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을 했다.
꼬맹이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학생이라는 의무를 등에 지고 올라탔던 기차는 어른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은이는 기차에서 내렸고,
레일을 달려가는 기차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들판으로 나선다.
어디로 가지?
풀을 헤치며 타박타박,
스스로 길을 찾아내야 할 앞날은 막막하지만.
낡은 커리큘럼과 꽉 막힌 시간표에 갇혀있던 은이는 졸업을 환호했다.
난 이게 좋아.
졸업식이 지나서 은이는 외할머니를 뵈러 갔다.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병원을 여러 번 옮기신 외할머니는,
은이가 병문안 갈 때마다 몸은 더 쇠약해지시고 병원까지의 거리는 멀어진다.
이번에도 외할머니는 눈물바람이셨다.
딸에 대한 그리움과 손녀에 대한 애처로움으로 슬픈 외할머니는 은이를 보면 줄줄 눈물을 흘리시니,
어릴 때 은이는 외갓집 가기를 망설였었다.
막상 은이는 부모에 대한 기억이 아예 없어서인지 부모의 빈자리를 크게 괴로워하지 않는다.
은이에게 부모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마음속에 담긴 수호신인 동시에 내재된 규율이랄까.
그러니까 두려움이 밀려들 때,
괜찮아 하늘에서 아빠 엄마가 날 지켜주셔, 되뇌거나.
뭔가 아니다, 싶은 일에는
내가 잘못하면 아빠 엄마가 속상하시겠지?, 하는, 자기다움의 기준이랄지.
은이가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건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워낙 다정하게 손녀를 사랑해 주신 덕분인데,
더해서 은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아이였다.
나는 꽤 괜찮은 구석이 있어, 라든가.
모자란 부분이 아직 많아 부끄럽지만,
고치려고 애쓰니까 앞으로는 좋아질 거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굳은 믿음.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 은이는 왜?라고 토를 달지 않는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주어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부모가 없어도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니.
짙은 그리움과 때때로 밀려드는 쓸쓸함에도 부모의 부재에 원망은 갖지 않았다.
병원에 다녀온 뒤 외할머니로부터 전염된 우울감을 털어내려고 은이는 바쁘게 몸을 움직였고.
덕분에 냉장고에는 맛있는 반찬들이 쌓이고
집은 반짝반짝 청소가 되었네.
집안일을 시작하기 전 은이는 앞치마를 두른다.
앞치마는 옷에 튈 오염을 막아주는 실용성과 동시에 이제 집안일을 시작합니다, 하는 은이 나름의 선언이다.
그리고 손에 장갑을 낀다.
물 쓰는 일에는 고무장갑을,
아니라면 목장갑.
쉽게 손상되는 피부라서 끼기 시작한 장갑 또한 은이가 이제부터 손 쓰는 일을 합니다,라는 선언이다.
그렇게 앞치마와 장갑을 용도에 따라 바꿔가면서 은이는 채소를 다듬고, 설거지를 하고, 목욕탕 청소를 했으며.
쓰레기를 분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창문을 닦았다.
세탁을 한다.
겨울의 차가운 물에 혹시라도 세제가 완전히 녹지 않을까,
(물론 찬물에도 세제는 잘 녹는다고 설명되어 있지만요.)
또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생활 중에 지킬 만한 지침들에는 (에너지가 필요한 온수가 아닌) 찬물 세탁이 권고사항이라서,
인덕션으로 물을 끓여 과탄산소다를 녹인 물에 빨래거리를 조물조물 애벌빨래해서 세탁기에 돌린다.
관심과 손길이 더해진 빨래는 선명한 제 빛깔을 찾고 건조대에서 뽀송뽀송 말라간다.
겨울날 오후,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바싹 마른 수건이나 잠옷이나, 어느 날은 걸레들...
반듯반듯 빨래를 개면서 누릴 수 있는 평화로움을 은이는 애정한다.
방바닥을 닦는다.
먼저 빗자루질 또는 청소기를 돌려서 가구와 바닥에 슬며시 들어앉은 먼지를 싹싹 훑어내고,
물에 희석한 EM 용액을 스프레이로 칙칙 뿌리면서 마른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그러면 바닥재 표면에 들러붙어있던 미세한 먼지층이 말끔하게 닦이거든.
맨발에 닿는 감촉이 얼마나 산뜻하게요.
음식을 만들면서 틈틈이 조리도구를 씻고.
밥을 먹고 나면 미루지 않고 곧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식사 중에 반찬 묻은 입술 한번 닦거나 흘린 물방울을 훔친 종이냅킨을 모았다가 조리도구나 그릇에 묻은 기름기와 양념을 닦아내고요.
그렇게 기름기를 대략 걷어낸 그릇에 주전자로 끓인 물을 조금씩 부어준다.
(적은 양의 온수를 잠깐 쓸 경우,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온수보다 인덕션에 끓이는 물이 비용이 적게 든다고 은이는 생각함.)
그러고 나서 세제 묻힌 수세미로 그릇들을 싹싹 닦아서는 수도꼭지 아래 차곡차곡 쌓아놓고,
하나씩 차례대로 흐르는 찬물에 헹군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말끔한 그릇들이 은이는 만족스럽다.
각각의 일마다,
그에 적합한 가장 좋은 방법을 궁리해서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찾아내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이 은이는 재미있다.
청소하거나 공과금을 내면서 은이는
청소할 면적이 좁고 관리비용이 적게 드는 작은 집의 장점에 기뻐하는데.
곧, 음식을 만들어 먹기에는 옹색한 부엌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리도구들과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들이 늘어나면서,
또 친구들을 부르느라 다양한 식재료를 사면서,
은이는 집안 구석구석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빽빽하게 물건을 쑤셔 넣을 수밖에 없다.
감자와 양파는 그물로 짠 주머니에 넣어 벽에 걸었고
못난이 사과 한 상자는 베란다 선반에 끼워 넣고 아침마다 한두 개, 사과를 꺼내먹었다.
좁은 부엌에서는 식재료나 도구들을 늘어놓을 수도 없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기도 힘들다.
손이 재빠르지 못한 은이는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미리미리 세세한 계획을 세워서,
좁은 부엌과 1구 인덕션이라는 조건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음식과 조리순서를 고민했는데,
먹고 나서 그릇을 치우는 일도 수월하지 않다.
물이 뚝뚝 흐르는 그릇들을 올려놓을 데가 있어야 말이지.
그래도 작은 집을 요리조리 가꾸어가는 즐거움은 있었다.
쓰레기통을 따로 사지 않고 책상 아래와 침대 옆에는
생활 중에 매일매일 배출되는 플라스틱이나 종이로 만들어진 포장재 상자를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다 다시 재활용 쓰레기로 내놓는다거나.
목욕탕에는 벽에 접착식 훅을 붙여서 역시 내용물을 다 쓴 포장재 비닐봉지를 걸어놓고,
머리카락 같은 젖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재활용 방식을 찾아낸다거나.
(쓰레기가 차면 비닐봉지 채 버리고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
아, 하지만 수납공간이 모자라니 옷에 관해서는 결심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링에 관심이 있어서
이런저런 차림새를 시도해 보곤 하는 은이가 가진 옷, 신발, 소품들이 적지는 않으니.
이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려면 조만간 옷에 관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제는 주로 집에 있을 테니 계절마다 외출복은 두어 벌만 남겨둘까?
날씨에 맞는 같은 옷만 줄곧 입고 다니면 많이 따분할까?
은이는 연극 무대 배경의 그림을 맡은 선배를 도운 적이 있었다.
배우들이 연출가의 지휘에 따라 배역을 연습하는 동안,
의상팀에서는 인물들의 성격을 드러내줄 옷을 만들고,
분장팀에서는 배우를 극 중 인물로 바꿔낼 만한 분장을 고민한다.
무대 장치를 맡은 업자는 연출가의 구상과 대본에 맞도록 어설프게 구조물을 만들고 색을 칠해서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세트를 짓지.
종종 관련자 누군가의 집에서 사용하던 소파가 끌려 나오고, 비슷한 과정으로 구한 책들이 서가를 장식하는 건 흔한 사례.
공연이 임박해서 완성된 세트는 트럭에 실려오고,
조각으로 나뉜 구조물은 무대에서 조립되어 배우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장치가 된다.
배우들이 의상과 분장을 갖추어 무대에서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이 시작되기까지 그 팽팽한 긴장감.
관중들이 좌석을 채워가고
무대 뒤에서 조연출이 신경을 꼿꼿이 세운 배우들 사이를 하나, 둘, 셋 시간을 재며 뛰어다닐 때.
드디어 무대의 막이 오르고 허술한 세트와 소품들이 천연덕스럽게 공간을 연출하면서,
배우들은 조명을 받으며 순서대로 무대를 오르내린다.
배우의 연기와 관중의 호응이 만들어 내는 공감의 교류 또는 흡입의 시간.
몸짓과 대사와 표정 또는 춤과 노래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인물들의 갈등으로 절정에 올랐다가,
탄식이 절로 나오는 파국 또는 다행스러운 해피엔딩으로 극이 끝나고.
배우들과 연출가가 멋진 인사를 마치고 무대에서 물러나면
술렁술렁 관중들이 떠난 텅 빈 무대에는 장치만 남아서 밤을 지키지.
공연기간이 끝나면 구조물은 완전히 철거되어 함부로 트럭에 던져지고
극장은 다시 텅 빈 공간으로 되돌아간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대에서 펼쳐지던 이야기는 그저 환상이었나?
울고 웃으며 감동받은 순간은 어디로 날아갔단 말이지?
아침에 보글보글 보리차를 끓이고,
작은 솥에 밥을 짓고,
갖가지 재료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끓이는 시간이 은이는 좋다.
생선을 굽거나 고기를 볶거나 나물을 무치면서.
혼자 맛있는 밥을 차려먹고는 물개박수와 함께 '완벽해!'를 외치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밥상을 위해 전골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 모든 시간을, 행위를 은이는 좋아한다.
나는 일상의 모든 것을 사랑해.
밥상을 펴고 수저를 놓고 음식이 차려지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는,
빈그릇들이 하나씩 물러나고 최종적으로 행주로 닦은 밥상이 접힐 때까지 일련의 행위- 이루고 사라지는 과정.
방에, 가구에 사각사각 먼지가 쌓이고,
이를 닦아내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행위가-
마치 하나의 공연 같다, 고 은이는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채워지고 비어 가는 반복되는 일상.
지루할 수는 있으나 의미 있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인생의 모든 순간들에 열심한 마음으로.
해가 뜨고 해가 지고-의 반복으로 세월이 흐르듯
인생은 먹이를 구하고 음식을 먹고 청소를 하고.
또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며 손을 잡고 손을 놓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들이 인생의 내용을 채워간다, 고 은이는 생각한다.
무대 위에 설치하는 세트는,
극장 뒤편에서 세밀하게 조정되는 조명은, 음향은,
결국 이야기가 전개되도록 돕는 단지 장치일 뿐.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연극의 본질은 전하고 싶은 진실이나 나누고 싶은 아름다움,
눈에 보이지 않고 형상으로 남지 않는 의미와 공감일 거다.
인생은 매일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고.
그러니 아침부터 밤까지 이루고 사라지는,
순간에 충실한 반복되는 행위들이 내 삶을 지탱하리니
장치의 역할을 인식하여 적절하게 배치하고 활용하되 매몰되지는 말자.
이루고 사라지는,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모든 순간들.
그 허무하고 처연한 아름다움.
일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사라지는 일상의 이야기를 은이는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