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잘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는 것 같다.
우유 잘 먹고 트림도 순탄하게 하면서,
잠 잘 자고 배변도 잘해야지.
제때제때 걸음마도 하고, 말도 배우면서,
웅얼거리기라도 하면 책 붙들고 '사과-애플'이라도 익혀야 한다.
어린이집 다니면서부터 시작되는 사교육이야 말해 뭐 해.
어른이 되어 돈을 벌고 사회에서 지위를 굳히고 가정을 꾸려야 온전할 수 있다는 압박감은,
인생을 고해로 만들어 버리지.
그렇게 평생을,
쏟아지는 의무와 평가에 치이면서.
먹고, 자고, 씻고, 휴식하는 인간의 기본생활은 단지 성과를 내기 위한 보조 수단이 되어버렸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은 그저 성가실 뿐이니,
일상생활은 번거로운 또 하나의 노동일뿐.
살기 위해 먹는다,
깨나기 위해 잠든다,
집은 단지 투자 대상, 보금자리란 없다!
하지만 의무에서 해방되어 단지 인간으로 살아보면
생활은 그 자체로 즐거울 수 있다.
밥은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을 지키는 용도에 더해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차려서 먹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다.
정리정돈과 청소는 내가 머무는 공간을 기능적이고 깔끔하게 꾸미고 유지하는 일이니.
매일매일 흐트러지는 일상의 흔적을 치우고 정돈한다는 의미가 있다.
옷을 빨고,
이불을 개키며,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꽃이 핀 화분에 물을 주면서 빛과 물과 약간의 양분으로 자라나는 그 오묘한 세계를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음악 들으며 잠들고.
책을 읽고
동네를 산책하는 매 순간 잔잔한 기쁨을 느끼면서
살아있어 진심 감사할 수 있다.
그렇게 소진됐던 몸과 마음을 푹 쉬게 하면,
마음 밑바닥에 조금씩 고이는 활기.
옹달샘에 희미한 자취를 그리며 퐁퐁 물이 샘솟듯,
몸에 생기가 돌고 차곡차곡 의욕이 고인다.
그러고 나면 캄캄했던 내 앞에 차츰차츰 내가 내딛을 길이 보이지.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나의 내면과 외부 세계가 대화하고 협력하여 조화를 이루고.
그래서 질질 끌려가듯이 평생을 살아내고 싶지는 않다!, 는 절규에서.
현실을 돌아보고 방법을 모색하면
어쩌면 꽉 막힌 듯이만 보였던 세상에 내가 들어갈 만한 좁은 틈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대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내게 쏟아지는 빛을 고스란히 받아내기 위해 왕을 밀어내야 할지도 모르지.
빈 몸으로 세상 한가운데를 걸어가야 하니
내미는 명함 없는 나를 업신여기는 누군가 거칠게 밀쳐낼 수도 있어.
하지만 미리 겁먹지는 말자.
오늘 충실하고 기뻤다면 감내할 수 있는 고난의 그릇은 훨씬 커지니.
내가 일상의 즐거움으로 단단해지면 세상의 유혹에 질질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