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니 귀족이니 하지만 - 그 내용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바로 전에 쓴 유럽 중세를 다룬 책과 함께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가 쓴 <영국사 산책>이라는 책도 읽었다.

- 찰스 디킨스 지음, 민청기, 김희주 옮김, 옥당 출판.


영국의 시작부터 찰스 디킨스가 살아간 빅토리아 여왕 시기까지,

2,000년에 이르는 시간에 영국 땅에서 일어난 권력의 행방을 서술했는데.

책을 읽다 보면 이 땅에서 살아간 우리 조상들은,

그 권력의 이동과 승계가 참으로 조신했도다, 하는 재평가를 하게 된다.

왕을 떠받들면서,

신분 질서 안에서 가진 것 없이 목숨을 이어가는 일생은 참으로 고달팠겠지만 말이다.



쉴 새 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유럽의 권력자 밑에서 전쟁 비용과 군사력은 온통 죄 없는 백성들이 떠맡을 뿐이라.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사고로 죽거나.

전쟁터에서 죽고,

윗분에게 맞아 죽고.

사지가 찢겨죽거나,

화형을 당하거나,

칼로 베이거나...

단두대는 오히려 온정이 넘친다 싶을 정도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사람들을 정말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잔혹하게 죽였다.

이유는 하나,

내 기분에 거슬리니까.



그나마 동아시아는 유교라는 이념의 틀 안에서 '덕', '군자의 도리', '인륜' 같은 윤리적 기준을 들먹이기라도 했는데.

유럽은 기독교를 내세우긴 했으나 기독교적 윤리는 일반 백성들에게만 적용되는 코뚜레여서.

권력자들은 그냥 자기 이익에 따라 맘껏 칼을 휘두르더라.

그러다 보니 삶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이 지금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었을 테고.

비참한 죽음이야 어차피 겪을 일,

이 '이생망'의 세계를 어서 끝내고 죽어서는 꼭 천국에 가자, 고.

죽음 이후에 매달리게 됐나 보았다.


왕과 귀족들은 어쩜 그리 야비하고 잔인하고.

지금 위세 부리는 귀족이라도 왕의 비위를 건드리면 모든 재산을 뺏기고 비참하게 죽었다.

그렇다고 왕의 자리는 공고했는가, 하면.

수시로 그 자리를 넘보는 세력이 있고,

삐끗하는 순간 왕의 모가지가 날아가는 위태로운 형편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들 또한 근심과 공포 속에서 불행하기는 마찬가지.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공주들이 가장 불쌍해 보였다.

지참금 또는 상속받은 재산이 있는 공주들은 협상을 주고받는 과정에 쓰이는 일회용 도구라서.

권력을 굳히느라고,

전쟁을 끝낼 때,

한 편임을 약속할 때.

아무나 와 짝지어주는 예비용이었다.

지참금이 필요해서,

상속재산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원래의 상대가 죽으면 다른 사람과 대신 결혼을 당하기도 했고.

일곱 살짜리 공주가 다른 나라의 중년 왕에게 시집보내진 사례도 있었다.

그 뒤의 인생은 뭐 추풍낙엽.

궁전 한 구석에서 장래 권력자가 될 자식을 낳거나,

버림받거나.


불쌍은 하지만 그 공주들도 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서.

권력을 위해 자기 자식을 이용하는 경우는 허다하고.

자식과 싸우거나, 죽이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참으로 잔인하게 살아갔던 유럽의 왕이고 귀족이더라.


그 무식하고 잔인하기가 윤 모씨 수백 명을 보는 듯,

두통이 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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