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커뮤니티에 '돈 많은 백수'가 소원이라는 글이 올라온다.
좋겠지.
창밖으로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백수의 장점을 떠올린다.
돈은 좀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백수라서 누릴 수 있는 특혜가 좀 있지요.
지금 나는 난방을 켜서 온기 있는 집에서,
바깥에 드문드문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요.
음악을 틀어놓았죠.
누워서 뒹굴뒹굴 아, 백수라 좋구나!
이런 날이면 특히 백수라서 좋습니다.
아침에 알람으로 재촉받아 일어나지 않는다.
내 몸이 요구할 때 잠들고,
내 몸이 허락할 때 깨어난다.
잠에서 깨고도 한참 동안 뭉기적거리며 보내는 시간이 나는 좋다.
어떤 강제 없이 몸과 마음이 동의하는 일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내키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비가 쏟아지거나 너무 춥거나 덥거나 공기질이 나쁠 때 굳이 외출하지 않아도 된다.
집에 있든,
거리를 걷든,
훌쩍 여행을 떠나든.
갑자기 바다 보러 길을 떠날 수도 있고,
다른 도시에 밥 한 끼 먹으러 다녀올 수도 있다.
하염없이 걸을 수도 있고,
기약 없는 장기여행을 떠날 수도 있지.
성수기를 피해 평일에 여행 가고.
바쁠 게 없으니 어슬렁어슬렁, 느릿느릿, 찬찬히 돌아볼 수 있다.
직장에 매인 몸이 아니라서 이동의 자유를 누린다.
살아보고 싶은 장소가 생기면 한두 달이 아니라 한두 해, 또는 몇 년씩 살아볼 수도 있다네.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요
평생 한 곳에 붙들려 살겠어요?
이리저리 둘러보다 내키는 곳에서 한동안 자리 잡아
내 방을 꾸미고 장을 봐서 밥 해 먹으며
그곳 사람들을 관찰하고 거리 곳곳에 익숙해지다가,
단골 카페도 만드는,
그런 유목의 생활은 어떤가요?
귀찮음을 극복하면 인생은 훨씬 풍부해질 수 있다.
어차피 돈벌이는 포기했으므로 돈과 상관없이 재미있는 일에 몰두할 수도 있다.
인문학 책을 잔뜩 쌓아두고 읽는다거나,
영화를 들이 파고 예술품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지.
운동을 하거나 악기를 연습하거나 뭔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고.
자연을 관찰하고 동물과 친구가 되며 사람과 친해질 수도 있다지.
누군가를 도우면서 내 인생의 한 시기를 보낼 수도 있고.
꿈꿔오던 집을 지을 수도 있겠다.
다음날의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불태운다.
기운을 몽땅 소진해도 돼.
내일 쉴 수 있으니까.
하루 24시간,
백수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욕구에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에너지를 쓸 수 있다.
단, 규율을 강제하는 외부의 압박이 없는 대신,
스스로 규율을 만들고 지켜야 한다.
자유를 얻은 대신 인생을 자율적으로 꾸려가야 하지.
스스로 약속한 생활의 틀을 지켜야 하고
내적 자율이 동반되어야 백수는 의미가 있다.
아니면 인생이 금세 흐트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