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은이
황사가 날아든다.
걸레질을 하면 누런 흙먼지가 묻어 나왔다.
낮기온이 20도를 넘는 더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10도 이하로 떨어지고,
대설주의보가 내리거나 강풍이 불거나 하는 참 이상한 날씨.
조마조마한 시국에 온통 정신이 쏠려 봄이 오는 줄도 몰랐는데,
밖에 나가니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었네.
검게 메마른 나무줄기에 물이 오르고 작은 순이 연둣빛 고개를 내밀었다.
조마조마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희망을 꿈꿀 법한 새해가 되었지만 시국은 여전히 지지부진해서.
수하들은 수감됐는데 허세를 잔뜩 떨며 탈옥한 수괴는, 관저에서 뻗대고 앉아 온갖 거짓말과 해괴한 헛소리를 쉼 없이 뿜어내는 중이다.
그에 호응하여 날뛰는 정말 이상한 무리들.
매일매일 하도 기가 막힌 일들이 펑펑 터지니까 하루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게 된다.
디지털 디톡스 어디 갔어!
친구 말하길,
일하는 중에도,
밥 먹고 잠자는 중에도.
지금 저쪽에서는 열심히 나라 망치고 있겠지, 싶어 마음이 편치 않다고.
다들 평범한 일상을 잃고,
업무에 몰두하지 못하며.
내란성 불안증, 내란성 스트레스, 내란성 고혈압, 내란성 위염, 내란성 불면증, 내란성 노화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들아,
울화 치미는 국민의 심정을 알기는 하냐고.
체포 시도가 실패한 이후 이제나저제나 "내일인가? 병"이 유행했었는데.
지금 관저에서 경호원들로 장벽을 친 내란수괴 커플과 그 패거리들은 뻔뻔스럽기가 그지없어 나라를 점점 더 어려운 구석으로 몰아간다.
기대할 건 헌재의 탄핵 인용 판결인데.
어서 올바른 판결로 국가적인 혼란과 피해를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데.
스스로 공언한 판결 기일도 모르쇠, 기일을 한껏 늦추더니.
내란에 책임 있는 자들을 다시 제자리에 복귀시키는 헌재에 대해,
법과 원칙을 수호하리라는 신뢰감은 사라졌다.
국민들은 너무 불안하다
친구가 말한다.
단두대에 올라간 프랑스 왕도 저렇게 못나지는 않았겠다.
나랏일 하라는 공적인 자산을, 인원을 자기 이익에, 자기 범죄를 가리는 방패막이로 써먹어.
나라를 운영해야 하는 공무원들이,
나라를 지키라는 군인들이 줄줄이 조직범죄에 가담하고 있어.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해?
우리가 두 눈 뜨고 보는 벌건 대낮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 늘 저런 식이었다는 거지?
지금까지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정말 이상해 보여도,
설마 그래도 내가 모르는 잘난 구석 하나는 있겠지, 했었는데.
아니야.
지금 한자리하는 사람들 보니까 죄다 실력도, 인품도, 윤리도, 상식도 완전 꽝이야.
자리에 대한 책임감이 코딱지만큼도 없는,
인간적으로도 완전 폐급들이야.
이모부 정년퇴임식이 있었다.
축하 자리에 참석할 겸.
남쪽 지방 여행할 겸,
은이는 이모 댁으로 갔다.
방 하나 차지하고 혼자 또는 이모네 식구들과 함께 남쪽 동네를 돌아다녔다.
낙지, 민어, 소고기, 꼬막, 버섯과 봄나물들, 실컷 먹고요.
많이 웃고 마음 편하게 참 잘 지내고 왔답니다.
퇴임사에서 이모부께서는 삶의 고난과 시련에 대해서.
또 직업인으로서의 자세에 관해 말씀하셨다.
인생에서 고난과 시련은,
기쁨이나 무사함처럼 우리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그 원인은 평상시의 자잘한 균열이 한꺼번에 드러났다거나,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부족함 때문이라거나,
서로 간 생각과 입장의 다름-
같은 여러 이유 때문인데.
인생이 꽃길이기만을 바라지 말고- 불가능한 욕심이라 하심,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을 잘 지켜내도록 평소에 힘을 길러야 한다는 점.
고통 또한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니 괴로움에 매몰되지 말고,
삶의 지평을 넓히고,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말씀하셨다.
또 사회에 속한 시민으로서 개인 누구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부분이 있는데.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환경이 된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부인할 수 없다.
직장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업무를 맡지만
그 업무는 작게는 직장 내에서,
범위를 넓히면 이 사회, 이 나라, 전 세계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 공공의 측면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시면서.
업무가 갖는 의무와 책임을 올바로 인식해서,
최소한 자신이 맡은 업무를 사사로운 수익 도구로 왜곡하지는 말자, 고 강조하셨다.
아수라장이 된 인간 세상에 매몰되어 시간 가는 걸 잊었다.
어느새 봄이 한창인 걸.
'소생'
죽음에서 살아난 생명들은 밝은 햇살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모든 풀과 나무들이 그랬다.
비록 뿌리를 내린 곳은 싱그러운 숲이 아니라,
차들이 쌩쌩 달리는 소란스러운 도로 가생이.
아니면 떠밀려온 쓰레기가 걸려버린 개천 한구석이더라도.
찬란한 햇살 아래서 도시의 생명들은 부끄러운 인간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른 몸을 쑥쑥 키워냈다.
세상이 환해졌다.
내일은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 건을 판결하는 날.
축구를 보면 지고 마는 징크스가 있는 은이는,
집회에 가지도 않고 TV로 중계되는 재판도 보지 않기로 한다.
헌법재판소 부근에서,
내일 판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밤을 새우는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친구가 가는 길에 은이 집에 들른다.
점심을 많이 먹어서 배부르다는 친구를,
그래도 그냥 보낼 수 없는 은이는 간식을 준비했다.
갓 부친 김전을 먹으면서 넌 별 걸 다하는구나,
맛있어, 한다.
유튜브에서 스님이 하시는 걸 봤거든.
맛있어 보이더라고.
금세 먹어야지, 뒀다 먹으면 맛이 모호해져.
그리고 따끈한 고구마 부침개.
배부르다던 친구는 날름날름 다 집어 먹는다.
꺼억.
깔고 앉을 방석이랑 밤에 뒤집어쓸 담요까지,
친구 짐은 이미 한아름인데.
은이는 펄펄 끓인 옥수수차를 넣은 텀블러와 과일들.
그리고 오징어조림과 볶은 김치, 주먹밥이 든 도시락가방에,
식지 말라고 핫팩까지 넣어 친구에게 건넨다.
내일의 판결로 이 나라에서 불의가 사라지기를.
독재, 부패, 카르텔- 은 더 이상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제발 올바른 판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