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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n 05. 2023

잠옷바지를 버리며

끄적끄적

마트에서 1+1으로 산 잠옷바지.

함께 따라온 똑같은 모양으로 색깔만 다른 바지는 금세 못 입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이 바지는 지난 몇 년, 나의 힘든 시간을 동반다.


원래 예쁜 잠옷을 좋아해서 세일 때면 갖가지 디자인의 잠옷을 사서 서랍에 쌓아두는 취미라.

비싸게 산 잠옷은 아깝다고 모셔두고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몸에도 편한 잠옷 몇 개를 돌려가면서 입는다.

옷감이 얇아질 정도로 빨아대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버릴까 말까, 하던 이 잠옷바지.

드디어 버리기로 했다.



예전에 나의 힘든 시간을 함께 해준 리넨 앞치마를 버리면서도 글을 썼었는데.

이 잠옷바지를 버리려니 마음이 찡해온다.

수고했다.

나의 시간에 헌신해 주셨다.

이불 속에 들어가기 전 잠옷으로 갈아입고,

아침에 이불에서 나와 잠옷을 벗기까지 열 시간쯤.

나의 휴식과 잠을 함께 해준 고마운 잠옷.

잘 가.

덕분에 편한 몸으로 잠들 수 있었어.


한편으로는 그동안 내게 징그럽게 들러붙어있던 갖가지 액운이 잠옷바지의 은퇴와 더불어 떠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도 있고.

심신이 바닥을 치면서 방구석에 널브러져 있던 그간의 시간이 확실히 끝나는 상징이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렇다 해서 이 잠옷바지에 대한 나의 고마운 마음이 변질되는 건 아니랍니다.



썩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살다 보니 정말 유용하고 유익하게 나의 생활을 오랫동안 도와주는 고마운 도구, 옷, 신발 같은 물건들이 생긴다.

사람도, 물건도 겪어봐야 안다.

고마움을 알고,

고마움을 간직하자.


내가 어려운 시기에 나와 함께 하면서 나의 생활을 도와준 물건들에게,

나의 고마움과 애틋한 애정을 전하며.

우리의 이별을 장식할 아름다운 방법을 찾아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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