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가게 여주인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성당에 들러 기도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식당에서 점심인지 저녁인지 어중간한 밥을 먹은 뒤 친척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날이 더워져서 마스크를 한 얼굴에는 땀이 흘렀다.

요 며칠 계속 새벽에 잠을 깼고 한참을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보내다 아침에야 잠이 들었다.

한낮이 되어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잠을 깨,

약으로 인한 몽롱한 정신으로 병원에 갔다.


병원이 그렇지 않나, 울적함이 고여있는 곳.

죽음을 거론할 병은 아니지만 한동안 병원에는 다녀야 한다.

그냥 이렇게 먹고 자고 병들고 걱정하는,

이 한 몸의 안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 한채 나는 늙어가는 것일까.

바닥으로 내려앉는 우울감을 막을 수가 없었다.

성당을 올라갈 때는 몹시 견디기 힘든 기분이 되었다.



식당에 켜 둔 TV에서는 수도권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 19 상황을 보도했다.

새벽 인터넷에는 전염병으로 일자리를 잃은, 수입이 끊긴, 취업이 막막한 처지들이 줄줄이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바로 며칠 전까지 '나라에서 주신' 재난지원금으로 'flex 해버렸다'는 연이은 인증 글들로 명랑했던 커뮤니티였다.

크게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숨이 막혀 버둥버둥 죽어가던,

먼 나라 사람이 자꾸 떠올라 고개를 흔들었다.



성당에서 내려와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장사가 잘 되는 가게가 있다.

찜통에 찌는 만두와 기름에 튀기는 도넛, 꽈배기 류의 간식을 파는 그 가게는.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다 보면,

늘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는 부부가 계속 반죽을 하거나 튀김기에서 남편이 도넛을 튀기고,

길에 면해 있는 찜통들에서는 펄펄 김이 올랐다.

나도 만두를 산 적이 있는데 하루 종일 고생해서 이 값을 받아 뭐가 남을까, 싶은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날, 길 건너에서 신호 바뀌기를 기다리자니 가게 앞에 한 손님이 섰다.

안에 있던 여주인이 나왔고 찜기에 빚은 만두를 담아 펄펄 김이 오르는 찜통에 얹었다.

만두가 쪄지는 동안 손님은 돈을 지불하고,

여주인은 포장을 준비했다.



그 뒤에 이차선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길을 건너고,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이다.

도넛 매대 쪽에 두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중년의 아저씨와 아직은 젊은 남자 두 사람이었는데,

중년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도넛원어치를 사주려 했다.


젊은 남자는 강하게 사양하다가,

정 그러시다면 조금만 사주세요,

절충안을 제시했다가.

완강한 중년 남자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감사합니다, 부모님이랑 잘 먹을게요."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동안 찜기에서 만두를 꺼내 손님에게 건네고 도넛 매대 앞으로 이동했던 여주인은 조용히 두 사람의 실랑이를 기다리다가.

손님이 주문한 만 원어치에 더해 덤을 끼운 도넛 봉지를 젊은 남자에게 건넸고.

중년 남자는 다소 들뜬 커다란 목소리로

"아이고, 사장님, 인심 쓰시는 겁니까"

껄껄 웃으며 연거푸 고맙다고 인사했다.

두 남자와 여주인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가게를 지나갔다.



중년 남자는 흔히 그렇듯이 생활에 소진된 지친 모습이었다.

그저 소모만 할 뿐 자신을 위한 좋은 무엇을 해주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해 보이는.

허름하지는 않지만 윤기라고는 없이 초라해 보였던.


기다림은 지루하다.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려 버둥거리지만 기다리는 '그날'은 오지 않는다.

중년쯤이라면 꿈도, 기다림도 자신의 몫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나이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급격하게 늙어버려서는

배반받지 않을 미래는 기다리지 않겠다고 화를 삭이겠지.



우리가 현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순수한 행운이란,

만 원어치 길거리 도넛이라도 사주고 싶어 하는 선배와,

그 마음을 고맙게 받아주는 후배.

그리고 덤을 끼워주는 여주인 정도가 아닐까.


피곤하고 푹 가라앉은 기분이었음에도,

내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졌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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