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엄마와 아빠는 너의 이름을 미리 찜해뒀었어
어느 날 제주도였어
그 날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불어왔는데
왜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구름도 빠르게 흐르잖아
그 날이 딱 그랬었어
숙소 앞에 있던 낡은 그네에 앉아
멍하니 떠 가는 구름을 바라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거 있지
'대체 얼마만에 올려다 본 하늘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는
어릴 때 하늘 구경을 참 많이 했었던 것 같아
예전에 할머니는 종로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청와대까지 보일 정도로 탁 트인 전망을 가진 그런 곳이었거든
주말에 할머니 사무실을 놀러갔던 아빠는
커다란 창문으로 오래 오래 하늘만 쳐다보곤 했었어
쉴 새 없이 떠가는 구름이 너무나 신기해서.
아빠는 그 날 제주에서
오래 전 그 하늘을 다시 본 것만 같았어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어느 하나 쉬지 않고 끝임없이 움직이는 구름들
그러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거야
세상은 이렇게 늘 흐르고 있지만
세상이 흐른다는 사실은
여유로운 사람에만 보이는구나 하는.
"
평화롭게 하늘을 떠가는 구름
반짝이며 강 위를 흐르는 윤슬
모든 순간,
세상은 고요하게
그러나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
"
그 때 너의 이름을 지었어
[ 흐를 류. 볼 시. ]
여유로운 마음으로
네 자신만이 아니라
네 주위를 흐르는 세상까지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서
딸일지도 아들일지도 모를 너의 이름을
왜 이렇게 미리 지어놨느냐고?
이렇게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아
그토록 미리
너의 이름을 지어둘만큼
네가 세상에 있기 전부터
너를 생각하고
너를 그리워하며
너를 사랑해왔던 두 사람이 있었노라고.
너의 이름을 짓다가 배웠어
너에게 그 이름 같은 삶을 선물해주기 위해선
아빠부터 먼저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