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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y 16. 2023

또르르 굴러가는 모자

끄적끄적

모자를 즐겨썼었다.

과거형.

야구모자는

동그랗게 챙이 달린 모자나 추운 날에는 종종 비니를 뒤집어쓰고 다녔다.


여름에 모자는 햇볕을 가려주고,

겨울에는 추위를 막아준다.

머리 안 감은 날도 유용하지.

외양에 신경 쓰느라 모자를 썼지만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



여름에 놀러 갈 때는 목에 끈이 달린 사파리 모자를 써서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지만.

패션으로 쓰는 멋 내기 모자는 바람이 불면 어느 순간 휙, 벗겨져서 길에 나동그라진다.

황급히 모자를 따라가면 손에 잡혔다, 하는 순간에,

바람 한 줄기 훌떡 불어오면서 모자는 또 굴러가고.

인도를 지나 차도 쪽으로 모자가 달아나면 정말 난감하다.


남녀 할 것 없이 모자를 쓰고 다녔던 근대기,

당연히 모자가 날아가는 경우가 다반사였겠다.

찰스 디킨스의 첫 장편소설인 <픽윅 클럽 여행기>에서 날아가는 모자를 잡는 요령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생에서 자기 모자를 쫓아갈 때보다 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곤란한 경우는 없다. 타인의 자비와 동정을 사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자를 잡으려면 상당한 냉정함과 뛰어난 판단력이 필요하다. 너무 허둥대면 모자를 밟아버리고, 반대로 너무 느릿느릿 쫓으면 아예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조용히 모자를 따라잡으면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고 기회를 보다가 조금씩 앞지른 다음, 재빨리 몸을 던져 윗부분을 낚아채서 머리에 단단히 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는 내내 본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유쾌한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한다. 

<픽윅 클럽 여행기>(The Pickwick Papers, 93쪽) , 찰스 디킨스 지음, 허진 옮김, 시공사



나날이 기온도 오르고 볕도 따가워지는 계절이다.

선크림 바르기를 귀찮아하는 나는 완전 생얼로 다니기에,

모자와 마스크가 유용하다.

바람이 불어 모자가 후딱 벗겨지면 나도 이 방법을 써봐야지.

그나저나 새 여름 모자를 사고 싶다.

살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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