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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훈 Jan 26. 2019

8개 키워드로 보는 인터스텔라

광대하고도 얇아빠진 지식으로 알아보는 우주 서사시

우연히 본 예고편을 보고 울었던 영화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우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이런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다. 그리고 6개월을 기다려 드디어 인터스텔라(Interstellar)를 봤다.

 

이것저것 하고픈 이야기는 많지만 영화의 내용을 분석한다고 미주알고주알 풀다 보면 스포일이 될게 뻔하기 때문에 영화평은 늘 조심스럽다. 특히 이 영화는 하드 수준은 아니어도 여러 가지 가설들을 꿰어 맞추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보이기 때문에 호사가들의 공격을 받기 딱 좋은 작품이다. 나까지 숟가락 얹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도 하고픈 말은 있어서 선택한 방법이 키워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 영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총 8가지로 웜홀 또는 블랙홀, 일반 상대성원리, 토성, 큐브, 메시지,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페이스 콜로니이다. 더불어 덤으로 멸종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이다.

 


1. 웜홀/블랙홀(Worm Hole/Black Hole)


이것은 꽤 매력적이면서도 두려운 개념이다. 한때 블랙홀을 발견했다는 기사도 있었고 최근에는 가설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개념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는 아인슈타인의 쉬운 설명보다는 영화 때문이다. 이 현상은 이론적으로는 3차원 공간을 접어서 먼 거리 붙인다는 개념이지만 영화상에서 두 먼 거리를 사이에 빠르게 통과하는 지름길 같은 개념으로 등장한다. SF의 고전이 된 스타워즈 같은 영화에서는 하이퍼 스페이스(Hyper Space)라는 개념으로 일종의 고속도로처럼 웬만한 우주선은 원하면 언제나 들락거린다.


좌로부터 이벤트 호라이즌, 은하수를 여행하는..., 인터스텔라


하지만 웜홀 또는 블랙홀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중력이 작동될 것이라고 추정된다. 또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따라서 두려움의 대상인 것은 당연하다. 다른 은하계로 이동하는 통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세상의 끝이거나 세상의 시작점일 수도 있다. 이안으로 우주선이나 인간이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심지어 이것을 늘 가볍게만 다루던 스타워즈도 최근에 죽음의 이미지로 '중력 함정'을 도입했다.


블랙홀에 대한 온갖 상상, 추측 또는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가 있으니 바로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과 팬도럼(Pandorum)이다. 여기서 영화 제목 이벤트 호라이즌은 블랙 홀로 빛과 시간이 빨려 들어가면서 생성되는 수평선과 '시간의 소멸'을 의미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본 영화에서는 시각적인 설명에는 신경 안 썼다.


그것이 기술적 문제였는지 아니면 영화가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상태에 집중했기 때문이지는 알 수 없으나 아쉬운 부분이다. 이 갈증은 인터스텔라에서 해결된다. 이 영화에서는 블랙홀 주변을 맴돌면서 빨려 들어가는 이벤트 호라이즌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다. 



2. 일반상대성원리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역작 중에 하나이고 천체물리학 가설 중에 가장 대중적인 개념이다. 그 내용은 실제로는 무척 복잡하지만 아주 쉽게 풀어 설명하면 어떤 물체, 인간이 빛의 속도로 이동을 할 경우 어떤 지점에 고정된 물체나 인간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에 지배받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탐사팀이 행사 표면에서 고생한 몇 시간 동안 그 천제 위를 도는 본선에서는 23년의 시간이 흐른 것으로 표현된다. 더 공포스러운 상황은 탐사 대원들이 본선으로 귀환했을 때 본선을 지키던 동료가 백발의 노인이 될 때까지 지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물리학자, 1879년 3월 14일, 독일 - 1955년 4월 18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서는 시간뿐 아니라 물리량도 상대적으로 달라진다고 한다. 우주선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그 안에 타고 있는 인간의 질량도 변한다는 것이다. 웜홀 통과 후 물체의 물리적인 성질이 변화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 영화로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를 들 수 있다.


이 영화상에서는 하이퍼 스페이스를 통과한 후 우주선은 장미, 털실 뭉치 심지어 두루마기 화장지로도 변신한다. 기계장치뿐 아니다. 그 안에 탑승한 사람들은 털실로 짠 인형이 되기도 하고 우주선 멀미를 하면서 털실 쪼가리를 토해낸다.
    

3. 토성(Saturn) 


인터스텔라에서 웜홀은 토성 근처에서 발견된다. 지구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신비로운 우주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극의 전개를 수월하게 풀어가자는 의도지만 그 설정 자체가 보는 이를 자극한다. 한때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영향으로 목성이 주목을 받아왔다. 이 고전 SF의 결말인 '3001 오디세이'에서는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가 작은 태양이 된다. 실제로 천문학자들은 '목성이 태양이 될뻔했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뜬금없는 설정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토성이 주목받고 있다. 목성과 토성은 태양계 외행성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이고 일단 덩치 때문에 그 존재감이 큰 행성들이다.


좌로부터 오블리비언, 큐브, 컨택트


인터스텔라에서는 웜홀 진입 중 실종된 주인공이 토성 궤도에서 발견된다. 재미있게도 이것은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같은 설정이다. 또 영화 오브리 비언(Oblivion)에서도 지구인들이 외계에서 보내진 큐브를 처음 발견한 곳이 토성 궤도다.


4. 큐브(Cube) 


이것은 필자가 오해하고 있던 부분인데 큐브(Cube)라는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이 아닌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작품이다. 당시에 큐브릭이 이 영화를 극찬한 것을 두고 잘못 기억하는 것 같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는 큐브는 수감된 주인공들이 탈출해야 하는 감옥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인터스텔라에서는 조금 더 복잡한 공간이다. 물론 존재 목적도 완전히 다르다.



5. 메시지(Message) 


누군가 지구 밖에서 메시지를 보냈다는 설정은 영화 콘택트(Contact)를 생각하게 한다. 최근 국내에서는 같은 이름의 다른 영화가 개봉됐는데 사실 이 최근 작의 원제는 도착, Arrival 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여기서 설명하는 영화는 전체 물리학자이자 방송인 칼 세이건 원작으로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것을 말한다.


이 영화는 오래전 물리적 실체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지성체가 지구로 보낸 반복되는 신호로부터 시작된다. 이 신호는 스스로 이외에는 나눠지지 않는 소수로 해석되는데 이것은 스스로 우주의 배경 복사 같은 잡음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인터스텔라에서는 어떤 방법을 이용될까. 이것은 영화 시청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설마 모스부호(Morse Code)는 아니겠지?


앞서 설명한 큐브는 시공간이 휘어지고 변형된 아니 아예 그런 것이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큐브에 대한 정의보다는 그곳으로부터 지구로 온 신호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그곳에서 보내진 신호로부터 시작해 다시 그것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6. 스페이스 오디세이(A Space Odyssey)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 작품으로 공개된다. SF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서 C 클락의 삼부작 중 영화화된 것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2010 우주여행' 두 작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 소개되고 흥행에도 성공한 것은 전작뿐이다. 그런데 아서 클락의 원작에는 첫 작품으로부터 1000년 후를 그린 '3001 마지막 오디세이'가 남아있다. 나는 이 책을 번역한 적이 있어서 인터스텔라의 후반부를 보면서 이 작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은하수...의 마빈(좌) 인터스텔라의 타스


영화 인터스텔라 전반에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오마주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탐사대와 늘 동행하는 로봇 타스(TARS), 케이스(CASE)는 또 키프(KIPP) 이들은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모노리스(Monolith)를 생각나게 한다. 또 한편 그 로봇들의 긍정적인 태도를 보면서 정반대로 우울증에 걸려 있던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머리 큰 로봇, 마빈(Marvin)이 생각난다.

 

문고판 3001 마지막 오디세이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이 웜홀을 표류하며 시각적, 청각적으로 느끼는 모든 것들 또 시공간 개념이 없는 공간, 큐브에서 하는 행동들은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다시 보는 듯하다. 심지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토성 궤도에서 발견되는 것까지 동일하다.  

     

7. 스페이스 콜로니(Space Colony) 


개념은 건담 시리즈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건담에 등장하는 스페이스 콜로니는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작은 규모의 위성)의 원통형 방주 안쪽 벽에 인공적으로 생태계를 조성하여 인간이 거주하는 곳이다.


그것이 작은 규모라면 원통 구조 반쪽은 지면으로 나머지는 천공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지름이 충분히 크다면 원통 내부 모두가 지형으로 사용된다. 건담에 등장하는 콜로니가 원통인 이유는 중력 생성을 위해 회전해도 거주자들의 부담이 적은 형태이기 때문이다. 건담에는 여러 개의 스페이스 콜로니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지구 연방과 지온공국 사이의 독립전쟁에서 개별적으로 전쟁을 치를 정도로 거대하기도 했다. 스타더스트 메모리(Mobile Suit Gundam 0083: Stardust Memory), F91에 등장하는 것들은 그 규모가 거대하다.


 

좌로부터 건담 0083 소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엘리시움

 


작은 규모로는 영화 엘리시움(Elysium)에 등장하는 선체를 들 수 있다. 이것은 훌라후프 모양인데 이런 형태가 커지면 행성 궤도 전체를 감싸는 크기의 헤일로 01이 된다. 한편 생명체가 거주할 수 없는 행성의 지각 안쪽을 파 구형의 생태계를 만든 것도 있다. 헤일로 워스(HALO WARS)의 경우가 그렇다.


인터스텔라의 방주는 거대한 원통형인데 영화 후반부, 아이들이 골목에서 야구하는 장면에서 그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리고 '멸종'이란 키워드가 남았다. 인터스텔라의 초반에는 황무지에 심어진 거대한 옥수수밭이 등장한다. 설정상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작물이다. 어떤 이는 이 장면에서 끊임없이 날리는 먼지만 봤다는데 이렇듯 지구가 황폐해진 이유는 식물의 멸종이다. 영화에는 설명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동물 대부분도 멸종됐으리라 본다. 곡물 생산량이 줄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이 아프리카 사람들이고 그다음이 동남아시아인이고 이어서 대량으로 사육되는 가축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8. 바바나 멸종


물의 멸종은 생각 보다 흔한 일이다. 이미 지난 200여 년간 수많은 작물이 사라졌다. 동식물의 삶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요 적자생존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가치관을 들이대지 않아도 될 만큼 당연하지만 일부 종의 멸종에는 인간의 탐욕이 깊이 개입돼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나나이다.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애초 3개의 종류 중 가장 맛없는 축이다. 1900년대 중반 동남아시아에 서양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대규모 플랜테이션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엄청난 량이 재배됐었고  생산량은  계속 늘어났다. 하지만 전염병이 돌자 근본적인 대규모 밀집 재배의 문제가 드러났다. 한 곳에 숙주가 집중적으로 모여있으니 발병률도 높아지고 한번 창궐(猖獗) 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번졌다. 심지어 상당한 거리의 다른 대규모 농장으로 번지는 사례도 자주 일어났다.


바나나 플렌테이션 춡처 : 픽사베이


농장 운영 회사 입장에서 병에 약한 종자를 퇴출 시키고 강한 바나나를 선택했는데 그것이 지금 우리가 흔히 먹는 바나나이다. 반면 그렇게 버려진 다른 종은 지구상에서 아예 사라졌는데 여기서 문제가 다시 시작됐다. 종의 다양성은 줄고 여전히 집중적으로 재배하다 보니 새로운 전염병이 발병됐다. 최근 시장 점유율이 늘고 있는 '하이랜더 바나나'는 과육의 밀도나 당도를 높이자는 목적보다는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추운 곳으로 재배지를 옮긴 결과이다. '이것은 바바나 멸종'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과정이다.


여기서 한가지 종류가 남아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은 대량 생산이 어려운 종이면서 결정적으로 맛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나마도 대량생산에 들어가면 앞선 두 바나나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 뻔하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감자와 옥수수가 바나나의 선례를 따른 것으로 설정돼있다. 애초에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옥수수가 살아남자 땅도 그에 맞게 변한 것이다. 흙먼지 날리는 메마른 땅 말이다. 인간이 잘 살기 위해 선택한 결정들이 만들어낼 가까운 미래다. 이 영화는 배경과는 전혀 다른 '사랑'이라는 주제로 스토리를 이끌어 냈지만 나는 오늘 영화감독과는 다르게 살벌한 현실의 이야기를 해봤다.


나는 스포일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혹시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됐다면 미안하다. 그저 좋은 영화를 보면서 지루해하거나 황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이니 이해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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