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릴 때 아버지는 작은 동네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춰 입으셨다.
아내와 자식들은 비싸고 좋은 옷을 입는데.
아버지도 좋은 옷 입으시라고 우리가 아우성을 치면,
"너네들은 명동에서 해 입어. 나는 동네 옷이 편해."
라고 대답하시곤 했다.
(우리 성장기는 명동의 전성시대였다.)
나이가 들고 고생도 해본 뒤에 알았다.
아버지는 작게 꾸려가는 동네 가게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그 고단함을 이해하여 작은 손길이라도 내밀고 싶으셨던 거다.
고급만 좋아하던 나도 이제는 길에 물건 몇 가지 늘어놓은 할머니,
동네 어귀 정차된 트럭에 실린 물건을 유심히 본다.
마침 필요한 게 보이면, 과일이라든지 땅콩이든지, 고르지 않고 그냥 산다.
기껏해야 5천 원, 만 원 안쪽이지만.
기대를 갖고 길에 나왔을 그분들께 내 방식으로 작은 응원을 보내는 거다.
연민이나 동정은 절대 아니다.
벼랑에서 줄타기하는 생활인의 동병상련이랄까.
우리 같이 힘냅시다!
하는, 얼마간의 금전과 물건을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를 보내는 것이다.
오늘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광화문을 지나고 있었다.
시청 방향으로 서울시 순환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는데.
몸의 앞뒤로 '예수 찬미', 조악한 갑옷을 두른 여자분이 확성기를 들고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내용은 몸에 두른 표어와 달리
망해가는 국가를 구하자, 한미동맹만이 살 길이다, 다 같이 애국하자! 뭐 그런 내용.
간간이 애국하지 않는(???) 사람들을 매섭게 꾸짖으면서.
우연인지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면서 귀청을 찢을 듯이 괴성-확성기에 대고 말이지-을 질러대는데.
일민미술관부터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프레스센터 앞 버스정류장에 닿을 때까지 짧지 않은 시간.
예수를 사랑하자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흠.
남산 타워 부근까지 올라가는 순환버스를 탔다.
아, 이번에는 내 앞쪽으로 앉은 여자분이 혼자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분 마음으로는 혼자 1:100 쯤의 혈투를 벌이는가 보았다.
우산으로 버스를 때리면서 있는 대로 악을 써댔다.
손님이 말려도, 기사분이 버스를 세우고 와서 말을 해도 안하무인.
버스가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30분 이상.
나를 무시하네, 내 말을 안 듣네, 나한테 왜 그래, 뭐 그런 내용으로 줄곧 목청을 찢었다.
내리면서 보니까 다시 순환버스를 타러 가던데.
어쩌면 일반버스에서는 그렇게 악을 질러댈 수 없으니,
일부러 순환버스만 골라 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세상을 옳다, 그르다, 의 관점에서 판단했다.
나에 대한 판단은 싹 보류하고 말이지.
(나는 아직 어리고 나중에 훌륭한 인격을 갖출 테니까 지금은 이래도 된다고 자신했을까?)
이제는 그런 사람을 보면 먼저 안쓰럽다.
내가 그런 행동을, 그런 사람을 품을 만큼 너그러움은 전혀 갖추지 못해, 거리를 두고 피하면서 내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지만.
예전처럼 경멸하거나 눈에 안 보이면 좋겠다, 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저렇게 망가지기까지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며.
또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염려될 뿐이다.
남산 숲길을 걸으면서 잠깐 그들을 생각했는데.
답답할 뿐, 방법은 보이지 않더라.
그런데 혼자 무섭게 고함을 치면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기분이다.
내가 몇 년 만에 거리에 나와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