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산길을 걸었다.
가까운 산길을 잠깐 걸을 예정이면서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에,
물과 간식에,
바람막이에 스카프에 깔고 앉을 매트까지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섰다.
날도 화창하고 길도 어렵지 않아서 봄날의 푸르름을 즐거워하며 뚜벅뚜벅 걸었지.
걷다 보니 얼굴에 열기가 확확 느껴지고 목이 말라 앉을 곳을 찾았다.
벤치가 몇 개 놓인 그늘진 자리가 있는데 이미 중년여성 두 분이 마주 보는 자리에 혼자씩 앉아 크게 이야기를 나누시네.
어지간하면 혼자 앉을 곳을 찾겠지만 다른 자리가 없으므로 그냥 끄트머리 의자에 배낭을 내렸다.
그리고 앉아서 물을 마셨는데,
청각이 살아있어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분들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두 분은 한 동네에 있는 다른 아파트 주민으로 연령대는 다르고,
동네에서 골프 치는 부인들 무리에 속한 오래된 친한 사이이다.
동생 되는 분이 며칠 전 처음 가는 골프장에 다른 분이 운전하는 차로,
오랫동안 알아온 네 분이 동승해서 갔다.
하필이면 운전자가 길치에다가 예민하고 속 좁은 분이라, 가는 중에 오간 곱지 않은 말들로 이미 기분이 몹시 상했고.
따라서 공도 맞지 않았으니.
안 그래도 되는 거 없는 날인데 서울에 돌아와서는 자기 차가 있는 곳에 내려주지 않아 짐을 들고 차가 있는 곳까지 한참 걸어야 했다고.
내가 운전하는 날에는 꼭 집 앞에서 태워서 집 앞에 내려줬는데 말이죠, 하는 하소연이었다.
더해서 누구누구는 그런 일이 쌓이고 쌓여 불구대천 원수가 됐다느니.
또 다른 누구는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는 계속되었으니.
심심해서 같이 놀기는 하는데 말과 감정의 이합집산은 중2짜리들과 비슷한 모양인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지금 내가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면서 저런 말과 감정의 늪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미줄처럼,
인간사 어디에나 끼어들어 보일 듯 말 듯 발목을 잡는 사람 사이의 피로감.
벗어나면 정말 개운한데 다들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