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관한 단상들
예전에는 집집마다 식구가 많고 일인 당 먹는 양이 훨씬 많았다.
또 냉장고는 작은데 매끼마다 직접 음식을 만드니까 식재료가 많이 필요했지.
도시의 주부들은 매일매일 장바구니를 들고 동네 시장으로 장 보러 다녔답니다.
지금은 식구가 줄고,
매일 장을 보러 다닐 전업주부도 많지 않은 데다.
생활 방식이 바뀌어서 반드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지도 않는다.
따라서 장을 보는 행위는 줄어들고 그 방식과 내용도 계속 바뀌어간다.
아예 장을 보지 않는 집도 있단다.
나는 혼자 살아도 장보기를 좋아한다.
드러누워서 휴대폰으로 온갖 물품을 구경하다가
장바구니에 넣었다 지웠다, 하는 현대식 장보기부터.
터벅터벅 걸어 나가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장바구니에 하나하나 채워 넣는 전통적인 장보기도 즐겁고요.
코스트코에 가서 대용량 식재료를 낑낑 들고 오기도 하지.
재미있고 흥미 있어요.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대개들 식료품 비용을 가계부의 지출 영역으로 여기지만.
나는 장보기가 밥상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충실하게 밥상 차리는,
윤택한 식생활의 출발은 장을 잘 보는 거라고 믿는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대한 효과적인 식생활을 하려면
영리하게 식재료를 준비해야 하지.
계획표까지 짜지는 않더라도 밥상에 대한 대강의 구상을 머릿속에 갖고 있어야 장보기가 수월하다.
그러니까 아침에는 한 그릇 음식으로 차린다거나.
주말에는 7첩 반상을 차리겠어, 하는 포부가 있다거나.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요새는 클릭 몇 번으로 거의 모든 식재료 가격을 알 수 있으니까,
이렇게 수집하는 수치들에,
직접 장을 보면서 의식,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경험이 알게 모르게 각 식재료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주더라.
어떤 게 좋고 맛있는 지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절대적으로 경험이 필요한데.
가격과 식재료에 대한 지식은 넷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수치들이 도움 된다.
그런 점에서 주로 요리하는 당사자가 직접
밥 먹는 식구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장을 보는 편이 낫고.
식생활에 할당할 수 있는 금액을 가족에게 공개해서 밥을 먹는 구성원 모두가 식생활의 내용을 합의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가족이 함께 우리 집 생활비를 고민해서,
배달 음식을 줄이고 고기를 더 먹기로 결정하거나.
가공식품 대신 다소 번거롭더라도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한다거나.
과자와 아이스크림 대신 채소와 과일 비중을 높이자거나, 하는 식생활의 방향을 합의할 수 있겠지.
나는 못난이 농산물도 종종 주문한다.
사과, 오렌지 같은 과일.
당근, 파프리카, 양파 같은 채소를 한 상자씩 주문하는데.
경험 상 사과는 별로였다.
과일은 크기가 큰 편이 확실히 맛이 나아서 너무 작은 과일은
껍질 깎는 수고가 아깝더라.
제주도 구좌에 못난이 당근을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몽땅한 당근이 왔었다.
그런데 심도 없고 달큼하니 맛이 좋았다.
양파는 작은 것도 괜찮았다.
매운맛이 덜하고 한 번에 먹기 적당한 크기라서,
아침에 샐러드에 넣기 좋았다.
고구마는 못난이도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다.
대용량으로 사서 나눠먹기도 했다.
장보기도 정보력이다.
시간 날 때 재미 삼아 직접 시장과 마트를 구경하거나,
틈틈이 인터넷 쇼핑몰을 둘러보거나.
평소에 식재료나 그 가격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면
충동구매라도 좀 유익할 수가 있고.
앞뒤 따지지 않고 주문하려는 충동을 절제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