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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통 Jan 31. 2019

하고 싶은 일 도전하기(9)스타킹 보조통역에서 방송통역

차별화할수록 많은 기회를 얻는다

차별화의 효과를 코디네이터 업무를 하면서 톡톡히 알 수 있었기에 통역에도 차별화를 시도했다. 무대 밑에서 모니터링할 때, 직접 올라가서 통역할 때마다 노트북에 적은 후기를 바탕으로 매번, 조금씩, 지속적으로 개선했다. 




무대에서 통역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결론은 스피드다. 보통 4팀이 출연하고 녹화하는데 8시간 가량 소요된다. 출연자도, 연예인도, 스태프도 녹화가 길어질수록 지친다. 보조 통역 일을 할 때도 긴 녹화시간 때문에 앉아서 보고만 있어도 파김치처럼 지치곤 했다. 무대통역을 하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녹화 중에 어떤 때 가장 시간이 지체되는지 유심히 살펴봤더니 답이 나왔다. 대부분 퍼포먼스보다 인터뷰가 길었기에 시간을 절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터뷰 중에 질문과 답변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MC나 패널들이 말하는 것을 그때 그때 출연자에게 속삭이며 통역해주면(위스퍼링 통역)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한국어 질문이 다 끝나길 기다렸다가 그 내용을 마이크에 대고 외국인에게 물어보는 경우에는 스튜디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질문을 2번이나 듣게 된다. 질문하는 시간이 2배가 걸리는 샘이다. 


어차피 통역이 외국어로 질문하는 것은 방송에는 편집이 되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로 진행될 때 그때그때 외국인 출연자에게 위스퍼링 통역을 했다. 그리고 외국인이 대답했을 때는 대답이 끝나자 마자 최대한 빨리, 한 번에,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통역하려고 노력했다.




스타킹은 출연자가 주인공이다. 강호동선배님은 항상 출연자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배려하셨다. 녹화 전 마이크를 차는 곳에서 외국인 출연자를 만나면 항상 그 나라 말로 ‘스타킹에 잘 왔다.’ ‘공연을 봤는데 멋졌다.’ ‘집인 것처럼 편하게 해라’ 와 같은 말을 건네서 출연자들의 긴장을 풀어주셨다. 


가끔 공연 중에 제작진의 실수로 중단될 경우에는 출연자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우리의 실수였다. 출연자의 잘못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고 다시 한번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프로라도 사람이기에 흐름이 끊기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인데, 천하장사의 경험이 있기에 그것을 꿰뚫어보고 계신 것 같았다. MC가 직접 힘을 실어주면 정신적인 부담이 덜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출연자를 배려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많이 배웠다.


출연자는 외국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환경 속에서 녹화를 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매니저를 제외하고 출연자만 초대를 했다. 한국에 도착한 후에는 공연 준비뿐만 아니라 스타킹과의 교섭까지 전부 출연자가 혼자서 하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들이 많고 그만큼 부담감도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녹화 준비를 할 때부터 출연자와 같은 팀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옆에서 조금이나마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기분 좋은 상태에서 녹화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리허설이나 연습 때는 본 녹화와는 다르게 아무래도 호응이 적을 수밖에 없는데 기운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크게 박수를 쳐주고, 간혹 실수를 해도 문제없다고 다독여주었다. 장비를 챙기고 이동하는 것을 도왔다. 리허설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엔 우리가 도울 것은 없는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적극적으로 물었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다른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는 이렇게 호의적으로 도와준 적이 없다고 했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이도 가까워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녹화에 임할 수 있었고 스타킹이 끝난 후에도 연락을 하면서 그들의 공연 에이전트로 활동할 수 있었다.




성공적인 녹화를 위해서 통역 이외의 것에도 세세하게 신경을 썼다. 주어진 통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일어날 상황을 예측해보고 만약에 대비했다. 예를 들어 얼음조각 예술가가 출연했을 때 전동 드릴을 사용하기 위해 전기 콘센트가 준비되어있었는데 아무런 예방 조치 없이 바닥에 놓여있었다. 출연자가 따로 요구하지 않았지만 전기 콘센트에 물이 튀어서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에 콘센트에 테이핑을 부탁했다. 녹화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강한 조명으로 인해 얼음이 녹으면서 바닥은 물로 흥건해졌다. 통역을 하는 도중에도 콘센트 바닥에 물이 닿지 않도록 수건을 밑에 깔 거나 콘센트를 받침대 위로 옮기기도 했다. 


이처럼 사소하지만 큰 차이를 가져오는 것들을 세세하게 신경 썼고 그 덕분에 7년간 활동하면서 녹화 중에 사고 없이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이 전해졌는지 작가님들로부터 나에게 통역을 맡기면 안심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





관통 이유석. 관통은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만든 애칭으로 ‘관심 받고 싶은 통역사’의 약자다. 스타킹은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출연자의 통역 역할로 출연하지만 통역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웃겨도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출연자가 긴장하는 스타일이면 재작진으로부터 옆에서 웃겨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출연자들은 공연에 있어서는 프로이지만 인터뷰 때는 긴장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같은 말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게 통역을 했다. 같은 뜻이지만 단어만 바꾸어도 방청객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일본에서 몸을 튕기면서 추는 춤의 일종인 ‘팝핀’ 댄서인 토리 할머니가 출연한 적이 있다. 팝핀을 왜 좋아하는지 묻는 질문에 ‘그 기분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답하신 것을 그 전후 답변에서 쓰였던 표현을 활용해서 ‘그 기분은 튕겨본 사람만이 안다.’라고 통역을 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방송에도 그대로 쓰였다. 



통역의 역할을 넘어서 출연자와 같이 공연을 만들기도 했다. 한중일미 4개국 마술대회라는 주제로 택시 운전을 하는 강창구 마술사와 같이 출연해서 마술사의 조수 역할을 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한 마술사와 조수의 컨셉으로 크게 웃길 수 있었다. 개그맨 이병진 선배님이 녹화가 끝나고서 정말 재미있었다고 칭찬해주셨고 다음 날 제작진 회의에서도 재미있었다는 반응을 전해 듣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같은 날 2명의 출연자 통역을 하느라 스튜디오에서 12시간 이상을 보낸 후에 설레는 마음에 잠을 2시간 밖에 못 잤지만 다음 날 오히려 기운이 넘쳤다. 


비록 공개코미디로 데뷔하지는 못했지만 스타킹을 통해서 TV에 나오면서 관통 캐릭터를 살려서 가끔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어서 기뻤다. 공개코미디를 준비하면서 연습했던 것이 그대로 스타킹에서 웃음을 줄 때 도움이 되었다. 노력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과 점은 이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은 통역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다 보니 차별화할 수 있었고 차별화하자 통역 의뢰도 늘어났다일본어에 이어 영어를 통역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외국인 출연자가 2명 녹화하는 날은 서로 나에게 통역을 의뢰하려고 한 적도 있다. 결국에는 기존 영어 통역 선생님이 해왔던 것처럼 외국인 출연자 2명이 출연했을 때는 보조 통역을 불러서 보조 통역에게 무대 밑의 진행을 맡기고 내가 무대 위에서 2번의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보조통역으로 시작했던 내가 보조 통역을 데리고 활동하게 된 것이다.



남과 다른 것을 하나라도 제공하면 차별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항공사의 객실 승무원에 지원한다면 마술과 같은 특기를 준비하면 어떨까? 어린이 승객을 위해서 마술을 하는 객실승무원 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마술을 배웠다고 말한다면 면접에서 수많은 다른 지원자로부터 차별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카퍼필드와 같은 마술을 할 필요는 없다. 기본적인 마술을 배워서 다른 지원자는 제공하지 않는 것을 제공하면 더 이상 나는 수많은 지원자의 한 명이 아니라 마술을 준비한 지원자가 된다. 차별화할수록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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