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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없던 1.5조 여성 속옷 시장에 생기고 있는 균열


국내 여성 속옷 시장


한국패션마켓트렌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속옷 시장 규모는 약 2.1조 원 규모이며, 이 중 여성 속옷 시장은 약 1.5조 원으로 전체 시장 규모 대비 72.5%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위 9개 브랜드가 이 2.1조 원의 국내 속옷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는 상황이며, 상위 9개 브랜드 외 업체들과의 격차는 매우 큰 편이라, 얼핏 보기에는 과점에 가까운 시장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 업체들별로 살펴보면 시잠 점유율 10%를 넘기는 업체가 없고, 코웰패션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매출이 역성장하고 있거나 제자리 걸음인 상황이라, 신생 업체가 등장해서 시장에 균열을 내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시장과 업체들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들어야 하는데, 설립된지 60년이 넘은 업체들이 시장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비교적 낙후된 시장에서 이 문제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필자가 해당 시장을 관찰하면서 들었던 가장 큰 3가지 의문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첫째는, ‘왜 속옷은 다른 품목들과 다르게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주로 구매되는가?’였습니다. 2019년 하반기 기준, 속옷 시장의 온라인 침투율은 약 19.3%로 집계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렇게 낮아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TV 홈쇼핑 채널을 포함하고 있는 수치여서, 실제 온라인과 모바일 채널의 비중은 약 10% 내외로 추정됩니다. 


속옷 시장의 온라인 침투율이 유독 낮은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시장의 상위 브랜드들이 온라인으로 전환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가 가장 컸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실제로, 수십 년 동안 전국에 대리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각지의 백화점과 마트에 입점하는 것이 성장 공식이었던 회사에게 온라인과 모바일 판매는 낯설고 생경한 영역이었을 것입니다.


두번째와 세번째 문제는 같은 이유로 귀결이 되는데, ‘왜 엄마와 딸이 같은 브랜드를 입는가?’와 ‘왜 착용과 구매가 모두 불편한 해외 브랜드들을 어렵게 사서 입는가?’였습니다. 소비자 인터뷰를 해본 결과, 20대와 30대 여성들의 경우 비너스나 비비앙과 같이 엄마가 평생 입어온 브랜드를 따라서 사서 입고 있거나, 해외 여행을 다녀올 때 빅토리아 시크릿과 같은 해외 브랜드들의 제품을 대량으로 구입해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그만큼 국내에서 고객들의 니즈를 해소시켜줄만한 새로운 브랜드들이 없었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업 및 투자 기회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패스트벤처스의 지주회사이자 컴퍼니빌더인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일찍이 이 시장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2016년에 ‘소울부스터’라는 이름의 맞춤형 여성 속옷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이 지나지 않아, 왜 속옷 시장에서 새로운 브랜드들이 그동안 많이 나오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일부 체감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속옷의 경우 제작의 난이도가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 속옷 자체가 같은 디자인이더라도 많게는 10개 이상의 사이즈 배리에이션이 있는 제품으로 재고 관리도 만만치 않아, 작은 스타트업이 쉽사리 뛰어들어서 일정 규모를 만들기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패스트트랙아시아의 소울부스터 사업은 비교적 빠른 기간 내에 중단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패스트벤처스는 해당 시장에서의 투자 기회를 계속 물색하였습니다. 직접 잘 하지 못 했다고 해서, 아무도 잘 하지 못 할거라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소울부스터가 사업을 전개했던 비슷한 시기에, 꽤나 많은 온라인 속옷 브랜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온라인에서 신생 브랜드들의 광고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브랜드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이 될 수 있었는데, (1) 마케팅 역량을 기반으로 ‘잘 파는 것’에 집중하는 브랜드와, (2) 속옷 디자인 혹은 제작 역량을 기반으로 ‘잘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브랜드로 정리 될 수 있었습니다. 


전자의 경우,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출발하여 감각 있는 브랜딩과 디지털 마케팅에서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경우와, 인플루언서 기반으로 시작하여 이를 통한 브랜딩 및 팬덤을 공략하는 전략의 업체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 파는 것’에 집중하는 업체들의 경우, 직접 제조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중국 공장 등을 통해 제품을 사입하는 비중이 비교적 높았습니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에는 마케팅이나 브랜딩보다는, 제품을 직접 디자인 및 제조하여, 편리함을 크게 제고시키고 제품의 우수성을 기반으로 승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각자가 장단점과 전략이 다르겠지만, 오래된 시장에서 빠르게 균열을 내고 기존의 전통 브랜드들의 점유율을 뺏어올 수 있으려면 그만큼 강력한 무기가 필요할테고, 이를 위해서는 마케팅 역량 혹은 제조 역량 한 가지씩이 아니라 ‘둘 다’여야 된다는 것이 패스트벤처스의 투자 관점이었습니다.  



속옷 정기구독 서비스 ‘월간가슴’


패스트벤처스는 2019년 12월에 ‘월간가슴’이라는 속옷 정기구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더기프팅컴퍼니’라는 회사에 투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출시 후 1년 반 만에 누적으로 1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2020년 말에는 다수의 VC로부터 수십억 원에 해당하는 후속 투자를 유치하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인데, 시점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패스트벤처스가 투자를 했던 시점으로 돌아가서 어떤 가능성들을 보고 투자를 결정하였는지를 서술해보고자 합니다.


‘잘 만들고’, ‘잘 팔고’, 둘 다를 추구하는 회사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보통 둘 중 하나만 잘 하더라도 커머스 업계에서는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기프팅컴퍼니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무기로 삼고 싶어했고, 그럴 수 있는 준비가 된 팀이었습니다. 다음과 티켓몬스터에서 이커머스를 직접 경험해보신 분들과, 피키캐스트에서 디지털 컨텐츠와 마케팅을 경험하셨던 분들이 ‘잘 파는’ 영역을 채워주고 계셨고, 속옷 제조 공장 백그라운드의 분들과 데이터 엔지니어링 전문가분들이 제품을 더 ‘잘 만들게’ 도와주고 계셨습니다.



팀 외에 주목했던 점은 바로, 정기구독이라는 키워드였습니다. 온라인에서 새로 시장을 만들어나가기에 이 정기구독 서비스가 훌륭한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로, 온라인 전환을 위한 허들을 정기구독이라는 컨셉으로 낮춰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여년 전에 이커머스가 태동되던 시기에 사람들이 옷을 온라인으로 사기 꺼려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입어보고 살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요즘에야 패션의류 카테고리의 온라인 매출 비중이 51%이지만, 사이즈 체계가 복잡하고 고객들이 자신의 정확한 사이즈를 모르는 속옷의 경우 이 ‘입어보지 못한다’라는 이슈는 온라인 구매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월간가슴 서비스는 첫 달 무료 캠페인으로 고객이 부담 없이 온라인으로 속옷을 구매하고 받아보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고객이 받아본 제품에 대한 상세한 피드백을 수집하여 두번째 달 이후부터 나가는 제품에 대해서는, 특히 사이즈 관련해서는 극단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이 어려울 뿐인데 이 첫 경험을 아주 쉽게 제공해주고, 그 이후부터는 고객도 몰랐던 고객의 정확한 사이즈에 맞춰서 제품이 나가게 되어 지속적으로 재구매를 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브랜드 경험과 관련된 것입니다. 좋든, 싫든, 십 수년을 써오던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정을 떼는 것이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 번쯤 기존과 다른 브랜드 혹은 제품을 시도해보고, 심지어 만족까지 할 수 있지만, 관성과 습관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어서 기존의 ‘익숙한 불편함’으로 회귀되는 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월간가슴은 매달 집앞에 찾아가는 고객에게 맞는 속옷으로, 고객들이 평생 함께해오던 전통 브랜드와의 경험을 수개월만에 밀도 높은 경험으로 따라잡고자 했고, ‘익숙한 불편함’으로의 회귀를 할 여지를 최대한 줄여주고자 했습니다.  



마무리


속옷 시장 내에서도 더기프팅컴퍼니 외에도 훌륭한 신생 브랜드들이 계속 많이 나와서, 어느 순간부터 혁신하기를 포기했던 기존 업체들에게도 긴장감을 주고, 고객의 눈높이를 지속적으로 높여줄 수 있는 건강한 시장 구도가 형성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속옷 시장 외에도, 기존의 고객이나 업체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깨뜨려주는 스타트업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글_ 패스트벤처스 강기현 파트너 심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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