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최고라고들 한다.
돈의 중요성이야 뭐.
현대사회에서 돈은 곧 목숨줄이다.
종종 인간의 존엄성이 되기도 하고.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울고 웃는 데는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에 우선 좌우되고.
또 사람 사이의 관계가 큰 역할을 하더라.
돈 때문으로 보이는 고통의 이면을 살펴보면 돈보다는 사람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돈이 필요한 곳에는 모자라고, 누구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아 문제이지.
세상에 돈이 없는 건 아니다.
진부하지만,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희로애락 애오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다.
일일이 따지다 보면
어쩔 수 없다, 타고나길 그렇다, 운명이다...
라는 무력감에 빠져버린다.
그래도 우리가 어찌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내가 먼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상대를, 우리가 놓인 상황을 더 이해하고 더 조심한다면 갈등과 충돌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와 희망을 갖고 계속 생각해본다.
손녀가 이뻐 죽겠는 할머니가 손녀에게 말을 건다.
안 그래도 선량하기만 할 뿐, 말주변 없는 할머니는 사춘기 손녀와 오손도손 나눌 수 있는 얘깃거리가 없다.
밥 먹었니, 뭐 먹었어, 에구 자꾸 그런 인스턴트 음식만 먹고 어쩌려고!
본의 아니게 꾸짖는 말이 되어버렸다.
시험이라며 공부는 했나, 성적 못 받으면 어쩌려고, 좋은 대학 안 갈 거가!
아이 짜증을 폭발시켰다.
아이 엄마까지 벌컥 언성을 높인다.
엄마 왜 자꾸 애를 건드려?
딸네 집에 싸우러 오셨어?
딸, 사위, 손녀 좋아하는 음식 바리바리 싸들고 지하철 타고 힘들게 딸네 집을 찾은 어머니는 가슴에서 철철 피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못난 자신도 서럽고,
힘을 다해 키운 자식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는 더 서럽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 자랄 때 잔소리를 별로 안 하셨다.
힘껏 뒷바라지만 하셨다.
뒤늦게라도 그 마음을 알아주는 자식도 있고 여전히 모르는 자식도 있다.
당연히 자식들의 결혼으로 인해 가족의 범위에 들게 된 사람들에게 안 좋은 말은 일절 하지 않으셨다.
손주들에게도 좋은 말씀만 하셨다.
그림 전체를 볼 수 있는 관계가 있다,
그림의 한 부분만 보게 되는 관계가 있다.
오랫동안 함께, 충돌과 갈등과 이해와 사랑과 정과 혈연과 필요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생존 단위로 오래 살아온 내 가족들은.
그 시간과 과정에서 서로의 됨됨이에 대한 오해와 이해, 용납과 포기의 각 단계를 거치고.
또 과거라는 맥락을 알기 때문에
한 문장, 한 단어만으로 언행을 해석하지 않는다.
그림 전체를 보면서 말과 행동이라는 표현보다 더 크고 깊은 이면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유대관계를 아직 이루지 못했으나 가족이 되어 부모 자식 행세를 해야 하는 시부모, 처부모, 사위, 며느리, 손주들은 그림의 한 부분만,
그것도 자기라는 거울에 비춰서 자기 맘대로 해석해버리기 쉽다.
참으로 고맙고 깊은 인연이지만,
사실은 참 어색하고 인위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조심스럽다.
어떤 좋은 말을 해도 상대의 심리가 왜곡돼 있으면 말의 선의는 삐뚤어진다.
또 같은 말도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서로의 맥락을 이해하여 그림 전체를 볼 수 있게 되기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평생 가야 이해보다는 조심스러운 상대로 끝날 가능성이 많지만 말이죠.
사회에 대해서도 그림 전체를 보아야 한다.
과거와 현재, 각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라는 맥락에서 그중 한 부분인 사안을 이해해야 하는데.
딱 자기에게 유리한 한 부분만 찍어서 제편한대로 해석해버리니,
중구난방, 어이상실, 적반하장의 소란스러운 목청이 하늘을 덮을 지경이다.
츠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