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너의 이름을 짓다가 배웠어

by 이다지

네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엄마와 아빠는 너의 이름을 미리 찜해뒀었어


어느 날 제주도였어

그 날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불어왔는데

왜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구름도 빠르게 흐르잖아

그 날이 딱 그랬었어


숙소 앞에 있던 낡은 그네에 앉아

멍하니 떠 가는 구름을 바라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거 있지


'대체 얼마만에 올려다 본 하늘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는

어릴 때 하늘 구경을 참 많이 했었던 것 같아


예전에 할머니는 종로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청와대까지 보일 정도로 탁 트인 전망을 가진 그런 곳이었거든


주말에 할머니 사무실을 놀러갔던 아빠는

커다란 창문으로 오래 오래 하늘만 쳐다보곤 했었어


쉴 새 없이 떠가는 구름이 너무나 신기해서.


아빠는 그 날 제주에서

오래 전 그 하늘을 다시 본 것만 같았어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어느 하나 쉬지 않고 끝임없이 움직이는 구름들


그러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거야


세상은 이렇게 늘 흐르고 있지만

세상이 흐른다는 사실은

여유로운 사람에만 보이는구나 하는.


"

평화롭게 하늘을 떠가는 구름
반짝이며 강 위를 흐르는 윤슬

모든 순간,
세상은 고요하게
그러나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

"


그 때 너의 이름을 지었어


[ 흐를 류. 볼 시. ]


여유로운 마음으로

네 자신만이 아니라

네 주위를 흐르는 세상까지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서


딸일지도 아들일지도 모를 너의 이름을

왜 이렇게 미리 지어놨느냐고?


이렇게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아


그토록 미리

너의 이름을 지어둘만큼


네가 세상에 있기 전부터
너를 생각하고
너를 그리워하며
너를 사랑해왔던 두 사람이 있었노라고.




너의 이름을 짓다가 배웠어

너에게 그 이름 같은 삶을 선물해주기 위해선

아빠부터 먼저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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