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볕이 뜨겁다.
북적북적 마스크 낀 사람들이 바삐 오간다.
부지런한 정원사들은 꽃과 나무를 돌본다.
청소를 한다.
옹색한 길에 산만하게 놓인 크고 작은 시멘트 화분들은,
넘칠 만큼 초록이 무성하다.
제각각의 빛깔과 모양, 크기로 활짝 활짝 꽃들이 피었다.
화분에 붙은 이름표를 들여다본다.
'장미꽃'이 이렇게나 종류가 많다니.
미안해, 장미야.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6월이다.
수국은 짙은 이파리들에 보랏빛 꽃들이 풍성하고,
꽃대를 곧추세운 하늘하늘한 접시꽃은 위로, 위로 뻗어간다.
잔잔한 잎들은 수면에 붙어 있는데 꽃대는 쑤욱 올라와 수련은 조그마한 꽃들을 수줍게 피워냈다.
수면 위로 커다란 잎들이 무성한 연꽃은 복스러운 하얀 꽃송이들을 피워냈는데,
꼭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다.
그저 푸른 것으로 뭉뚱그렸던 풀들은,
빛깔도, 모양도, 자라나는 모습도 자신만의 고유함이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은,
자연을 그리워하지만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자연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 산야의 생명체들을 낱낱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서울역과 주변은 늘 복잡하다.
개발의 시대, 1970년.
서울 도로에 자동차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
공중으로 달리는 자동차 전용 고가도로를 만들었었다.
이쪽저쪽 차를 달리게 해야 했으니까.
결국에는 그 고가도로마저 자동차들이 옴짝달싹 못하게 차들이 꽉 메웠지만 말이다.
그 자동차 전용 고가도로는 2017년에
'서울로 7017'이라는 보행자 전용도로가 되었다.
길에는 크고 작은 둥근 시멘트 화분들이 놓이고,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자란다.
사람들은 느릿느릿, 둘레둘레.
꽃을 보다가, 앉기도 하다가,
길에 놓인 피아노를 치고, 사진을 찍는다.
건물과 자동차로 빼곡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자동차에, 신호등에 신경 쓰지 않고 느긋하게 걸을 수 있다니.
자연스럽지도 않고 아름답다고 할 만한 길은 아니다.
한적하거나 사색을 할 수 있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고맙다.
서울 한복판에 1km 가까운 거리를 이렇게 찬찬히 꽃을 들여다보며 걷는 길이라니.
쉬땅나무며 꼬리조팝나무며.
이 길이 아니라면 내가 어찌 알았을까?
대신 꽃과 나무, 풀들에게는 미안하다.
좁은 시멘트 화분에 갇혀서,
종일 차 소리와 매연과 번잡한 발길에 시달린다.
몹시 죄송하다.
서울 한가운데,
광장만큼이나 넓은 대로 위에, 길이 떠있다.
아래로는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과 기차역과 여러 줄의 철로가 지나간다.
건물들 사이로 저쪽에 남대문이 작게 보인다.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가 그나마 누릴 수 있는 낭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