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자녀의 어떤 행동에 마음이 흔들린 적 있으신가요. 혹시 그 끝이 분노는 아니었나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의 눈금’이라는 개념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화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때로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예의 있음’과 ‘예의 없음’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평가하곤 합니다. 특히 그 대상이 내 아이일 때, 그 평가는 더욱 엄격해지죠. 버릇없다는 생각이 들면 무시당했다는 느낌과 함께 불쾌한 감정이 피어오릅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쉽게 화에 잠식되는 걸까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저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마음의 눈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면접을 보는데 학생이 다리를 꼬고 앉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 하기에는 예의 없는 행동입니다. 마음의 눈금이 많은 사람은 그 행동을 보고 “아이고. 이 녀석 봐라. 습관을 좀 고쳐야 되겠네. 어젯밤에 못 잤나 보네” 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제가 마음의 눈금이 2개밖에 없다면 어떨까요? 예의가 없다며 버럭 화를 냈을 겁니다.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 김경일
마음의 눈금이란,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얼마나 세밀하게 나눌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일수록 이 눈금이 촘촘하고 다양합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잠이 부족하면 습관을 통제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됩니다. 즉, 면접장의 학생은 의도적으로 무례를 범한 것이 아니라, 피로 누적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평소의 습관이 튀어나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성인도 이럴진대, 아직 뇌가 한창 발달 중인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요. <그릿>의 저자 김주환 교수가 언급했듯, 사춘기 아이들의 뇌는 감정과 본능을 관장하는 편도체가 이성을 담당하는 전전두엽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상황에 맞게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 미숙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의 일부입니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각을 반복하고, 준비물을 미리 챙기지 못하는 아이들. 숙제 대신 TV를 보고, 밥 먹을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들. 그들이 과연 부모를 일부러 화나게 하려고 그런 행동을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의도가 담긴 반항이 아닌, 그저 ‘습관’일 뿐입니다. 미성숙한 뇌가 본능에 더 충실하게 반응하고 있을 뿐이죠. 어쩌면 그것은 아이가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건강한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마음의 눈금이 더 촘촘한 우리가 먼저 이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눈금을 촘촘하게 만드는 건 인생이 성숙해진다는 뜻입니다. 성숙해진다는 건 마음의 눈금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 김경일
물론 모든 것을 너그럽게 넘길 수는 없을 겁니다. 유독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나의 눈금이 단 두 개, ‘참을 수 있다’와 ‘참을 수 없다’만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작년의 제가 수업에 늦는 학생들에게 버럭 화부터 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저는 그 부분을 인지하고 의식적으로 눈금을 늘리는 연습을 합니다. 가령, 아이의 지저분한 방을 보며 ‘깨끗하다’와 ‘더럽다’는 극단의 평가 대신, ‘완벽히 정돈된 상태’, ‘제법 깔끔한 상태’,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 상태’, ‘어질러져 있지만 참을 만한 상태’, ‘폭탄 맞은 상태’처럼 여러 단계의 눈금을 만들어보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이런 노력은 제 안의 분노를 잠재웠습니다.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방의 상태를 보며 화 대신 칭찬을 건넬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괜찮다, 화가 난다는 양극단을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니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제 삶은 한결 평온해졌습니다. 지난 1년간의 값진 경험입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아이의 행동을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한 당신의 마음의 눈금을 한번 관찰해보세요. 어쩌면 성숙이란, 더 넓은 이해의 범위를 갖게 되는 것, 즉 마음의 눈금이 더 촘촘해지는 과정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