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신으로 유럽에서 더 오래 살았으며,
말년에 영국으로 귀화한 작가 헨리 제임스의 소설들을 다시 읽는 중이다.
한때 우리말로 번역된 작가의 작품들을 몽땅 찾아 읽었는데.
아마 머릿속에 그려진 어른으로서의 내 인생에는,
소설을 통해 파악한 작가 헨리 제임스의 삶이 한 자리 차지했을 것이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종교철학자인 작가의 아버지는,
당시 미국이 문화적으로 유럽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이었는지.
성장기에 있는 자식들을 수차례 유럽으로 데려갔으며.
헨리 제임스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성장하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는 스스로 미국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지를 옮겨 다니면서.
유럽과 미국의 상류사회를 경험하고 관찰하는데.
대륙 간의 문화적 차이와 간격,
그 사이에서 부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학적 배경과 문제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속 관찰자 새터스웨이트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가상의 인물이라면.
헨리 제임스는 1843년에서 1916년까지 실재했던,
보다 지적이고 문학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니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오직 '인간과 세상의 관찰자'로 살고 싶어 했던 내게 작가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였겠는가?
그의 소설 <데이지 밀러>에는 윈터본이라는 이십칠 세의 남자와,
데이지 밀러라 불리는 다소 연상의 여자가 나온다.
파리에서 만든 옷을 즐겨 입고 뉴욕 사교계 인싸라는 미인 데이지 밀러에게는 흥미가 일지 않았다.
천박하다, 교양 없다는 소설 속 평판이 아니라도 내가 선호하는 성향이 아니었기에.
스위스 고급 휴양지 브베의 고급 호텔에서 장기 체류하거나
겨울에는 따뜻한 로마에서 지내는 지체 높은 윈터본의 친척 코스텔로 부인도 전혀 끌리지 않았다.
매일 머리가 아프다고 방에 틀어박혀서는,
교양이 어쩌고 출신이 어떻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노부인이 뭐가 좋을까.
지금 세대로서는 데이지의 행실에 대한 미국인 상류사회의 쑥떡거림에 동의하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150년 전, 유럽을 추종하는 미국 상류층 사회에서도
여자에 대한 인식이나 남녀 관계가 지금과 크게 달랐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겠지.
내가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특별한 사업이나 목적 없이 유유하게 유럽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윈터본이라는 인물이다.
'돈 문제'는 아예 언급되지 않는 윈터본의 생활은 유복하면서 퍽이나 자유롭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았는데.
자신과 남들의 언행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이면의 심리 작용을 탐구하는 자세가 내 마음을 끌었다.
상승하는 신생국가 미국과 점점 가라앉는 유럽 상류층 간의 좁게는 예의범절과 계급 문제,
넓히면 문화 차이,
경제력과 전통이라 불리는 기존 양식의 상관관계라거나.
인간의 심리와 행동 양식을 탐구하고 분석하여 일종의 경향성을 정리, 분류하는 작가의 관심과 사고의 흐름이 재미있었는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작가의 사생활까지 문학평론가들이 왈가왈부하는 걸 보면,
굳이 저래야 하나, 싶은 게 나의 생각이다.
아무리 작품과 작가의 삶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지만,
작품보다 오히려 작가의 사생활을 염탐하며 억측하는 것으로 내게는 보인다.
소설은 스위스 브베라는 휴양지와 로마가 장소적 배경으로,
소설 속 인물들의 동선은
이 소설보다 20년 전에 발표된 찰스 디킨스의 소설 <작은 도릿>에서 도릿 일가가 여행했던 코스와 비슷하다.
이전 몇백 년 동안 유행했던 부잣집 자제분들의 그랜드투어에 이어서 19세기에는
미국과 유럽의 부자들 사회에서 아마도 일가족 모두가 떠나는 유럽 여행이 유행이었던 듯하고.
여행 코스나 여행 안내인이라거나,
숙소로는 고급 호텔이나 고급 주택을 빌리는 등 여행 양태가 비슷하다.
상류층 여행객들이 장기 체류하는 유명 여행지에는 그들만의 사교계가 형성되어서
굳이 집을 떠나서까지 자기 나라에서의 생활과 소속을 그대로 유지하더라.
장소만 달라졌을 뿐,
좁고 닫힌 자기 울타리는 전혀 벗어나지 않더군.
이렇게 한 시대의 단면을 상상할 수 있는 소설이 나는 재미있다.
그러니 혼자 놀아도 전혀 심심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