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짊어진 무게

by 기차는 달려가고

큰 무당 김금화 선생님의 인터뷰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우리 어머니 건강이 상당히 악화되었을 때인데,

우리 어머니와 동갑인 선생님은 그 전 해에도 직접 큰 굿을 하셨단다.

(와, 대단하시다.)


그런데 그 몇 달 새 기력이 많이 떨어지고

입맛이 없어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다고.

인터뷰를 같이 보던 어머니는 이를 어째, 하셨다.

그러고 몇 달 지나 선생님은 돌아가셨다.

우리 어머니는 나도 아직 버티는데, 참.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몇 년 전에 남대문시장 근처에서 보았던 장면이.

지하보도 바닥에 앉아

'사주 5,000 원'이라 쓴 종이 한 장 벽에 붙이고,

책자 한 권으로 사주를 보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내가 지나면서 보니 어느 할머니가 쪼그리고 뒷모습을 보이며 앉아있는데,

그 '사주쟁이' 할아버지는 쩌렁쩌렁한 목청으로 종이에 글을 쓰면서 사주를 풀어내고 있었다.

'맞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저 할아버지는 참 성의 있어 보인다.' 고 생각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또 그 앞을 지나는데

이번에는 어느 아주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의 목청은 더 높고 몸짓도 크다.

아주머니가 무어라 말을 하니까 그 할아버지는 '지금은 앞이 캄캄하지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풀리는 날이 와. 고비는 넘겨야 해.'

뭐 그런 뜻의 이야기가 길을 걸어가는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내가 본 인터뷰에서 김금화 만신은 '무당은 세상 사람들의 아픔을 대신 짊어지는 사람'이라는 뜻의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종종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때로는 암담한 동굴에 갇혀 나갈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시련에 맞닥뜨리곤 하지.


꽉 막힌 이 속을 어디에 하소연이라도 했으면.

언제까지 이 고통을 겪어야 하나, 답답한 심정으로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또 누가 나 대신 내 갈 길을 골라 줬으면, 바랄 수도 있지.

인생이 그저 열심히, 늘 묵묵히 살아만 간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지루한 듯, 그날이 그날 같은 듯, 평범한 인생에도 매일매일 끊임없이 파도는 출렁이는 것이다.



한때 무속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강의도 듣고 관련 서적도 읽고 직접 굿판을 구경하면서 생각한 것은.

무당은 세상 사람들이 구비구비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겹고, 원망스럽고, 슬프고, 괴로운.

그 아픈 마음을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자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무당이라면 말이지.


그렇다고 무조건 '나 불쌍, 너 나쁨' 하면서 의뢰인의 편만 드는 건 아니었다.

굿에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노하게 한 귀신들에게,

저의 잘못을 용서해달라는 부분이 있다.

기성 종교에도 '나의 죄를 사하시고...' 하지 않나?

나의 언행을 돌아보라는 성찰을 완곡하게 주문한다.


그렇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고 난 뒤에.

무당은 이 사람이 잘 되게 해달라고 (전문인으로서)

복을 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굿은 기본적으로 그런 구조이고,

무당은 이 과정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세계적으로 불안과 변화의 폭이 커지고 있다.

종교에 기대는 사람도 있겠고.

점성술, 타로, 사주, 신점 등등 온갖 방법을 다 떠올리며 나의 괴로움을 풀어줄 또는 성공적인 미래를 장담해줄 초인을 찾아다닐지도 모른다.


내 마음 좀 편해지고 싶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 이상은 기대할 바가 없...)

다만 돈을 받고 이런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달랑 분식점 국수 한 그릇 값에,

온 힘을 다해 의뢰인의 힘든 마음에 공감하고.

같이 사주 책을 보면서 살아날 방도를 찾아보자고

열과 성을 다 하던.

지하보도의 그 할아버지만큼 직업의식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비록 "하나도 안 맞았어!"

나중에 투덜거리더라도 마음속 응어리를 쏟아낸 그 순간만큼은 후련했을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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