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널 달래며 배웠어

by 이다지

네가 기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엔

몸의 성장만큼 너의 마음도 성장하는 시기였던 것 같아


그때부터는 좋다 싫다의 감정을

네가 온몸으로 표현하기 시작했거든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너였기에

무작정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뭐가 마음처럼 안 풀릴 땐 엉엉 울기도 하면서 말이지


너도 아빠에게 아빠도 너에게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서로의 언어가 다른 시기


서로가 서로를

서로의 뉘앙스로만 파악해야 하는

일종의 눈치게임 시기였지


이 눈치게임이 특히 하드 한 순간은

네가 맥락 없이 무작정 울어버릴 때였어


흔히 말하는 '아이를 달랜다'라는 표현 해서

달래는 게 뭔지 아빠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랄까


달래기 위해선 너의 문제를 알아야 하는데

그러고 싶어도 네가 원하는 게 뭔지를 알 수 없었지


예를 들면 이런 상황.


네가 악어 장난감을 원하는 것 같아서 네게 주면

한참 물고 빨고 놀다가 어떤 순간부터

갑자기 장난감에 화를 내기 시작해

그리고 울어버려


아 이 장난감이 싫어서 그러는구나 해서

치우려고 하면 뺏기는 기분이 들었는지

더 울어버리는 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공지진의 연속이었지


하지만 다행히도

시간이 흐르며 아빠는 너의 울음에 대한

나름의 방법들을 하나씩 터득해 갔어


그중 가장 뿌듯한 순간은


울음을 멈추기 위해선

울음을 멈추는 방법이 아니라

널 웃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게

빠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지


악어 장난감을

계속 갖고 놀게 하거나

억지로 빼앗지 않고


그 울음을 잊게 만드는

더 재밌는 곳으로 널 데려가면

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멈추고 웃어버렸으니까


정말 단순하지만

너무 효과적인 방법이었어


그런데 이 생각 말이야


꼭 어린 너를 달래는 방법으로서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살다 보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문제의 원인을 찾고 없애야만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하기 쉽잖아


그런데 모든 문제가

꼭 그렇게만 풀리는 건 아니거든


특히 깊고 거대한 슬픔일수록

원인이 하나가 아니거나 입체적이라

원인을 파악하는 도중에 오히려

더 큰 슬픔에 잠기기도 하니까


그래서 오늘은

네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


언젠가 네가

영영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슬픔을 마주했을 땐


그땐 슬픔 안에 머물지 말고

전력을 다해 슬픔 밖으로 도망치라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슬픔이 널 도저히 따라올 수 없도록

슬픔보다 앞서서 달아나라고


달아나고 달아나서

벗어나진다면 가장 좋을 테고


달아나고 달아나도

사라지지 않는대도

필사적으로 달아났다면 알게 될 거야


슬픔에서 달아나는 동안

실은 도망친 게 아니라

슬픔을 이겨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쓰다보니 다 쓰긴 했지만

오늘 아빠의 말만큼은

네가 이해하지 못해도 좋을 것 같아


네가 겪을 슬픔은

애써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이해하려들면 이해되는

그 정도의 슬픔이길

늘 기도하는 아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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