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또 한 해를 시작합니다.
한 해라는 단위는,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어느 정도 자연 현상에 맞춰 일정하게 구분 지어 놓았을 뿐이라,
노인 세대에 진입한 내게 별다른 감회는 없지만.
그래도 한 단위를 마치고 다음 단위를 시작하면서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 의미는 있지요.
새해를 맞아 서로 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주고받으니,
그건 좋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6년에 원하는 일 하나쯤은 시원하게 성취하셔서,
티끌 하나 없이 웃을 수 있기 바랍니다.
유럽 중세에 관한 책을 읽었다.
<중세 이야기>, 인인희 지음, 지식서재.
본격적인 역사책이 아니고,
몇 가지 주제를 일상적인 문장으로 풀어써서 어렵지 않게 읽을 만하다.
독자가 그 시대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 더 좋겠지.
중세 이전 유럽의 역사라 함은 지중해를 둘러싼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중세에 들어 비로소 북쪽. 동쪽 지역이 유럽이라는 문화권에 들어오게 된 거란다.
유럽의 중세시대는 학자에 따라 시대 구분에 차이가 있는데,
최소한 1,000 년을 넘는 시간이라서,
그 안에서 무수한 변화가 있었다.
그 시절의 왕이란,
"국민을 기반으로 한 국가의 왕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탄생이나 혼인을 통해) 물려받은 나라, 또는 점령한 영토의 왕을 가리켰다." (156쪽)
- 이 부분에서 많은 착각들이 있다.
영화나 소설 같은 문화적인 소재로 옛날 시점의 작업을 하는 쪽도,
그걸 수용하는 쪽에도,
단어는 같지만 뜻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예 달라진 대상을 자꾸 지금의 의미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왕도 그중 하나.
또는 국민이 주권자인 현대 국가에서,
대통령 같은 최고위직을 업무에 대한 책임과 의무 대신,
옛날 고리짝의 독재 권력자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 감옥에 처박혀있는 악다구니 커플을 비롯해서,
이미 감옥에 다녀온,
또는 쫓겨난 여러 대통령들이,
법으로 규정된 대통령 직에 이해는 전혀 없이.
대통령만 되면 뭐든 지맘대로 해도 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넣는 것으로 잘못 알았다.
역사 전공자가 아닌 지은이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라는 역사가의 책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고마워하는데.
그 역사가는 문화의 요소를 몇 가지 정리했다.
그중,
"정신적 교환 또는 교류의 장소들"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이는 "천재가 천재를 부르는 장소" (339쪽)였다.
19~20세기 초, 유럽 대도시 특히 파리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내가 느낀 점이 바로 이거다.
언젠가는 이 부분- 천재들이 모여드는 장소,를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고 싶다.
워낙 미루기 병 환자라 그 언젠가가 있을지 의문입니다만.
흠, 오래오래 살아야겠군.
새해 첫날을 기점으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울 니트를 많이 입었던 예전과 달리 그저 일상적인 외출만 할 뿐인 지금의 나는,
기모, 플리스, 발열~ 뭐 이런 소재로 만든 옷들을 겹겹이 입고 마지막에 패딩을 두른다.
어우,
걸으면 덥고요.
해가 비치는 버스에 타고 있으면 더워서 머리가 아픕디다.
테크놀로지의 수혜를 듬뿍 받고 있네요.
추운 겨울에 다들 따뜻하게 챙겨 입고 씩씩하게 지내면서 봄을 기다립시다,
위에 언급한 책에서 문단 하나를 소개하면.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오늘의 관점에서 과거 역사를 바라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 (그의 시대인 19세기) 우리는 "소유하고 돈을 벌어라"라고 하는 참혹하고 천박한 소명 위에 서있다. 중세는 달랐다. "오늘 우리의 삶은 비즈니스이지만 중세의 삶은 존재였다."
...
"한 시대의 위대성은..... 어떤 방향을 향한 것이든 헌신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비율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중세는 사정이 그리 나쁘지 않다! 헌신! 보상에 대한 확고한 보장이 아니다! 위대성은 무엇으로 시작되나? 한 가지 일에 대한 헌신으로.... 개인적인 허영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위대성은 정신의 탁월함에 달려 있지 않다. 그런 탁월함은 나쁜 성격과도 결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성은 특별한 정신이 특별한 의지와 결합되어 나타난다."
(82쪽)
쉽지는 않지만.
올해에 우리의 삶을 온통 비즈니스인 지금에서 존재 자체인 쪽으로,
조금이라도 이동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