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동네

팬데믹 시대의 서울

by 기차는 달려가고

중학교 진학을 위해 상경한 아버지는 결혼하기 전까지 15년 정도 북촌에 있는 친지 댁에서 사셨다.

어머니의 회상 속에는 아버지와 함께 거닐었던 장충단공원과 삼청공원이 등장한다.


비단 저고리에 짧은 한복 치마, 하이힐을 신고는.

남녀 칠 세 부동석 시대라 먼 일가 아이를 데리고 청춘들은 만났다.

거리를 지나 공원을 걷고 살짝살짝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는 것으로 데이트를 했단다.

그때 아버지는 시나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나오는 글귀를 들려주시기도 하고,

독일 가곡을 우물우물 부르기도 하셨다고.


어, 의대생이 그런 것도 알아? 했더니.

그때는 고등학교쯤 다니면 지성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서 문학과 역사는 기본 교양이었어, 하셨다.

인문학에 대한 존경심을 가졌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보았다.



나도 그 동네 고등학교를 다녔다.

엄격하고 꽉 막힌 학교는 박정희 시대에 훈장을 받은 교장 선생님다운, 위압적이고 숨 막히는 분위기여서.

나는 학교가 지극히 못마땅했지만.

고풍스러운 동네와 가까이 궁궐이 있고 길을 지나다 보면 큰 나무들이 있어, 그건 맘에 들었다.


서울 주택 규모로 볼 때 엄청나게 큰 저택들과 반면에 아주 작은 집들이 함께 있고.

중간 규모 한옥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도 있었다.

골목은 많고 길었다.

그 끝에는 산이 있다고 했는데,

번화가 쪽으로만 시선이 쏠려있던 여고생은 산 쪽으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오랜만에 그 동네에 갔다.

동네 지형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외형은 꽤 달라져 있었다.

계동의 좁고 긴 골목길에는 빼곡하게 작은 가게들이 이어져 있었다.

원래 작은 한옥집들, 사이사이 중간 규모의 한옥집과 양옥집이 섞인 좁고 긴 골목이었는데,

내가 안 본 몇 년 사이 남아있던 담벼락마저 모두 걷어내고 가게를 열었던가 보았다.


창덕궁에서부터 원서동, 계동, 안국동, 가회동, 삼청동, 팔판동으로 이어지는 동네는 한동안 국내외 젊은 구경객들로 들썩였는데.

코로나 19로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빈 가게, 손님 잃은 디저트 찻집들, 한복 대여 가게의 빛바랜 한복들, 썰렁한 골목길이 남았다.



여름의 삼청공원은 수풀이 무성하고,

서울에 아직 비가 내리기 전이어서 계곡은 말라있었다.

가회동 저택들 넓은 길에는 사람은 물론 자동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희미하게 낡아가는 커다란 집들의,

담벼락 위로 보이는 닫힌 유리창들이 물끄러미 동네를 지키고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고관대작들의 주거지였고.

아버지가 성장하던 일제강점기에는 성공한 조선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으며.

이후에도 한 줌의 오래된 부자들이 높은 담장 안에서.

또는 옛 방식을 지키는 서울 사람들이 불편한 주택 사정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동네였다.

지난 일이 십 년 구경거리가 되어 젊은이들이 모이고 먹고 파는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더니.



적막한 동네를 혼자 걸어 다니려니 다른 시대로 옮겨간 듯,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또 하나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구나,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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