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라면 대개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모습을 연상할 텐데.
내가 말하는 '백수'는 '소득을 얻는 직업이 없는 상태의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뭔가를 하더라도 그 활동이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거나,
수입을 목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직업 없이 살아가는 기간은 일시적일 수도 있고 길어질 수도 있겠다.
자발적으로 직업을 그만둔 경우도 있겠고.
어쩔 수 없이 소득 있는 일을 찾지 못한 사례도 있겠다.
직장인들은 직장에 얽매여 살아가는 처지를 힘들어 하지만,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직업을 가져서 얻는 상당한 이득이 있다.
생활을 꾸려갈 수입이 있다는 점이 첫째가는 장점이겠지만.
그 밖에도 직업은'나'라는 사람을 사회적으로 규정해 주어 정체성을 부여하고,
사회적 역할을 맡으며.
그래서 신분이라는 후광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거나 성공을 거뒀다면,
인간 실체와 상관없이 좋은 평가와 대접을 받을 수 있고.
어떤 직업이든 재능과 노동력과 시간과 고뇌를 바치는 대신,
생활 방식을 결정하고 의무와 책임을 얻으며 앞날을 설계하거나 하는
생활 상에서 또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유무형의 혜택이 있다.
백수의 경우 소득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지만.
재정적인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다 해도,
나라는 사람을 입증할 사회적인 명함이 없으므로 존재 자체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자신의 외모, 분위기, 언행, 지식, 인품 같은 '신언서판'으로 자신이라는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같은 소유의 시대에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나 아파트, 차림새 같은 소유물과 소비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으려 하는데.
물론 소비 수준이나 소유물이 그 사람의 취향이나 성향, 경제력 같은 일부를 드러내주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 소유물도 벗겨내고, 조명 효과도 사라진 존재 자체로 백수는 세상과 맞설 수밖에 없다.
백수는 그렇게 직업이라는 사회적 신분에 기댈 수 없고,
직업이 강제하는 의무로 시간을 채울 수도 없으니.
스스로 할 일을 찾아내고 일과를 짜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또 직장에 속한 직업이라면 직장이 요구하는 가치관이 있어서,
직장의 판단이 자신의 가치관과 간극이 있을 때 갈등하고 번민하기도 하지만,
일일이 판단할 것 없이 조직의 결정에 의지할 수도 있는데.
백수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사리판단을 하는, 매뉴얼 없는 시공을 살아가야 한다.
직업이 있으면 이미 나 있는 길을 -탄탄대로이든 산사태로 무너진 길이든- 따라가는 경우가 많지만.
백수의 삶이란 허허벌판에 길을 낸달까,
나무들로 캄캄한 밀림에서 길을 찾는달까.
외롭고 고달프고 막막하다.
대신 자유롭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상사가 있나.
고만고만 경쟁하는 동기가 있나.
툭, 앞에 던져지는 하기 싫은 업무가 있나.
월요병이 읍써!
하늘 아래 나 혼자.
잠을 자든, 춤을 추든, 노래를 부르든, 땅을 파든.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한다.
이야아,
자랑스럽다.
그 어려운 자유를 얻었으니 주눅 들지 말고
두 팔 쭉 뻗어 크게 숨을 들이쉬고 성큼성큼 행진하자.
자유는 곧 자율이다.
나는 어떻게 내 인생을 자율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