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 우일신

시민 은이

by 기차는 달려가고

쪽파와 무말랭이로 김치를 담는다.

흙 묻은 쪽파를 손질하는 일이 상당히 번거롭지만,

뭐, 맛있으니까요.


원래 무말랭이는 할머니가 해주셨던 무말랭이 무침만 알았었다.

혼자 살면서는 무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먹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은이는 무 대신 저장성이 좋은 무말랭이를 샀다.

고춧가루로 양념한 무침을 종종 해 먹었지.

그러다 어, 대용량으로 사는 편이 훨씬 저렴하네, 하고 큰 봉지를 샀는데.

아이고, 그 분량이 보기보다 훨씬 많았음.


무침만 해서는 먹는 분량이 뻔하기 때문에 무가 들어가는 요리에 무 대신 무말랭이를 넣어보았다.

마른오징어 조림에 성공.

무말랭이의 오독오독한 식감이 쫄깃쫄깃 마른오징어와 잘 어울리거든요.

무말랭이는 간장 양념에도 맛있다.


그다음에 시도한 게 파김치.

쪽파 김치를 담을 때 어차피 양념은 같으니까, 하며 무말랭이를 많이 넣어봤다.

오오, 대성공

그래서 쪽파 대신 저렴하면서 살 때마다 분량이 많았던 대파를 넣어 무말랭이 김치를 담아봤지.

요것도 성공.

맛있습니다.

친구들한테 막 자랑했다.


은이는 요리에 이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 좋다.

할머니께서는 은이에게 각 식재료와 양념의 맛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일러주셨다.

그러면 머릿속에서 맛을 상상할 수 있거든.

아, 이 재료와 저 재료가 어울리면 어떤 맛이 나겠는데, 하면서.

그에 적절한 조리방식까지 떠올릴 수 있지.

수많은 요리를 어떻게 하나하나 다 배우겠니?

먼저 재료들의 맛과 속성을 파악해서,

끓이고, 굽고, 볶고, 삶고, 무치고, 튀기는 조리 방법과 연결하면 요리가 되는 거야.

얼마든지 먹어본 맛을 떠올리면서 응용할 수 있어.

그런 면에서 요리는 블록 맞추기 놀이와 닮았다는 생각을 은이는 해본다.

블록 조각의 각각 다른 요철과 색상, 모양을 손에 들고 그 완성된 형태를 떠올리면서 맞춰 가잖아.



믿지 못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불안했지만.

꽤 상식적인 판결문으로 탄핵이 인용됐다.

그나마 다행.

하지만 대통령 하나 내쫓은 걸로 끝이 아니지.

상상을 뛰어넘는 최악의 무뢰한들을 상대하는 일이고,

그 패거리는 행정부, 사법부, 국회, 권력층이든 실무진이든,

또 우리 각자의 마음속 어디에나 있다.

종교를 빙자한 사이비들과 부패한 정치세력은 끈끈한 인연이라.

매일매일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여전히 애 태우고 걱정으로 잠을 설치곤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선출됐고,

정부가 구성되었으며,

피의자들 몇몇은 구속됐다.

엉망진창이 된 나라를 하나, 둘, 힘겹지만 정상화하는 중이야.

갈 길은 멀지만 우린 지치지 않아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은이와 친구들은 그동안 관심 없던 40, 50대를 상당히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그 세대는 우리나라의 위태위태한 민주주의를 묵직하게 떠받들고 있는 중추였다.

집회 현장을 지킬 뿐만 아니라,

후원금도 잘 내고.

선결제로 집회 현장의 먹거리도 제공했으며.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담대하게 전진한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든든합니다.


정치인에 대한 시선도 훨씬 다정해졌다.

야심가들이 설쳐대는 정치판은 더럽고,

정치인은 위선적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는데.

그에 딱 부합하는 정치인들이 아직도 다수인 현실이지만.

꽤 많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대표라는 본질을 인식하여,

국민의 의견을 수용하고 따르려는 자세를 믿게 되었다.

아니다, 싶을 때는 국민을 설득하면서 말이다.

특히 부패세력으로부터 온갖 모략과 박해,

가족에 대한 핍박,

정치집단 내부의 시기와 질투,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법 살인과 칼부림 테러를 당하면서도 그 의지를 꺾지 않았으니.

신념을 지켜내 민주세력의 확실한 구심점이 되어주는 그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감사합니다.


왜!

민주세력 지도자들은, 정치인들은,

아직도 이리 모진 핍박을 당해야 하는가,

한탄이 절로 나오지만.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국민들의 염원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패배한 국민들은 머저리 독재자에게 총칼로 위협당하며 노예처럼 살았을지도 모른다.



매일 밥을 하고, 밥상을 차리고, 먹고 치운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개고,

매 순간 사각사각 쌓이는 먼지를 털어내지.

반복되는 집안일을 하면서 은이는,

진인사대천명의 담대한 자세로 살아가시면서.

또한 일신우일신을 실천하신 양가 조부모님들을 떠올린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신체에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고.

몸은 그 에너지로 신진대사를 하여 신체활동을 유지한다.

정신과 마음도,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고 신진대사를 중단하면,

멈추는 게 아니라 그대로 썩어버린다.


할아버지께서는 결국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는 힘은,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지도자가 비전을 제시하며 구체적인 방법을 실행할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통사람들이 지도자에게 힘을 줄 때 가능하다고.

보통사람들이 우매하고 진실을 보지 못하여 선동당할 때,

그 사회, 그 나라는 후퇴했고.

보통 사람들이 올바른 지도자를 키우고, 따르는 혜안을 가졌을 때,

진보해 온 사례가 있다.

그렇게, 그렇게 인류는 노예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왕과 귀족에서 벗어났으며.

독재 권력을 거부했다.


그러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일신우일신.

눈 뜨고, 정신 차려서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내면서

살아있는 내내 성장하고 확장할 것.


음, 이 결론이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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