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

일상 속에서

by 기차는 달려가고

오래전 일이다.

2000년 전후한 몇 년 즈음.

은행과의 소송 문제로 꽤 오랫동안 법원을 들락거렸다.

집은 강북이었지만 법원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는 사은품을 많이 주어서,

나는 그 동네 주유소를 주로 이용했었다.


큰 손님은 아니었다.

워낙 외출을 안 하려는 사람이라 법원에 가는 날 몰아서 바깥일을 해치우니,

내 차가 주유소에 자주 가거나 매출을 올려줄 만한 주행거리가 아니었지.

주유소에서 볼 때는 뜨내기손님이었을 것이다.



연말 즈음에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나오려는데 팀장이 다가오더니 선물을 준다.

"제게요?"

의아해서 물었더니

"애들이 손님께 선물드려야 한다고 이구동성이에요."

"절 기억해요?"

"그럼요. 저희한테 인사해주시는 분은 손님밖에 없는걸요."

아, 그때 알았다.

이들이 얼마나 삭막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어주고,

손님들에게서 카드를 받아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한다.

그 영수증과 카드를 손님께 돌려주고,

차가 주유소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청소년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맡아서 했다.

나는 카드를 돌려받으면서 고맙다, 안녕히 계시라, 정도의 인사말을 건네고.

가끔, 아주 가끔.

장을 본 날, 차 안에 있던 과자나 사탕 몇 개를 건넸을 뿐이다.



그런 지극히 당연하고 일상적인 행동을 아이들은 고맙게 여기고 마음에 두었다가,

그 손님한테 선물을 주자고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자기들에게 인사하는 유일한 손님을 기억해서 말이다.


그때 주유소에서 일하는 10대들은 대부분 여러 사정으로 학교를 벗어나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라고 들었다.

그 어린아이들이 싸늘하게 자신들을 스쳐 지나갈 뿐인 어른들에게서 받았을 냉혹한 인상을 상상해본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졌겠지.

서로를 겨눈 이해관계의 충돌이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고 협력하는 따스한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상호존중의 마음으로.


하지만 말은 번드르르하게 하는 나도 모두를 존중할 마음의 자세는 아직 갖추지 못하겠다.

결코 존중하고 싶지 않은 '일부'는 제외하는 '조건부 상호존중'이다.

아직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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