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가 보다, 하다가도.
문득문득 이 상황이 실감 나지 않는다.
저쪽 강 건너, 내게 닿지 않는 비현실의 풍경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거리의 사람들은 얼굴을 반씩 가리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경제 활동까지 멈췄단다.
몇 달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세상이 지금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뭔가 대단한 변화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익숙했던 세계는 이제 그만인가요?
환자가 되어 병원에 다닌다.
한 칸마다 비워둔 '거리두기' 자리에 앉아 순서를 기다린다.
숨 쉬고 감각하는 나 자신과,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
언제나 그렇듯이 두 개의 내가 대기석에 앉아 멍하니 순서를 기다린다.
습관처럼,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관찰의 시선을 보낸다.
방관하듯, 거리를 두고,
세상 풍경 중 하나로 말이다.
진짜 노인이 되면 대형병원에 오지 않는다.
혼자 거동할 수 없는 신체가 되면 거의 요양병원에 누워계시는 것 같다.
누가 일일이 모시고 다닐 수는 없으니.
그래서 혼자 또는 배우자와 스스로 대형병원을 오가는 연령대는 대체로 칠십 대까지 정도로 보인다.
대형 병원이 어지간히 커야 말이지.
차에서 내려 진료실까지 찾아오는 것도 일인데,
건물 외부에서 먼저 코로나 19 시대의 절차를 밟고.
접수, 검사, 진료, 예약, 계산, 처방전, 약 구입.
병원에서는 간편하고 정확한 절차를 위해 늘 방법을 찾고, 적용하지만.
노인들에게는 쉽지 않다.
노인 한 분이 버럭 화를 내면서 진료실로 돌진해 기어이 간호사를 울리고 말았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스스로 위축되어 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더 조심하는 빛이 역력하지만.
듣고, 이해하고, 말하는 기능이 떨어진 뇌는 오해를 키우고.
거기에 살아오면서 쌓인 피해의식까지 더해지면,
아무 때나 폭발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같은 날, 다른 시간.
병원 여기저기에서 온종일을 보내야 했던 나는 나이 많지 않은 사람이 짧지 않은 시간을
휴대폰에 대고 분노에 욕설까지 더한 고함질을 쳐대는 불쾌함을 견뎌야 했다.
진상은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짧은 시간에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겪어왔다.
그 변화에 모두 성공적으로 적응해온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노인들은 19세기나 다름없던 세계에서 태어나,
눈이 돌아가게 빨리빨리 변하는 세상을 살아내야 했던 세대이다.
먹고 사느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거나,
세상을 객관적으로 관망하는 기회를 갖기 힘들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존재를 아름답게 다듬지 못하고.
살아오면서 쌓인 독을 고스란히 품은 채.
어느 순간,
세상 따라가기를 멈추고 자기라는 웅덩이에 빠져 버렸겠지.
그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다.
하여간 지금, 여기가 아닌 어떤 몽롱한 세상을 헤매는 건 맞는 것 같다.
코로나 19 상황을 지나면서 이전과 달라질 세상에 또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기를 포기할 것이다.
자신에게 익숙했던 시대에 머물면서 앞으로의 시간을 현실인 듯, 비현실인 듯,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겠지.
지금 노인들이 스마트폰을 쓰면서 정신은 1970년 대쯤에 고여있듯이,
2000년쯤의 정신으로 2030년을 살아갈지 모르겠다.
병원을 나와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은 자기 세계라는 껍데기를 등에 지고 다니는 달팽이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풍파 헤쳐오느라 부서지고 일그러진 껍데기를 등에 업고,
죽음이 존재를 거두어갈 때까지 어디론가를 향해 고단하게 움직여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