을 한번 더 생각해보자. 조금 더 소비하거나 반대로 소비를 줄이는 행동들의 변화를 말이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내 욕구를 줄이거나 바꿔보는 그런 행동. 그걸 해보라는 것이다. '착한 소비' 말이다. 외계어 같아도 배울 건 반드시 배워야 한다. 세상살이가 그리 쉬웠다면 큰 집에 비싼 차 타는 이들은 모두 행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또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정보도 마찬가지다. 당신도 알고 있듯이 대부분이 쓰레기고 실제 정보는 일부다. 게다가 최근에는 수용자, 생산자  구분없이 그걸 생산하는 있으니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조금의 위안이라면 미디어 권력이 없는 개인이 만드는 정보는 사회에 덜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 없이 퍼나르는 글이나 기계적으로 누르는 '좋아요'가 모이면 잘못된 유행을 만들 수 있다. 그것 역시 무섭다. 아니 돈과 권력을 따르는 매체의 글보다 기레기의 글보다 더 강하다.


'뭐 어때! 내 손가락인데 '좋아요'를 누르던지 말던' 그렇다. 대한민국은 '자유방종국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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