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차는 달려가고 May 22. 2023

소설로 읽는 돈의 윤리

끄적끄적

벽돌책이라 불리는 영국 작가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었다.

1,400쪽에 가까운 분량인데 각 인물들의 행로가 흥미롭고

구성이 탄탄해서 나름대로 재미있다.


소설은 '미들마치'라는,

런던에서 심리적으로나 거리로나 꽤 떨어져 있는 가상의 지역, 18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지역의 중상류층 인사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정치와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

결혼에 대한 기대와 현실, 그 구속과 협력.

그리고 돈벌이와 돈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태도를 짐작하게 해 준다.



나는 19세기 유럽 소설, 특히 영국 소설을 읽으면서 서사의 중요한 모멘텀이 되 거액의 유산 상속 문제가 늘 궁금하다.

현실의 반영인지 아니면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설정일 뿐인지.

정말 현실에서 친척에게까지 주고받을 유산이 많았나, 하는 의문과.

어떤 경제 시스템이었기에 재산을 연금 형태로 고정적인 수입화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당시 영국은 이미 산업과 자본주의가 발달해 있어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영토에서 얻는 농업 생산만이 아니라

상공업이나 금융업으로 당대에 많은 재산을 이룬 큰 재산가들이 적지 않았고.

병이나 사고로 일찍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니,

직계 상속자의 부재로 인해 많은 재산이 친척에게 넘어가는 경우는 있었겠지만.

소설에서처럼 그렇게 흔한 일인가?, 의아한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도저히 바뀔 방법이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뜻밖의 재산을 상속받아,

꽉 막힌 인생도, 사랑도 단번에 광채에 휩싸이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인물을 소개하면서 반드시 수입을 거론하는데.

유산으로 받은 연 얼마짜리 연금이라든가.

그 사람의 재산에서 얼마의 연금을 받는다던가 하는 내용이 흔하다.

전에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도 숙모님의 유산으로 해마다 500파운드의 수입을 갖게 되었다는 화자의 말이 있었다.

지금 우리는 노동 수입이 아니라면 주로 동산, 부동산의 재산에서 얻는 임대나 이자 소득이다.

이는 상황에 따라서, 시간에 따라서 증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가진 재산으로 상황과 상관없이 일정한 수입을 보장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그 시절에는 있었을까?



그때의 영국, 특히 지방 사회는 기독교적 윤리의 영향력 아래 있어서,

성경 말씀이 곧 선악의 기준이었다.

지역 재산가인 은행가가 과거에 전당포를 했었다는 사실만으로도(물론 그보다 더한 죄과도 밝혀지지만) 심한 비난을 받는데.

당시에 유대인들이 악독하다고 평가되었던 이유 중 하나가 기독교 윤리에서 금하는 불로소득인 이자놀이를 한 데에 있었으니.

지금 자본주의에서 전당포는 전혀 비난받을 업종이 아닌 것으로 볼 때,

당시는 돈벌이에 관해 훨씬 엄격한 윤리가 적용되었나?

악독한 아동 노동처럼 노동자에 대한 처우를 보면 전혀 아닌데 말입니다.


한 가지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부자들이 얻을 수 있었던 안정된 연금 소득은 과연 고도로 발전된 금융업만의 덕분이었을까?

불평등한 경제 구조여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그 시대로부터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돈을 얻는 데 있어 과연 정직해진 부분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더 악화되지 않았나?

돈은 그 자체로 최고의 가치가 되었으니,

돈을 얻는 수단이나 과정은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 팽배해 있다.


나는 지위를 확 바꿔주는 거액의 유산보다,

실제 사료로 남은 진짜 유산 배분이 재미있더라.

입던 옷, 장식품, 은그릇이나 냄비에 가재도구까지 일일이 상속자를 지명해서 나눠주는 약간 부자들의 그런 유언장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엄령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