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나는 한 학부모님으로부터 상담 요청 전화를 받았다. 상담의 시작은 어제 체육 수업 중 있었던 일로부터 비롯되었다. 체육 수업은 전담 선생님이 있어서 내가 직접 수업을 진행하지 않았지만, 그 사건이 학부모님께 큰 걱정을 안겨주었고, 그로 인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내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언제나 내 건강과 행복을 걱정하시는 분이다. 내가 아프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손녀가 아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종종 아픈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엄마가 편안히 주무시는 것이 나에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단어는 '어머니'라는 표현보다 더 애틋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엄마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다. 하지만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니 혼자 있는 엄마가 걱정된다. 자식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식이 어렵다."라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그 속 깊은 사랑을 느낀다.
엄마는 11남매의 큰딸로, 많은 희생을 감내하며 자라셨다. 유학을 떠난 형제들을 보며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셨고, 부모님의 장사를 도우며 삶을 살아오셨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꿈은 양성소에서의 과정으로 이어졌지만, 졸업 후 발령이 나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시절을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하신다.
나 역시 엄마의 바람대로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 선택은 아버지의 권유와 엄마의 꿈이 반영된 결과였다. 언젠가 퇴사하더라도 엄마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그녀는 다시 걱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생이 결혼한 후, 엄마는 조금 안심하신 듯하다. 내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수록 엄마의 마음도 편안해진다. 나는 이제 엄마와 아빠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살던 시기를 지나, 자유롭게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아침의 상담 전화로 인해 나는 다시 엄마를 떠올렸다. 상담을 마치고 나서, 학부모님과의 대화 속에서 느낀 것은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