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관통 Jan 14. 2019

자격증에 도전하기 (1) 1점 차이로 피파에이전트 탈락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바꾸기]

무슨 일을 하면 재미있을까?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을 때 가장 먼저 축구가 떠올랐다. 제일 좋아하는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한다면 즐겁지 않을까?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황보관 선수의 중거리 슛을 보고 축구에 매료된 후 줄곧 내 취미는 축구하기, 축구 게임하기, 축구 이야기 하기까지 온통 축구에 관련된 것이었다. 97년부터 본격적으로 붉은악마 활동을 시작했다. A매치가 있을 때를 손 꼽으며 기다렸고 축구장에 들어서면 머리카락이 바짝 서는 느낌, 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단순히 응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일 유소년 축구대회를 현장에서 관전하고 분석기를 쓰기도 했다. 2001년에는 이용수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의 '유럽 축구의 벽을 넘어서'를 주제로 한 좌담회에도 참석했다. 그렇게 10대, 20대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축구에 흠뻑 빠져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즐겁게 활동해온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일하면 어떨까? '

'대한 축구 협회는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을까? '

'리버풀에 축구 MBA가 있다는데 도움이 될까?' 


 여러 가지 길을 알아보던 중에 FIFA 에이전트라는 자격증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FIFA에이전트 시험에 합격하면 전세계 어디서나 선수를 대표해서 구단이나 스폰서와의 협상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축구를 좋아하고, 외국어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2004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험준비를 시작했다.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FIFA 에이전트로 활동중인 3명의 강사가 진행하는 수업을 들었다. 시험은 1년에 한 번 열리고 FIFA 정관, K리그 정관과 민법에 관한 문제가 출제된다. 시험까지 3~4개월의 짧은 기간이 남아있었기에 집중적으로 준비했다.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명동에서 휴일도, 크리스마스도 반납하고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없는 날은 강남역의 민병철 어학원 자습실에서 혼자 공부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목표를 정했기에 어느 때 보다 능동적으로 준비했다. 지금 생각하면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것 같다. 


시험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연락도 한동안 끊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임과 인터넷도 시험이 끝날 때까지 참기로 했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 속에 거리는 친구,동료, 연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나는 합격한 모습을 그리며 참고 노력했다. 4달 동안 오로지 FIFA 에이전트 시험 준비에만 집중했다. 


 드디어 시험일이 되었다. 너무 의욕이 앞선 나머지 시험 당일 아침에도 복습을 하느라 시험장인 타워호텔에 시험시작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지각할까 택시 안에서 마음을 졸였고 도착 후에 숨돌릴 여유도 없이 바로 시험을 봤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보아오던 어학 시험들과는 다르게 수능만큼 긴장하면서 문제를 풀어갔다. 문제지를 확인해보니 다양한 선수 이적 사례를 제시한 후에 FIFA 정관에 대한 이해도를 묻는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시험 준비할 때 규정을 단순 암기했기에 사례에 적용하려니 생소하고 혼란스러웠다. 생각 없이 외우기만 해서는 풀 수가 없었다. 당황스러웠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느낌이 들었다. FIFA정관에 관한 문제가 가장 비중이 크기 때문에 K리그와 민법 문제를 모두 맞혀도 합격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 없이 1시간의 시험 시간이 지나 갔다. 채점 후 합격자 발표가 나올 때까지 4달 동안 준비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할 걸 그랬다. 단순히 암기하기 보다 사례 분석을 더 많이 했어야 했다. 아쉬웠던 점을 곱씹어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합격자 발표가 난 모양이다. 관계자가 붙인 합격자 발표 명단에는 5명의 이름이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는데 그 안에서 내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불합격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멍한 상태로 나의 시험 점수를 확인해봤다. 1점 차이로 불합격이었다. 1분 늦어서 시험을 못 봤다거나, 1점 차이로 시험에서 불합격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나 자신이 1점차로 시험에 떨어질 줄은 상상조차 못했었다. 지난 4달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도망치듯이 시험장을 빠져 나와서 바로 집으로 왔다. 돌아오는 길 내내 지난 4개월 동안 오로지 단 하나에 집중하며 노력했던 생각이 났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1점차로 떨어지다니!  


‘딱 1문제만 더 맞췄어도 합격했을 텐데, 딱 1문제만 더 맞췄어도 지금쯤 웃고 있을 텐데…’


아쉬운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4달 동안 씨름했던 시험 교재를 가방에서 꺼내서 눈에 보이지 않도록 옷장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방안에 처박혀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만 커졌다. 그냥 한없이 땅속으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자꾸 생각이 났다.


‘1문제만 더 맞췄다면, 1문제만!’


그렇게 몇 시간을 멍하니 있다가 기분을 바꾸기 위해 인터넷을 했다. 웹사이트들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유투브에서 실패에 관한 나이키의 에어 조던 광고를 봤다. 마이클 조던이 경기장에 들어서는 화면으로 시작되어 조던의 독백으로 광고가 진행된다.


“나는 통산 9000개 이상의 슛을 넣지 못했다.”

“300여개의 게임에서 패배했다.”

“종료직전 승리를 위한 마지막 슛을 던지는 임무를 맡았으나 26번 실패했다.”

“나는 인생에서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성공하는 이유다.”


가슴에 확 와 닿았다.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무겁고 답답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 실패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실패에 대한 관점을 바꾸자. 나의 우상인 마이클 조던도 수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인 그도 9000개 이상의 슛을 넣지 못했다. 해리포터의 작가인 조엔 K.롤링도 수 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누구나 실패를 하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 모두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명심하자. 




어떤 일에 도전할 때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항상 성공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확실성은 당연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성공도 실패도 결국 도전하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이다. 실패는 나쁜 것이 아니다.


실패에 가슴 아파하기보다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자. 비록 실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당당해지자. 넘어진 후에 일어나지 않고 포기한다면 실패지만,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고 다시 일어나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성공하기 위한 과정이다. 확실한 목표를 가진 이들은 절실히 원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당장의 고통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의 아픔을 원동력으로 삼아서 다시 도전했다.




 ‘이젠 거의 포기다. 주니어도 모자라 시니어까지. 정말 오늘은 밉다. 왜 자꾸 내 앞길을 가로막는 거야. 그래 너 다 일등 먹어라. 난 계속 니 꼬랑지만 붙어 다닐께.’


2005.12.17에 한 스케이트 선수가 미니 홈피에 올린 글이다.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 속에는 아사다 마오가 메달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이 글을 쓴 미니홈피의 주인은 훗날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이다.


 여왕 김연아 선수도 주니어 시절과 시니어 시절 초반에는 라이벌 아사다 마오에게 매번 질 때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실패가 고통스러웠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패배의 아픔을 자극으로 삼았다. 아사다 마오의 사진을 올리고 분한 감정을 글로 남겨놓고 동기부여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실패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개선하는 노력을 반복해서 결국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나의 경우에도 비록 1점 차로 시험에 떨어졌지만 그 덕분에 얻은 것이 있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한 번에 합격하는 것보다 떨어진 것이 오히려 더 잘된 일일 수도 있었다.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로 더 많은 것에 도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절실히 원하고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시험에서 떨어진 아쉬움을 다른 목표를 달성하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다음 시험은 1년 후에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 도전할 수 있는 다른 분야에서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김연아 선수가 아사다 마오가 메달을 든 사진을 보면서 열심히 노력했듯이 나도 FIFA 로고를 책상에 붙이고 의지를 불태웠다. 유치하지만 ‘FIFA에서 뺨 맞고 토익에 화풀이하기’ 라는 작전을 세운 후 토익 공부에 몰입한 후 만점을 받았고 학교 성적도 올랐으며 일본어 능력시험 1급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외에서 인턴하기 (5) 3년의 시간을 절약해준 선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