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차는 달려가고 May 24. 2023

계급시대의 종말

끄적끄적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동화책으로 나온 셜록 홈스 시리즈와 괴도 루팡 시리즈를 읽고 또 읽었었다.

다 외우는 내용인데도 읽을 때마다 재미있더라.

조르주 심농의 페이소스 짙은 추리소설도 좋아하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추리,라는 측면보다 이야기로 읽는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시대나 인물들에 관한 충실한 묘사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거든.


1953년에 발표된 아가사 크리스티의 <After the Funeral>, 즉 <장례식을 마치고>로 번역된 추리소설을 읽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의 영국은,

이제는 지난 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장례식을 마치고> 원은주 옮김, 황금가지)



소설의 무대는 지방의 어느 저택이다.

여러 개의 침실과 서재, 거실, 식당 등을 갖춘 커다란 주택건물이 있고,

잘 손질된 정원이 있고.

오랫동안 저택과 그 생활을 관리해 온 늙은 집사가 있다.

충직한 가정부와 신세대 요리사도 있지.

혼자 살던 대부호 집주인이 죽었다.

아들은 그전에 죽어서 아버지의 슬픔이 되었고,

그의 부인은 아예 언급이 없다.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친척들이 모여든다.

7남매였던 고인의 형제자매 중 이제는 둘만 살아있고.

고인이 된 형제자매의 배우자나 그 자식들은 형편이 좋지 못하다.

전쟁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시대가 바뀐 것이다.

집안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사랑에 눈이 멀어 신분 차이가 큰 상대들과 결혼했고.

물려받은 재산은 진즉에 사라졌으니,

모두들 죽은 이의 유산만 기다리는 형편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나 범인은 밝혀졌다.

그 와중에 드러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사는 장손의 죽음과 함께 영화를 누렸던 지난 시대가 끝났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더 이상 누군가의 주택으로 사용되기에는 지나치게 큰 저택은 수도회 같은 단체나 관심을 보이고.

화려한 저택을 장식했던 각종 집기들은 뿔뿔이 팔려나가겠지.

늙은 집사는 노년의 평화를 찾아 어딘가로 떠나겠고.

신분에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는 젊은 세대는 손에 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부유함을 누릴 것이다.


그렇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는 20세기 초 귀족과 부호들의 생활상이,

그리고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분해되는 그들의 삶이 그려져 있다.

쓸쓸한 여운이 살인사건보다 내게는 더 흥미롭다.

이것이 내가 소설에서 얻는 재미.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로 읽는 돈의 윤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