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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스트파이브 May 08. 2019

"장점을 목록으로 만들고, 그걸 바탕으로 용감해지세요"

패스트파이브 멤버 '스콜라스틱 코리아/재팬' 이수연 사장 인터뷰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은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정확한 제목이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받았던 느낌이나 풍부해진 경험들이 그 뒤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죠. 




이번 Member Interview에서 만나본 분은 세계 최대의 아동 출판사 '스콜라스틱' 코리아와 재팬을 맡고 있는 이수연 지사장님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아이들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아이들을 '좋은 사람'으로 키우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하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죠.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와 일하고 계신 기업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스콜라스틱 코리아와 재팬을 담당하는 사장 이수연이라고 합니다. 스콜라스틱은 100년의 역사가 있는 출판사로 세계에서 가장 큰 아동 출판사입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원서 유통을 하고 있고요, 많이 알려진 도서로는 <해리 포터>, <헝거 게임>, <매직 스쿨버스> 등이 있습니다. 



Q.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남들이 가는 트랙을 따라갔죠. 그때 제가 입사한 기업은 남성 위주의 회사였기에 팀에서 저만 여자였습니다. 제가 00학번인데 그 당시만 해도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요. 제가 ‘여자’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죠. 그곳을 6개월 뒤에 그만뒀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의 기억이 좋아서 연봉을 많이 낮추면서 출판사에 들어갔어요. 출판사로 옮기고 나니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일했던 출판사는 초·중학교 학습서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냉장고 마케팅을 하다가 아이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니 훨씬 재미있었죠. 그 뒤로는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PR 대행사에도 다녔었고 홍콩에 있는 스웨덴 회사에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출판사로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스콜라스틱 직전에는 외국계 출판사의 아시아 9개국 지사를 맡았었습니다. 스콜라스틱에서 일한 지는 이제 1년이 되었어요. 이전에는 한 달의 반 정도 출장을 다녔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출장을 다니기가 어려워지면서 육아와 커리어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왔죠. 다행스럽게도 스콜라스틱은 출장 없이 한국에서만 일할 수 있는 곳이에요. 일본 지사를 담당하게 되면서 서서히 다시 출장을 다니게 될 것 같기는 하지만요. 



Q. 스콜라스틱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스콜라스틱이라는 기업의 전체 직원은 약 5천 명 정도입니다. 뉴욕 본사에는 전문가들도 많죠. 얼마 전에는 하버드 교육학 박사이신 스콜라스틱 에디토리얼 디렉터를 한국에 모셔왔습니다.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는데, 라이브 방송으로 2천 명 이상이 시청했죠. 아이들에게 리딩과 파닉스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전문가가 직접 알려주니 관심도가 정말 높더라고요. 강연에서는 데이터리서치를 기반으로 해서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으면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런 지식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그러면 책은 자연적으로 팔리죠. 스콜라스틱 코리아는 이런 식으로 가정과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경험을 선사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스콜라스틱이 한국에 들어온 지는 18년이 됐어요.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이미 스콜라스틱을 인지하고 계시죠. 자연히 판매도 이어졌지만 1년 전부터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고 있습니다. ‘찾아가는 스콜라스틱’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 얼마 전에는 스콜라스틱 서포터즈 발대식을 했습니다. 독자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사실 발대식 같은 행사에 제가 꼭 갈 필요는 없지만 저는 전부 참여해요. 학부모들과 직접 소통하고요. 유아 교육전 같은 곳에 가서 모르는 척 ‘아이들에게 이 책 어떻게 읽히세요?’ 하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배우는 과정이 매우 즐거워요.

이렇게 독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그분들께 뭔가 해드릴 수 있을 때 가장 기쁩니다. 또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이 올 때 정말 뿌듯하죠. 인스타그램에서 #스콜라스틱 해시태그를 팔로우해두고 거의 모든 반응을 다 봅니다. 


이밖에는 주로 교보 등의 수입사가 저희 책을 잘 홍보·유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오픈마켓과 행사를 진행한다고 하면 수입사와 해당 마켓을 연결해서 원활히 납품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죠. 또 수많은 책을 읽고 검토한 뒤 한국에서 잘 팔릴 것 같은 도서들을 선별합니다. KT와 함께 애니메이션 런칭도 준비했는데, 그 작업은 일종의 브랜딩이죠. 이런 브랜딩을 통해 스콜라스틱의 책을 더 알리는 일도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의 80퍼센트 정도는 사람 관리인 것 같아요. 총무 일도 하고요. 가장 중요한 일은 비전을 제시하는 겁니다.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잡고, 어떤 부분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지 결정하죠. 



Q. 출판사 이상의 활동도 계획하시는 듯한데, 스콜라스틱이 어떤 회사가 되었으면 하시나요? 또 이 일을 통해 어떤 가치를 이루고 싶으신가요?


스콜라스틱은 가정에 ‘경험’을 주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도 할 수 있는 거죠. 콘텐츠의 형태와 관계 없이 좋은 경험을 주고 싶습니다. 

또 책을 보면 다양한 문화, 다양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그런 콘텐츠를 통해 아이들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스콜라스틱의 책 중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알려주는 책이 있습니다. 아이들 대상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지만 아빠 한 명과 아이로 이루어진 가정, 아빠 둘과 아이로 이루어진 가정… 이렇게 다양한 가족 형태를 보여주죠. ‘너의 목소리를 내봐’라는 책도 있습니다. 미국 총기난사 사건 이후 '우리는 안전한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 활동가들이 등장했어요. 그러한 현상을 바탕으로 해서 더 어린아이들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보라고 독려하는 책이죠.  

스콜라스틱의 책을 읽고 자란 아이들이 열린 생각을 갖게 되어서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국가의 인적 자원인 어린이들을 키워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웃음). 스콜라스틱의 책을 읽은 아이들이 ‘좋은 인간’으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Q. 한국에 스콜라스틱의 책을 소개할 때 선별 기준이 있으신가요?  


아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책인지를 최우선에 두고 고릅니다. 해외에서 아동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의 경우 무거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마약이나 범죄 등을 소재로 한 이야기도 많고요. 물론 그런 책들도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의 특성상 외국보다 독서에 투자할 시간이 적습니다. 학원도 가야 하고 줄넘기 과외도 받아야 하죠. 한정된 시간에 단 몇 권의 책밖에 읽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소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100권 중 한 권이라면 몰라도 단 한 권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경우를 고려해야 하니까요. 

그밖에는, 한국은 영어가 자연스럽지 않은 나라기 때문에 활용 빈도가 매우 낮은 단어가 많이 나오는 경우에는 소개하지 않는 편입니다. 언어적, 사고적, 또 인성에도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을 고르려고 노력합니다. 

국내의 스콜라스틱 독자들은 보통 3세에서 7세 사이입니다. 중요한 시기이다보니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죠. 저희 회사의 양혜원 실장님은 스콜라스틱에서 20년을 일하신 교육 전문가세요. 실장님께서 스콜라스틱의 수많은 책들을 각 수준별, 단계별로 촘촘하게 설계하시죠. 사실 엄청난 책임감과 의무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입니다.  


Q. 국내에서 유통되는 도서 중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어떤 책인가요?


스콜라스틱 퍼스트 리틀 리더스(First Little Readers)라는, 약 200편짜리 세트가 가장 인기있습니다. 스콜라스틱은 100년이 된 출판사인데도 역대 대표가 딱 두 명입니다. 부자지간인데요, 아버지 로빈슨은 학교 선생님 출신의 창립자에요. 아들 로빈슨은 재벌2세인 셈인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선생님으로 일을 하다가 이 회사를 물려받았죠. 그래서 스콜라스틱은 경영자가 선생님의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운영합니다.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싶어 하죠. 자연히 도서의 가격이 굉장히 쌉니다. 독자들이 의심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에요. 

퍼스트 리틀 리더스도 마찬가지로 저렴한 가격에, 내용이 굉장히 좋습니다. 어린이들이 따라 읽기만 해도 저절로 영어를 말할 수 있게 되죠. 또 약 200편 안에서 매우 아름답게 반복이 구현됩니다. 200편을 다 읽고나면 자연스럽게 영어 표현을 익힐 수 있어요. 그 콘텐츠를 가지고 KT에서 애니메이션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KT 올레TV 키즈랜드 잉글리시에서 제공 중)



Q. 회사를 이끌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역시 사람 문제가 가장 어렵죠. 저희 회사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일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직원들을 한 명씩 케어하려고 노력해요. 직원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 제가 해결해줄 수 없을 때 가장 힘듭니다.  

또 한 가지는 본사와의 소통이에요.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이다보니 다른 아시아 지사와의 경쟁 구조인데, 아시아 지사의 본사는 싱가포르에 있어요. 일본, 중국, 베트남, 싱가폴, 대만, 한국 모두 본사에서 예산을 따와야 하고 관심도 끌어와야 합니다. 로비스트의 역할도 해야 하는 셈이죠. 한정된 인력과 예산을 한국 지사에 달라고 해야 하기 때문에 매일 전쟁터처럼 싸웁니다. 



Q. 개인적인 목표도 궁금합니다.


스콜라스틱 이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사장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마케팅을 담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한국인’, ‘동양 여자’라는 점을 느꼈어요. 젊고 조그마한 동양 여자로 받아들여졌죠. 당시에는 1년을 하고 그만두었는데, 제 목표는 젊은 동양인 여자도 아시아를 총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보통 아시아 쪽 담당자도 영국에서 오거나, 아시아인으로 치지 않는 싱가포르 혹은 홍콩 사람이 맡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의 다음 목표는 스콜라스틱 아시아 총괄입니다. 



Q. 사무실로 이곳 패스트파이브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스콜라스틱 코리아는 아셈타워에 오래 있었습니다. 이곳 삼성1호점(도심공항타워에 위치)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죠. 마찬가지로 삼성1호점은 위치가 좋고, 특히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자유로워서 마케팅 업무처럼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할 때 이렇게 탁 트인 공간에 나와서 고민을 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아서 선택했습니다. 

또 이곳의 커뮤니티 매니저 분들께서 너무 친절하시고 타 공유오피스들보다 패스트파이브가 좀 더 고객 우선, 멤버 우선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Q. 업계의, 혹은 일하는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저는 여성이 갖고 있는 장점이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용감해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의 장점을 목록으로 만들고, 그 장점들을 바탕으로 용감해지세요. 출판사들을 살펴보면 여자 직원이 많기는 하지만 사장님, 이사님, 전무님 등은 대부분 남성들이죠. 이런 상황에서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도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육아와 커리어도 둘 다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는 아이가 다섯 살인데 손이 많이 가지만 잘 크고 있어요.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퇴근 후나 주말 같은, 주어진 시간에 100퍼센트를 하면 됩니다. 유능한 직원이 육아 때문에 아예 일터로 복귀하지 않는 경우를 보면 굉장히 안타까워요. 일이 힘들거나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육아와 일을 병행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만두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이를 낳은 뒤 6개월을 쉬었는데 일이 하고 싶어서 복귀한 경우입니다. 또 아이에게도 커리어가 있는 엄마이고 싶었어요. 저의 아들이 ‘일하는 여성’을 보면서 자라면 좋을 것 같고요. 딸이면 더 그랬겠죠. 롤모델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을 하다 보면 여러 핑계들과 일을 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가 생기기 마련이죠. 그럴 땐 상황을 단순화해서 생각하고, 그저 묵묵히 진행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Keep going’,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기존 회사에서 출판사로 이직하면서 연봉도 많이 깎이고 고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거운 일을 꾸준히 하다보니 명예나 돈 같은 것들이 저절로 따라오더라고요. 출판업계에서 14년 동안 한 우물을 판 보람이 느껴집니다. 만약 처음 입사했던 대기업에 계속 다녔더라면 과장, 차장까지 버티다가 육아를 핑계로 그만뒀을 것 같아요. 즐거운 일, 의미있는 일을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여왕을 넘어 전설이 된 피겨스케이터, 김연아 선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칭을 하느냐"는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대답했습니다. 단순히 쿨한 성격을 보여주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묵묵히 꾸준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일의 왕도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Keep going'이 중요하다는 스콜라스틱 이수연 지사장님의 말씀도 이와 같은 의미겠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보세요. 언젠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지금까지 걸어온 먼 길을 보고 깜짝 놀랄지도 모릅니다. 


그럼 저희는 다음 인터뷰로 돌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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