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으로 가는 길
나는 지금도 가끔, 아주 어린 시절 어떤 잡지에서 본 한 장의 그림을 떠올린다. 당시에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란 걸 알았다. 그 그림에 담긴 특별한 상황 때문이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개봉 예정이던 일본 애니메이션을 홍보하는 몇 장의 스틸 컷 중에 하나였다. 그 내용은 이랬다. 외계인의 공격으로 파괴된 우주 식민지, 콜로니 외벽에 시체가 걸려있고 주변 공간에는 부서진 잔해들과 함께 미처 입지 못한 그의 우주복이 떠다닌다.
그래비티는 어린 시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면서 공포스러웠던 그 순간을 설명할 수 있는 영화다. 그 두려움은 죽음과 관련됐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내 일상과 연결된 생명선 없이 우주 공간에 덩그러니 놓인다는 상상은 우주의 깊이만큼이나 크고 넓다.
나락(那落/奈落)은 지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지만 아주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 공포가 딱 그렇다. 네 치도 안 되는 가슴이 순간 우주의 끝에서 다른 끝으로 곤두박질칠 때 느낌말이다. 이 영화는 STS 프로젝트, 즉 미 항공우주국 NASA가 지구궤도에 떠있는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진행했던 실제 미션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의 우주 탐험은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챌린저호를 비롯한 몇몇 참사(慘事)들이 있지만 일단 대중에게는 사고보다는 성공의 소식이 더 많이 전해졌다. 심지어 아폴로 13호 사고와 뒤이은 무사귀환은 명백한 실패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드라마처럼 극적인 성공 스토리로 둔갑시켰다. 물론 그들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고했다고 해도 우리의 일상은 크게 변화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모험심, 휴먼스토리, 탐험가 정신 등등 무엇으로 치장해도 우주탐사는 극단적으로 위험한 계획이고 그 세부 단계 하나하나는 여전히 무모(無謀) 하기 짝이 없다.
그곳에는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대사에 필요한 산소가 없다. 숨을 쉴 수도 없지만 뭔가 허파로 들어오고 나간다 해도 결국 세포들이 괴사할 것이다. 단 몇 초 만에 인간의 모든 조직을 얼려버리는 냉정함은 물론이고 순식간에 눈을 태워버리는 살벌한 우주선과 태양풍도 존재한다. 게다가 초저압 상태라 인간의 신체가 그대로 노출되면 피부는 내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찢긴다.
이외 열거하지 못한 많은 이유로 인간은 우주에서 생존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우주선과 우주복이 있어 지구 밖에서의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단단한 우주선의 선체 안도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래비티에서 닥터 스톤 일행이 탔던 우주왕복선은 인공위성 파편에 종잇장처럼 찢기고 말았다. 실제로 미국의 우주왕복선 두척은 지상과 우주를 오가는 사이에 폭발해버렸다.
완벽한 프로그램과 인력으로 무장했고 우주 쓰레기나 소행성의 위험을 미리 차단할 수 있다고 해도 우주선 밖의 작업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우리의 익숙함은 미디어 때문이다. 그동안 뉴스나 영화에서 자주 봐왔기 때문에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특별히 제작된 선외복과 비행장비 덕분에 외부 작업이 많아지다 보니 이제는 심지어 선외 작업이 쉬워 보인다. 하지만 영화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그것은 그 안의 인간을 오래 시간 지켜주지 못한다.
영화에서는 결국 라이언 혼자 지구로 귀환한다. 많은 우여곡절과 죽음의 선을 넘나들면서 말이다. 살아 돌아와 중력을 딛고 땅에 섰으니 이것은 고난 극복의 감동적인 장면인가? 그래비티는 그런 것을 느끼라고 만들어진 영화는 아닌듯하다. 주인공은 살아 돌아왔고 자막이 다 올라간 후에 스크린이 없는 어딘가에서 자신의 생을 살아갈 테니 그런 거라면 '잘 됐다' 싶다. 또 돌아온 후의 삶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면 약간 더 잘 됐다. 특히 죽은 딸과 이혼한 남편에 대한 기억에서 자유롭게 됐다면 더더욱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숨 쉴 공기가 있고 견고해 디딜 수 있는 땅이 있는 어머니, 지구(Mother Earth)를 떠난 인간은 어떠한 장비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해도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두려울 수밖에 없다. 어느 우주인이 임무 수행을 앞두고 남에게 절대 들켜서는 안되는 없는 공포에 지배돼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악몽이 현실이 되는 것이 바로 그래비티이다.
그가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에는 공기가 없고 디딜 땅도 없다. 즉 인간이 혼자 가기에는 너무나 어렵다. 아니 불가능한 길이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소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스톤 박사가 결국 지구로 돌아온 것에 대해 '감동이 부족하다'라고 평했다. 이 의견을 보면서 필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비티는 SF가 아니다. 배경이 우주이고 우주선이 나오니 그리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액션과 드라마를 기대 했다면 그는 이 영화를 괜히 본 것이다. 그래비티는 지금 현실의 모습이다. 인간적인 감동이 있다 또는 없다는 그저 개인차일 뿐이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 머리 위 하늘 어딘가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엄마 품을 떠난 아이가 고난이 지난 후 다시 돌아왔다. 단순히 사고에서 생존해 귀환했다는 스토리만 본다면 이 영화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이다. 이 영화는 지구로의 귀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간의 가진 공포와 그것에서 평안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소유스와 중국의 귀환 모듈에 있던 이콘과 불상은 괜히 등장한 소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