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른 이의 글을 읽다가 기억 아래, 저 구석 깊이 파묻혀 있던 어느 날이 수면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동네 산책을 하고, 뭐든 다 있다는 그 가게에 가끔 들르던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가 큰 병을 앓기 바로 전으로 겉보기에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노인이었지만,
그때 이미 어머니의 몸은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였다.
혼자 집에서 나만 기다리실 어머니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 나도 되도록 집에 있었다.
(나갈 일도 없었... ㅋ)
종일 어머니랑 붙어 있다가 혼자 나와서 동네 한 바퀴 도는 나만의 시간.
그 해 여름날, 더위가 좀 가신 저녁에 식사를 마치고 혼자 슬렁슬렁 동네 한 바퀴 돌았더랬다.
동네 가까이 그 가게는 매장이 커서 물건이 다양했는데,
입문생인 내게는 신기해 보이는 것 투성이었다.
이 코너 저 코너, 탐구심이 한껏 치솟아 모든 물건을 파악하겠다는 듯, 진열대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아까부터 저쪽에서 꼬마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 이 장난감 제발 사주세요.
잘 갖고 놀게요.
묵묵부답.
곧 다른 위치에서 꼬마의 목소리.
할머니 저 이거 버리지 않을 거예요.
매일매일 잘 가지고 놀게요.
안 돼요.
여지조차 주지 않는 할머니의 짧은 대답.
다시 다른 위치에서 또 꼬맹이는 말한다.
엄마, 말 잘 들을게요.
밥도 잘 먹고 어지르지도 않을게요.
이거 꼭 사주세요.
이런 핑퐁 게임이 무한반복.
천 원짜리 살림 고르는데 정신이 팔린 젊은 어머니와 할머니는 무반응인데
아이는 지치지도 않고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를 오가며 자기가 사고 싶은 장난감을 호소했다.
진열장 위치를 옮기면서 쓰윽 보았더니,
아이 키는 서너 살이나 될까, 체격은 작았는데
얼굴 표정이나 쓰는 어휘를 볼 때 그보다는 더 자란 아이 같았다.
우리 어릴 때, 그러니까 큰 얼굴에, 짧은 다리.
1960년 대 스타일로 생긴 그 꼬마는.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아이는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계속 거절 또는 묵살되고 있음에도 전혀 지치거나 짜증 내지 않았다.
거절당했다고 화를 내거나 비굴해지지도 않았다.
한결같은 목소리 톤으로 일관되게 성의 있고 진지한 자세로 자신의 요구를 성심껏 호소하면서,
자신이 그 대가로 무엇을 할 것인지 협상카드까지 내미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할머니 모두 탈북 또는 조선족 억양이었는데,
아마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고 막 필요한 살림을 장만하느라 쉽게 돈 쓸 형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아이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했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거추장스러워하거나 아이를 냉랭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장난감을 꼭 사주고 싶었다.
짧은 시간에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에 솟아올랐다.
대개 나는 엄청나게 단순, 명료, 심플, 그 자체의 두뇌와 마음 구조로
행동 역시 단세포 동물처럼 일차원적이지만.
가끔 아주 가~끔,
이상한 데서 복잡하고 복합적인 사고로 심신이 꼬여버리곤 한다.
내가 보이려는 행동이 이 어린이에게 지금 또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부모에게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온갖 좋고 나쁜 가능성이 머릿속에서 뒤엉키면서 뇌가 하얗게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냥 이 자리를 피해버리면 두고두고 불편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나는 수많은 좋고 나쁠 경우의 수와 가능성과 망설임, 번민에 지쳐서.
아이 어머니에게 비실비실 다가가,
아이가 말하는 게 정말 예뻐요.
내가 장난감 하나 사주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물었다.
순간 예기치 못한 상황에 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모녀는,
비시시 웃으면서 멋쩍어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장난감 코너로 가서 갖고 싶은 거 골라.
네가 참 예쁘게 말해서 아줌마가 선물하고 싶거든,
나는 기쁘게 얘기했고.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흥분하더니 신나서 장난감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제일 비싼 3,000원짜리 비행기를 집고는
"이거 가져도 돼요?"
불안한 표정으로 내게 묻고.
그럼.
값을 치르고 아이 손에 비행기가 쥐어지자
감사합니다!
매장이 떠나가도록 쩡쩡거리는 인사와 정중한 배꼽 인사로 내게 감사의 마음을 드러냈다.
설득은 그래야 했다.
왜 원하는지, 자신의 이유가 타당한지 먼저 스스로에게 묻고 그래서 확신이 선다면.
꾸준하게, 지치지 말고, 성심을 다해 호소해야 한다.
거절되었다고 화를 내거나 자존심이 상했다고 상처 받을 일이 아니다.
서로의 상황이나 입장이 어긋났을 뿐.
자신의 요구가 타당하고 설득력 있다면,
어디서 응답이 올 지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그 밤.
어머니와 그 아이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나의 선의가 그 아이나 부모에게 딱 그만큼만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오늘과 같이 설득력 있는 상남자이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