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의 시간

혼자 놀아요

by 기차는 달려가고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느라 창문을 조금 열어두었다.

서늘한 공기에 난방을 켰고요.

늦은 아침을 먹고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면서

왔다 갔다 강과 약으로 내리는 일요일의 장맛비는 한가롭구나.

오늘도 일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요.


백수 이야기로 돌아가서,

자발적으로 돈벌이를 그만두었서도 마냥 기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생계 걱정을 내려놓은 일부 재산가나 충분한 연금생활자라면 모를까

중간에 쉬는 경우라면 일에, 사람에 치여서 심신이 너덜너덜해졌을 수도 있고.

아니라도 다음의 도약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삼는 경우가 많을 테니 마음이 조급하겠다.

생명체와 먹고사는 문제는 떼어놓을 수 없으니,

우리가 살아있는 한 먹이를 구하는 책무에서 해방될 수는 없다.

자칫하면 어렵게 얻은 백수의 시간을 걱정근심으로 초조해하며 흘려보낼 수도 있지.



일을 그만두고 별렀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발목을 감았던 쇠사슬에서 풀려난 죄수처럼 자유로운 시간을 얻으면 마냥 길을 떠나고 싶어 지지.

한없이 걷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새로운 세계에 몰두할 수도 있다.

몸에 잔뜩 쌓여있던 독소가 술술 빠져나가는 기분이겠지.


다음 시기를 준비하기 위해 무언가를 배우고,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거나.

또는 공모전에 도전하거나 해서.

직장에 다닐 때처럼 빡빡한 시간표를 짜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치열한 목표 없이 막연하게 일을 그만두기에는 무책임하다는 자책이 들 수 있다.


육아를 하거나 환자를 돌보거나 집안 살림에 시간을 헌납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직장이란 하루 몇 시간에, 에너지의 일부만 떼어줄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지식과 생각과 시간과 가용 에너지에 심지어는 가치관까지,

거의 존재 전부를 급료와 바꾸는 체계인지라.

직장에 다니면서 소소한 취미와 일상적인 생존 행위를 넘어서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백수라는 귀중한 시간을 최대한 누려야 한다.

다음 시기를 준비하는 꽉 찬 일정은 사실 자유로운 시간이 아니다.

백수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면

내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탐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거든.

어린이집부터 일단 교육 체계에 발을 들이면,

마치 에스컬레이터를 타듯이 사회화되는 과정이라.

내가 원하고 선택한 그 어떤 것이 그저 막연한 환상, 이미지에 휩쓸린 것일 수도 있고.

어른들이 주입한 선입견이나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일 수 있다.

나에 관해서도, 그 분야에 관해서도 제대로 알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어릴 때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 아이들이 의사 또는 아이돌을 희망하듯이)


또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은 제각각의 분야라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과연 내가 할 수 일인지.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이 그 일을 위해 해야 하는 단계인지,

아니면 엉뚱한 방향에서 헤매고 있는 것인지,

내가 놓인 상황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도 있다.

일단 돈을 제외한 상황에서 나와 일과의 관계만을 살필 수 있다면,

내가 극복해야 할 일은 극복하고.

불필요하거나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단호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이런 작업을 백수 시기에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스스로 선택했든 강제로 밀려났든 일단 백수가 되었다면,

처음 내디뎠던 발걸음부터 찬찬히 돌아보며 현재의 자신을 점검하고.

다음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 것인지,

방향을 타진하며.

다소 무모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목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희망과 능력을 조율하면서.

동시에 포기해야 할 욕심과

반드시 지켜내야 할 양심의 최소한을 결심하면서

방향을 탐구하고 자신을 점검하는 행위가 바로 백수의 시간에 해낼 수 있는 우선순위가 아닐까.



또한 단순히 즐기는 '도락'과

즐기면서 깊이를 더해가고 내용을 발전시키는,

그래서 내 평생 추구할 수 있는 '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심심한 시간을 때우고 즐거움을 얻어 마음이 충만해질 수 있는 취미만 가져도 좋고.

그 취미가 발전해 내 평생 이 분야에서 어떤 의미를 이뤄낼 수 있겠다,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내가 기필코 삶에서 해내야 할,

운명적인 '나의 직분'을 찾을 수 있으면

백수의 시간은 축복이 되겠다.


이모저모 탐색하는 동시에

고갈된 감성과 몸의 에너지도 꽉꽉 채울 수 있도록.

그래서 영혼도, 시간도 한껏 자유롭기를.

매거진의 이전글생활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