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어느 도시에 며칠 머물렀던 적이 있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 모퉁이에 작은 가게가 있었다.
찹쌀도넛이랑 어묵, 로또를 팔았던가.
각지고 좁은 면적의 볼품없는 가게였다.
첫날 숙소 부근을 돌아보던 나는 외부로 열려있는 도넛 매대에서,
기름에 막 튀겨내던 찹쌀도넛을 몇 개 샀다.
40대쯤으로 보이던 피로한 기색의 여주인은 봉지를 건네주며,
"맛있게 드세요"
수줍게 웃으면서 잔돈을 거슬러 주었다.
그런데 그 손길이나 말씨가 어찌나 정성스럽고 순해 보이던지,
나는 얼마 안 되는 물건을 팔면서 보여주는 고운 자세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그 여주인을 떠올리면서,
그 나이까지 그렇게 순하고 고운 언행으로 살았으면 고생은 면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에는 좀 늦게 숙소로 돌아가면서 일부러 가게에 들러 남아있던 도넛을 몇 개 샀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여주인은 수줍게 웃으며 고맙다고, 맛있게 드시라고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고,
나는 잘 쉬시라며 웃었다.
성실하다, 진실해 보인다, 를 넘어 정성껏 산다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없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언행이었고,
몸에 배어있지 않은 사람이 그런 태도를 일부러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이 도넛 몇 개를 두고 내게 보여준 정성스러운 모습은 내게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마술을 부렸다.
다음 날 그곳을 떠나면서 나는 가게 여주인에게 따듯한 말이라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머릿속으로는 여러 말이 오갔지만 딱히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나는 누가 타인의 인생을 구제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몫을 짊어지고 한 발 한 발, 힘들여 걸어가는 인생.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는 따듯한 말 한마디,
안타까워하는 눈빛을 나누면서.
작은 응원이나 할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나의 진정한 마음이 상대에게 전해져서 그래 살 만한 세상이군,
오늘도 잘해보자- 정도의 격려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 정도가 내가 다른 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은데.
한편으로는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한테 위로라니, 건방지군.
하는 냉소적인 기분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이미 좋은 기분을 전해 받았으니,
따듯한 말 몇 마디 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시건방진 건 아니겠지, 싶어서.
잘 지내시라고, 도넛 맛있게 먹고 간다고 인사나 하려고 가게에 들렀다.
도넛 매대 앞에는 4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멍한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안을 들여다 보아도 여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도넛 몇 개를 봉투에 담아 내게 건네주기까지.
그리고 돈을 받으면서.
남자는 서투르고 허둥거렸으며 시선은 초점을 잃고 허공에 흩어졌다.
나는 준비했던 마음은 꺼내보지 못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좀 당황하며 가게를 떠났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가게 여주인과 아마 남편이 아니었을까, 싶던
넋이 나가 보이던 남자에 관해 생각했다.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책으로 읽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잠깐이지만 그 남자도 나쁜 인상은 아니었다.
거칠다거나 되는대로 살아가는, 그런 불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되는대로 걸친 차림새에 넋이 나간 표정이었지.
그들이 부부라면.
늪에 빠져서는 목까지 물이 찼는데 살아보겠다는 허우적거림조차 않는 남편과,
참을성과 책임감으로 그 남편을 견디어내는 아내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하긴 여주인도 당차다거나 기운차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묵묵히 현재를 견디는 순종적인 자세랄까.
자신의 처지에 화를 내거나 원망을 하는,
분노나 증오의 에너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아보겠다는 활기찬 의욕이나 투지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던져진 처지를 온순하게 받아들이며 좁은 테두리 안에서만 열심이던.
바닥에서 들어 올려질 어느 날을 기다리며 그저 현실을 참고 견디는 모습으로 내게는 보였었다.
아아, 모르겠다.
언뜻 짧게 스쳤을 뿐인 한 여자에 대해 나는 너무나 많은 상상을 하는구나.
그래도 짧은 순간, 여주인의 어떤 간절함이 내게 전해졌던 것 같다.
구원의 그날이 오기까지 그 여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간절하게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시끌시끌한 거친 투쟁만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니.
조용조용히,
자신의 틀을 지켜내면서.
생명의 기운이 일시에 빠져나간 남편 곁을 지키면서.
자신이 마주치는 모든 이에게,
매 순간 정성을 다하는 자신의 방식으로 희망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떠오른 한 여인에 대해 아무런 사정도 모른 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는 걸 보니
요새 내 마음에 울적함이 있는가 보다.
필요한 건 에너지와 투지일 텐데,
나에게는 없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