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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pr 17. 2020

많은 돈이 회사를 망치는 과정

비전펀드를 통해 본 Too much money will kill you

2016년 말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가 100조 원 규모로 결성되었다. 똑똑한 사람보다 미친 사람이 비즈니스에서 승리한다는 손정의 회장의 말대로 정말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규모의 대범한 시도였다. AI가 인터넷보다 세상에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 Singularity가 곧 도래할 거라는 비전을 갖고 만들어진 펀드이다. 결성 이후 Uber/Grab, WeWork, OYO, Slack, 쿠팡에 이르기까지 적게는 수천억에서 수조 원에 달하는 투자를 단행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도가 말이 된다고 느껴졌다. 일단 100조 원 펀드를 들고 있으면 웬만한 회사들이 모두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사상 유례없는 완벽한 Deal Flow를 갖게 될 것이고, 치트키를 쓴 것처럼 원하는 분야의 원하는 회사들에 맘껏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도 비전펀드는 유망한 회사들에게 우리 투자를 받지 않으면 천문학적인 돈을 경쟁사에 투자하겠다고 반 협박하는 식으로 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100조 원을 소진하기조차 어려워 당장 회사에 필요한 돈의 몇 배에 해당하는 투자를 하기도 했다. 이는 밸류에이션이 뻥튀기되는 효과를 가져왔는데, 이 조차도 과거 알리바바처럼 100조, 200조의 규모로 커질 회사라면 당장에 1조, 2조에 투자하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좀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벤처투자 속성이 그렇다)


그러나 현재 중간평가를 해본다면 실패에 가까운 상황이다. 물론 일부 포트폴리오 회사가 홈런을 날리면서 손정의 회장이 명예 회복하기를 바라는 바이지만,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주력으로 투자했던 회사들의 평가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고, 하나둘씩 파산하는 회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회사마다 다른 스토리를 갖고 있겠지만 WeWork, OYO를 포함하여 몇몇 회사는 분명히 많은 돈이 회사에 독이 되어버렸다. 많은 돈이 회사를 망치는 과정에서 대해서 좀 더 고찰해보고자 한다.



1. 고민하기보다 돈으로 해결

혁신은 결핍에서 온다는 것이 스타트업의 진리이다. 어떻게 하면 제한된 리소스로 더 많은 고객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기존과 완전히 다른 방식을 시도하게 되고, 그게 제대로 먹히는 순간 그 업의 혁신의 씨앗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은 돈 주고 살 수가 없다. 고민하기보다 당장 임박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시간이 지난 뒤에 발목을 잡게 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우스갯소리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쉬운 문제다'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돈으로 해결하는 게 쉬운만큼 돈으로 때우고 나면 사실 노하우로 남는 게 없다. 그냥 계속해서 돈으로 방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이익이 날 수가 없다. 돈은 Commodity이기 때문에.


2. 돈이 있으면 써버리는 관성

개인뿐만 아니라 회사도 돈을 쓰고자 하면 쓸 곳이 너무나도 많다. 더 빨리 성장하기 위해 인력도 더 뽑고 싶고, 마케팅도 더 강력하게 집행하고 싶고, 좋은 회사가 보이면 인수하고 싶기도 하고, 해외진출도 도전해보고 싶고, 직원 복지도 제대로 챙겨보고 싶고. 특히나 힘겹게 비용을 아껴가며 창출한 이익으로 모은 돈이 아닌 외부 투자를 통해 비교적 쉽게(이것도 결코 쉬운 건 아니지만) 생긴 돈은 애당초 부가가치를 만들기 위해 베팅하는 돈인 만큼 쉽게 쉽게 써버리게 되는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다음 투자유치를 위해서는 단기간에 화려한 성과를 내야 할 필요성이 있으니 돈 써야 할 곳이 더 많아진다. 어느 순간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판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고객가치와 혁신과 멀어지는 순간 그 회사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셈이다.


3. 쉽게 돈을 땡길 수 있다는 기대와 학습효과

비상장회사의 회사가치는 상장회사에 비해 변동성이 훨씬 높다. 소수의 이해관계자들이 합의한 가격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고평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저평가되기도 한다. 유명한 투자회사/투자자가 주주로 참여하고 해당 업종이 next big thing으로 인정받는 순간 과도한 자본이 쏠리기도 한다. 그렇게 순식간에 스타로 떠오른 회사들이 실제로 꾸준히 성장하기도 하고, 거품이 빠진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한다.


단기간에 많은 주목을 받고 수차례에 걸쳐 투자를 받은 회사는 대개 성장세만 잘 유지하는 경우 후속 투자가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요새는 분위기가 또 바뀌었다고 하지만). 이게 지속되면 '다음 투자'를 항상 기대하게 되지만, 수익모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회사는 결국에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자본시장은 변덕이 심해서 어느 순간 돌아서면 투자유치에만 의존했던 회사는 갈 곳이 없어진다.


4. 이미 성공한 듯한 착각

거대한 투자금을 유치하고, 외부의 주목을 받다 보면 마치 이미 성공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될 수 있다. 실제로 문제가 된 회사들의 일부 CEO들은 투자금 유치 후 화려한 개인 사무실, 전용기 구입을 포함하여 방만한 운영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거대한 자금에 대처하는 자세가 원래 그 CEO의 그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Visionary와 사기꾼은 정말 한 끗 차이라 판단이 어렵고, 천하의 손정의 회장조차도 잘못된 판단을 해버렸다.


거대한 투자금을 무거운 책임감으로 받아들이고, 자생적으로 영속할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드는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이를 이미 성공으로 착각하고 폭주하는 경영자라면 많은 돈은 회사를 더 크게 망하도록 만드는 기폭제가 될 뿐이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정말 아끼고, 아끼고 또 아껴야 소폭의 이익이 나고, 또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빨간 숫자가 뜨고. 이를 반복하다 보면 정말 수십억, 수백억의 이익을 시원시원하게 버는 회사를 갈망하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게 고군분투할 때가 회사가 잘 성장하고 있는 시기라는 생각도 든다. 많은 돈이 꼭 회사를 망치는 건 아니지만, 방심하면 엄청난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은 항상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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