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경

팬데믹 시대의 서울

by 기차는 달려가고

건강 상태가 꽤 좋아져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한나절은 외출해도 크게 힘들지 않은 정도가 되었다.

거의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매일 물리치료를 받는다.

어차피 병원에 가기 위해 외출하는 김에 체력이 되는 날에는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있으면 축 늘어지므로.

자,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던 일들을 실행해보자.



다행히 궁궐, 도서관, 박물관 같은 곳들이 문을 열어서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대신 예약을 해야 하는데,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미리 시간을 정하기가 애매할 때가 있다.

그러면 오늘은 서울 구경을 해볼까.


이름은 들어 보았지만 가본 적은 없는 동네.

또는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내 발로 돌아보지는 않은 곳.

예전에 가본 적은 있지만 오랫동안 갈 일이 없었던 장소를 찾아가 보자.


마음 내키는 방향으로 버스를 탄다.

그러고 보니 넓은 서울에서 내가 다니는 곳은 한정적인, 매우 좁은 범위 안이었다.

이런.



큰 회사가 모여있는 서울의 업무지역은 여전해 보이지만.

유흥과 관광으로 일시적으로 인파가 모이는 동네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

임대를 써붙인 가게들이 적지 않고,

거리는 썰렁하다.


그래도 각 지역의 번화가, 주거지역의 지하철 역 주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장사가 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활기차다.

오락가락하는 비에 우산을 썼다가 좀 맛있을 것 같아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해외여행을 가도 그렇고, 국내 여행에서도 이렇게 무작정 시내버스를 타고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흥미를 끄는 동네가 보이면 차에서 내려 동네를 걷고.

힘들면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간다.


확실히 직접 걸어보면 그 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휴대폰 가게, 식당, 가전제품, 미장원과 병원 같은 업종들이 큰길을 따라 주욱 늘어서 있고.

그 뒤에는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새 것, 오래된 것, 섞여서 빽빽이 동네를 채우고 있다.

주변을 포위한 교회들, 그리고 학원들.



돌아다니다 보면 지역마다 그냥 오래된 동네가 아니라,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는 노후한 곳곳이 아파트 숲 사이에 드문드문 박혀있다.

주로 저렴한 가구, 대장간, 철물점 같은 싼 임대료와 일정한 면적이 필요한 업종이 들어서 있고,

값싼 주거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여러 이해관계와 사정이 있어서 고스란히 낡아가고 있겠지만.

멀리 나가서 동네를 새로 만드는 동시에 지역에 있는 노후 정도가 심각한 곳을 재개발해도 적지 않은 주택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개인의 재산이라고 전적으로 개인에게만 그 처분을 맡기면,

들쑥날쑥, 제멋대로 정확한 수요 예측 없이 건물을 지어 효율적으로 땅을 이용할 수 없다.

또 지금 저렴한 임대료로 겨우 꾸려가는 업종과 주거지에 사는 사람들이 더 먼 곳으로 밀려 날 수밖에 없는데.

도시 생활에 꼭 필요한 업종이고 노동력들을 밀어내면 당사자 개인만이 아닌,

도시 사람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날로 세련되고 아름다워지는 도심만큼은 아니지만.

부유함이 몰리는 고급 상업지역이 아니라도.

서울 각 지역마다 도서관, 공원들이 꽤 생겨나고.

작은 표지판이라도 예쁘게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늘에는 마스크를 늘어뜨린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 앞에는 떡볶이, 어묵을 파는 분식집들이 모여 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비슷한 듯,

그러면서도 어수선한 정도나 시장에 특색이 있다.

그런 곳들을 어슬렁어슬렁 구경 다니는 재미가 퍽 좋았다.

한동안 이렇게 서울 구경을 다닐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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