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고맙게도
너는 아주 잘 먹는 아이였어
태어난 지 15일이 안 됐을 때부터
한 번에 분유 100미리를
숨도 안 쉬고 들이킬 정도로 말야
뿐만 아니야
먹대장이었던만큼
체력도 에너지도 아주 남달랐지
태어난 지 109일 만에
뒤집기와 되집기를 연달아 성공했고
생후 6개월 간 각종 접종에도 접종열 한 번 없었고
체중도 신장도 상위 10% 타이틀을
한 번도 내어 준 적이 없었지
그러다보니
엄마는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
육아를 하며 체력이 가장 아쉬운 순간은
울며 보채는 널 달래기 힘들 때가 아니라
올타임 씩씩이인 너와
더 힘차게 놀아주지 못할 때인 것 같아
"
엄마, 아빠의 몸과 마음의 체력은
결국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전해지게 된다랄까
우리는 결심했어
널 단단하게 키우기 위해서
우리도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네가 자라는 만큼
우리도 엄마로서 아빠로서
더 자라나야겠다고.
그러기 위해선
너와 함께하고 너를 돌보는 시간 외에
또 다른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엄마와 아빠는 서로에게
각자의 시간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
둘 모두 널 돌볼 수 있는 날에는
오전에는 엄마가 너를 돌보고
오후에는 아빠가 널 돌보는 거야
한 명씩 돌아가면서 널 돌보는 거지
그리고 널 돌보지 않은 시간에는
엄마, 아빠 각자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갖는 거야
결과적으론 셋이 함께 있는 시간도
너무 소중해서 매번 그렇게 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꼭 필요했던 것 같아
아빠이기 위해서
필요했던
아빠가 아닌 시간이었다랄까
정작 물속에서는 바다를 볼 수 없고
숲속에서는 산을 볼 수 없듯이
그 시간이 그랬어
아빠로 살아낼 때에는
내가 어떤 아빠인지 좀처럼 체감되지 않지만
거리를 두고 떨어져 보면
부족한 부분들과 채워 넣을 부분들이 보였거든
이땐 마음이 부족했구나
그땐 체력이 부족했구나 하는 식으로.
그렇게 그 시간들을 통과하며
아빠는 또 하나 배웠던 것 같아
너무나 애정하는 무언가를
더 깊게 더 오래 애정하고 싶을 때는
잠시 애정을 멈추는 것도 방법이라는 걸.
지금까지의 성장추세로 봤을 때
앞으로도 부단히 열정걸일 것 같은 너니까
오늘 아빠는
그런 네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그걸 해내는 너이기 위해서라도
그걸 하지 않는 네가 필요하다고
어떤 마음은
어떤 생각은
멀어질수록 가까워지기도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