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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y 17. 2023

계엄령의 기억

끄적끄적

1979년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10.26으학교는 문을 닫았고,

1학년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그해 12.12사태로 전두환 일당이 군부 권력을 장악했고.

다음 해 봄이 될 무렵 아는 아이들 몇이 명동에서 밥을 먹을 때,

다른 학교 남학생이 조용조용 지금 청와대 안에서는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3월이 시작되면서 학교는 개강했고,

나는 학보사에 들어갔다.



그해,

그러니까 1980년 봄은 격렬했다.

학생들은 연일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위를 벌였고,

그러면 백골단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학교 안으로 들어오다가 이어서 경찰이 진입했다.

돌멩이가 날아다니고 최루탄이 터지고 학생들이 쓰러지고

수업은 엉망진창.

경찰에 잡혀간 학생들이 많아서 강의실에는 듬성듬성 빈자리가 적지 않았다.

그마저도 5.17 비상계엄으로 학교는 다시 문을 닫았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방에 콕 처박혀 있던 나는,

내 방의 작은 흑백 TV로 AFKN을 통해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았다.

처음에는 상황을 수 있었다.

그러다 모든 취재가 갑자기 끊겼는데.

우리 집에서는 해외에 있던 언니가 그곳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전해주어서,

광주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교환원을 통해 이뤄지는 국제전화로 자세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없는 위험한 시국이었으니.

5월 휴강은 여름방학까지 이어졌고.

가을에 개강했더니,

대학 신문도 모두 군인에게 검열을 받아야 하는 시절이 되어 있었다.



그때 우리 학교 신문은 조선일보사에서 조판을 하고 인쇄했기에.

조선일보사에는 우리 같이 외부 출판물을 조판해 주는 시설이 따로 있었다.

원고를 미리 써서 가져가면 식자공들이,

학생들이 구성한 각 면의 layout에 맞춰 나무로 조립한 틀 안에 활자를 일일이 넣어서 초판을 완성했다.

그러면 그 판으로 교정을 다시 봐서 최종 인쇄본을 완성하는 방식.

지금 사람들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겠지.

그때가 손으로 하는 조판 시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어서 식자공들은 모두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벽에 가득한 크고 작은 모든 활자들 중에서,

그 작은 활자들을 재빨리 쏙쏙 뽑아서는,

오자 없이 판을 쫙쫙 채워가던 멋진 전문가들이셨다.

수업이 끝나고 조선일보사에서 조판을 하면,

일단 한 부를 인쇄해서 길 건너 당시 시청,

지금 서울도서관에 검열을 받으러 갔다.

(내 기억은 이런데 어쩌면 원고를 들고 갔을지도 모른다.)


강당 같은 크고 천장이 뻥 뚫린 공간이었는데,

입구 쪽으로 검열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죄라도 지은 듯 기죽어 서있고.

저 끝에 일렬로 놓인 책상 앞에 군복을 입은 검열관들이 앉아있었다.

한참을 기다려서 차례가 되면,

우리 앞에서 사정없이 그어대던 빨간 줄.

처음에는 저항의 의미로 검열에서 삭제된 부분을 하얗게 비워둔 채 신문을 발행했는데.

그 뒤에는 공간을 비울 수 없게 하였으니.

일부러 문장을 고치지 않고 잘린 앞뒤 문장들 그대로 활자를 밀어서,

어색한 문장을 그냥 발간했었다.



검열을 맡은 군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고뇌하는 영혼은 집에 두고 명령을 수행하는 껍데기만 출근했을까?

아니면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여 진급하자는 생각이었을까.

내 눈에는 그저 특정 단어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딱딱한 빨간펜봇으로 보였는데.


검열실의 그 숨 막히는 분위기가 싫었고,

바보 같이 잔뜩 졸아만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화가 나서.

무엇보다 국민들의 생각까지 통제하고 명령하겠다군인들의 행태에 분노하여.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이 하룻강아지는 검열관에게,

왜 그 문장을 삭제해야 하는지 설명해달라거나.

나 기다리느라고 지금 우리 아빠, 엄마 잠 못 자고 있다면서,

"아저씨 딸이 이렇게 검열받느라고 집에 늦게 들어오면 좋겠어요?" 따졌었다.


감히 누가 나를 해코지하랴, 턱없이 의기양양하던 나.

함께 갔던 남학생은 뭔 일 날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밖에 나오자마자 심호흡을 하더군.



그 밤,

시청 건물을 빠져나와 조선일보사로 가려고 텅텅 빈 세종대로를 무단횡단 할 때.

문득 고개를 들고 바라본 밤하늘이 이상하게 분홍빛이 어렸던 기억이 분명하다.


그날, 밤하늘은 왜 불그스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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