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by 정상가치

<오빠가 죽었다>

이 책이 이해가 간다는 건 어느새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까.

내겐 치매에 걸리신 아버지가 있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지금은 밥을 먹은 것도 기억할 수 없는 사람.

젊은 시절엔 이런 아빠를 미워했던 적도 있다.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았던 기억이 없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엔 그 기대가 너무 높았다.

누나와 남동생은 부응할 수 있는 그 기대가 내게만 너무 높았다.


언제부터일까.

난 그 기대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던 내가 3주에 한 번씩 아버지가 계신 병원에 찾아간다.

3주라는 기간도 누나가 정해준 기간이다.

한 주는 누나가, 한 주는 동생이, 그리고 남은 한 주는 내가.


주말에만 찾아가지만, 그래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일부러 점심시간에 찾아간다.

아버지의 식사 시중을 들어드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동안 고생하신 간병인 여사님은 외식을 하실 수 있다.


그래도 이렇게 안심인 건 의사인 동생 덕분이다.

동생이 있는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동생이 담당 의사여서 다행이다.

무늬만 장남인 나보다 동생이 더 듬직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기억하는 이름은 동생 이름뿐이다.

이제는 엄마도, 본인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건 매일 회진을 돌면서 얼굴을 비추는 동생뿐.


그런 동생 덕분에 죄책감 없이 3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를 찾아가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동생아, 고맙다.


이런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 어떨까?

<오빠가 죽었다>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벌어질 것이다.

병원 아래에 장례식장도 있고, 아버지 물건은 없다.


갈 때마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내 딸이 함께 사진을 찍는다.

아내는 기꺼이 사진도 찍어주고, 운전도 도맡아 한다.

이 사진은 차곡차곡 내 스마트폰 메모리와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있다.


언젠가 아버지 사진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찍고, 또 찍고 있다.


가끔 아버지 눈에 눈물이 맺힌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답답해서일까.

아니면 3주에 한 번만 볼 수 있는 아들이 야속하게 느껴서일까.


어떤 질문에도 고개만 가로젓는 아버지.

아버지의 과묵함이 이럴 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주 주말이 내가 갈 차례다.

좀 더 애틋한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을까.

이제는 알 수가 없다.


<교훈>

“잃고 나서 비로소 깨닫는 것을, 잃기 전에 알았으면 한다.”


<교훈 2>

부모님과 찍는 사진과 영상은 많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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